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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소설 / 손님

작성자박방희|작성시간17.09.25|조회수84 목록 댓글 0

  손님

                                                                                    박방희

 

  아이는 눈을 말똥거리며 잠들지 않으려고 애썼다. 아버지가 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아이는 이내 잠에 떨어졌다. 애들이란 초저녁잠에 약한 법이니. 그러나 마음속으로 잠들면 안 된다, 안 된다, 라고 수백 번도 더 뇌까린 탓에 아이는 깊은 잠에 빠지지는 않았다. 깜빡 깜빡 졸다 어렴풋이 깨어났다가 다시 잠에 빠지곤 했다.

  이런 아이를 두고 어머니는 토끼잠을 잔다고 나무랐다. 아침에는 늘 늦잠에 빠졌던 것이다. 그럼에도 아이는 잠버릇을 고칠 생각은 없었다. 언젠가 잠결에 언뜻 본 아버지 모습을 다시 한 번 똑똑히 보아야 했고, 그 아버지가 바로 오늘밤 집에 올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었다.

  아이는 아버지에 관해 두 가지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아버지가 장사하러 멀리 갔다는 것이다. 어머니뿐만 아니라 집안사람 모두가 그렇게들 말했다. 물론 아이는 이 이야기를 믿었다.

다른 하나는 아이가 결코 믿고 싶지 않은 이야기였다. 아버지가 빨갱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군인들이나 경찰에 쫓겨 다닌다는 것이다. 마을 사람들이 그런 이야기를 수군거리는데다가, 동무들도 전쟁놀이를 하면서 그랬다.

 “빨갱이 새끼는 빨갱이 군대 하기다.”

전쟁놀이에서 인민군대나 빨치산들은 언제든 쫓겨 다니다가 붙들리거나 총 맞아 죽어야 했다. 그래서 아이는 병정놀이하는 데는 끼이지 않았다. 동무들이 병정놀이를 하자면, 도리질을 하며 큰 소리로 말하곤 했다.

 “울 아부지 빨갱이라는 건 새빨간 거짓말이다. 쪼매마 있으마 돈 많이 벌어 오신다!”

아이들은 우하하하! 웃어댔다. 그리고 막대기를 총처럼 겨누어 다다다, 하면서 저들끼리 내달았다. 그럴 때마다 아이는 집에 와서 어머니에게 물었다.

 “아부지는 언제 와?”

 “…”

 “아부지는 언제 와?”

 “…”

 “아부지는 언제 와?”

  그렇게 몇 번을 물으면 어머니는 마지못해 대답하였다.

 “조금만 기다리면 오신다.”

 “돈 많이 벌면 오지?”

 “응.”

 “진짜 맞지?”

 “응.”

  아이는 의기양양한 얼굴이 되어 다시 놀러 나가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이었다. 아이가 잠결에 무슨 두런거리는 소리를 들은 것 같아 눈을 떠보았다. 불 꺼진 방이 이상하리만치 환했다. 달빛이 닫힌 창호지문을 비추고 있었다. 그리고 윗목에는 한 도깨비 같은 남자가 어머니와 마주앉아 있었다. 남자가 바깥의 달빛을 묻혀 온 듯했다. 그의 머리카락과 목덜미, 겨드랑이 사이사이로 달빛이 묻어났다. 아이가 잠결인 듯 꿈결인 듯 아부지, 하며 손을 내밀려고 하는데 도무지 목구멍에서 말이 되어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가 다시 잠들고 말았다.

  이튿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아버지를 찾았다. 아버지도 없고 도깨비 같은 남자도 없었다. 아이가 어머니에게 물었다.

 “아부지는 어데 갔노?”

 “야가 무슨 소리 하노? 빨랑 일어나 세수나 해라.”

  그러나 아이는 어머니 말을 곧이듣지 않았다. 아버지가 밤중에 몰래 집에 와서 어머니를 만나고 갔다고 믿었다.

  그때부터 아이는 아버지를 기다렸다. 밤에 자지 않고 있다가 아버지를 만나, 아버지가 빨갱이가 아니라는 대답을 꼭 듣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런 날은 좀처럼 오지 않았다. 초저녁 얼마 동안은 눈을 말똥거리며 깨어 있다가 어느 새 잠에 곯아떨어지곤 했었다. 그렇다고 아이가 잠든 사이 아버지가 다녀간 흔적도 없었다. 아이는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기다렸다. 머잖아 아버지가 집에 다니러 오실 것이고 그러면 그때 아버지에게 꼭 물어보아야 했던 것이다.

  그러던 날이었다. 잠이 들었다 깨었다 하는 어느 순간에, 아이는 어렴풋이 두런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아이가 번쩍 눈을 떴다. 이번에는 용케도 금방 눈이 떠졌다. 심지를 낮춘 호롱불이 어두컴컴한 방안을 비추고 있었다. 한 남자가 벽을 등지고 있었다. 남자는 매우 어둡게 느껴졌다. 그가 어둠을 묻혀온 듯했다. 그의 몸 구석구석에서 풀풀 어둠이 풀려나와 방안을 더욱 어둡게 하였다. 그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 한숨 속에서도 어둠이 풀려 나오며 호롱불이 흔들렸다. 이제 완전히 잠에서 깬 아이가 그를 불렀다.

 “아부지.”

  사내가 어머니를 쏘아보며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머니가 말했다.

 “아부지 친구 분이다. 아부지 심부름으로 오셨다. 너는 아무한테도 집에 손님이 오셨다는 걸 얘기하면 안 된다. 알겠지?”

  아이가 대답이 없자, 어머니가 다시 말했다.

 “알았지? 그만 자거라.”

  사내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아이의 어머니가 그를 따라 일어섰다. 그 순간 일렁이던 불빛이 아이를 드러내었다. 사내가 잠깐 발을 멈추어 아이를 내려다보았다. 다시 한 번 한숨 소리가 들렸다. 곧 문 여닫는 소리가 나고 마당을 건너가는 발자국 소리가 나팔꽃처럼 열어 놓은 아이의 귀에 들렸다. 그 소리마저도 곧 사라졌다.

  그리고 조금 있다가 비로소 아이는 눈을 감은 채 소리 죽여 흐느꼈다. 누가 왔었다고 아무에게도 말해서는 안 되는 그 사람이, 바로 어둠에 쫓기고 있는 아버지라는 것을 아이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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