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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 글. 향기 방

[스크랩] 미자와 만두

작성자좋은하늘(신성식)|작성시간11.12.14|조회수38 목록 댓글 0

   내 고향은 농촌입니다. 시골 공립학교가 거의 그러듯 내가 다니던 중학교도 남녀공학이었습니다. 이때 나는 덩치는 어른처럼 컷지만 사춘기를 몰랐습니다. 그때 나는 초등학교때부터 아주 친하게 지내던 준용이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준용이는 키가 작고 홀쭉하여 친구들은 우리를 ‘키다리와 홀쭉이’로 부르곤 했습니다. 그런데 그 준용이는 시쳇말로 까져서 한해 후배인 미순이라는 여자친구와 가가운 사이였습니다. 중3이 되고 교복에서 중학교 뱃지를 떼고 학년표시 Ⅲ자만 붙이고 다니면 3년 입은, 적당히 물이 날라간 교복을 입은지라 중3인지 고3인지 아무도 모르니 봄 학기가 되자마자 일요일에 준용이는 읍내까지 미순이와 만두 먹으러 다녀오곤 했습니다. 월요일아침이면 준용이는 어제 어느 빵집에서 어떤 만두를 먹었고 찐빵을 섞어 먹었네 사이다를 먹었네 자랑을 했습니다만, 나는 그 기분을 몰랐습니다.

 

   “야! 어제 미성당에 가서 만두시키니 주인 아줌마가 사이다 한병 공짜 주데? 옆에 찐빵먹던 여학생이 부러운 눈으로 우리를 쳐다보는 그 눈빛... 하하하..”

“준용아? 그런데 여학생하고 만두 먹으면 더 맛있나?”

“야? 니는 아직 어려서 모른다 아이가. 우리 미순이하고 먹어봐라.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른다”

“만두는 다같은 만두지 임마 뭐가 더 맛있어?”

“어허, 넌 좀 더 커야 안다........”하고 놀리곤 했습니다.

 

   그러다 여름방학이 맞었고, 인근마을 친구가 내게 마실을 오라고 불럿습니다.

“영수야? 우리 동네 미자 안있나? 미자 얼마나 예뿌노? 소개 시켜 주께 놀러온나. 우리학교에서는 이거 아이가?” 친구가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우며 이야기 했습니다. 미자는 키도 크고 우리 학교에서는 진짜 이쁘기로 소문난 여자아이였습니다.

그날 저녁 나는 친구네 마을로 마실을 갔습니다. 벌써 내가 온다고 연락을 받은 마을 친구들이 좁은 방에 많이 와 있었습니다. 7월의 더운 날씨에 선풍기도 없는 좁은 방에 둘러 앉아 있으니 답답해졌습니다. 한 친구가 바깥에 나가놀자고 했습니다.

 

   농촌이라 한걸음만 나가면 넓은 들판이었습니다. 풀밭에 둘러앉으니 친구들이 오이를 한아름 안고 왔습니다. 물론 몰래 따온 것입니다. 오이를 먹기도 하고 던지기도 하고 다리사이에 끼우고 장난을 치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놀다보니 갑자기 친구들이 하나둘씩 사라지고 어느 순간 나와 한 소녀만 남았습니다. 마실을 가기 전 친구가 이야기해준 미자였습니다. 나는 미자와 초등학교 시절 농구부도 같이 하고 합창부도 같이 하는 등 친분이 있었지만 중학생 사춘기에 오면서 자연스레 내외하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잠시 어색한 침묵을 깨기 위하여 내가 먼저 입을 열어 말을 걸었습니다.

“니 무슨색 좋아하는데?”

“빨간색”

“ 니는”

“노란색”

“니 꽃은 무슨꽃 좋아하노?”

“해바라기”........내가 농촌에서 본 꽃 중에서는 제일 예쁜 꽃이 해바라기엿습니다. 그래서 좋아하는 색깔도 노란색이라고 햇던 것입니다. 서로 어색한 분위기를 바꿔보려 무슨말을 해야했지만 꼬리를 물고 할 수 있는 이야기거리가 없었습니다. 조용히 미자가 자신의 사진 한 장을 건네주었다.

...............

............................

툭! 툭! 후두둑 후두둑.............쏴아아,,,,,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졌습니다.

“비온다. 들어가자” 내가 이렇게 말하고는 앞서서 성큼성큼 걸어갔습니다. 쏴아아~쏴아아~우르릉 쾅쾅!~ 비는 더 세차게 내리고 주위는 어두워 앞이 보이지 않았다.

 

   겨우 마을로 들어온 나는 친구네 쪽방으로 돌아갔습니다. 혼자 돌아온 나를 보고 친구들은 핀잔을 주었습니다. 내가 무안을 느끼며 얼마나 시간을 보냈을까? 아까 그 소녀, 미자가 문을 열고 들어왔습니다. 미자는 나의 시선을 피할 수 있도록 나와 마주보지 않는 방향에 가서 치마를 사뿐이 내리고 앉았습니다. 비를 맞은 미자모습- 속눈썹이 길어 그기 뭍은 물방울은 불빛에 반사되어 은구슬이 되었고 빗어 내린 단발머리는 굵게 덩어리로 갈라져 귀가 살짝 보이던 미자의 모습이 내게는 여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신선함으로 다가왔습니다. 또 다시 삼삼오오 수다가 이어졌습니다. 좁은 방안이라 우리는 방 한가운데 달랑 놓인 모포 한 장 아래로 발을 넣고 4면의 벽에 빙둘러 기대어 앉아 놀았습니다. 그때 나의 왼발에 따뜻한 발바닥 하나가 맞닿앗습니다.

  

   장난기 많은 나는 엄지발가락으로 살살 간질이며 누구의 발인가를 곁눈으로 살폈습니다.

뜨왕~!. 내가 살살 간지를 때마다 울찔움찔 간지럼을 참느라 애쓰는 사람은 바로 그 소녀 미자였습니다. 나는 큰 잘못을 하다 들킨 사람처럼 얼굴이 붉어지고 가슴에는 전기가 튀기 시작했다.

 

밤늦게 집으로 돌아온 후 나는 미자의 사진을 꺼내보았습니다. 미소가 터질듯 말듯한 얼굴, 금방이라도 내가 뛰어 들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크고 깊고 검은 눈동자.........

나는 얼른 책 안에 그 사진을 넣고 책을 덮고는 심호흡을 했습니다. 그 책은 책장 깊은 곳에 넣어두었습니다. 학교가 파하면 집으로 와 제일 먼저 그 사진을 꺼내봤습니다. 혹시 내가 학교간 사이 방청소하는 부모님께 사진을 들키지 않았나하는 걱정에서였다. 매일 다른 시츄에이션으로 책장에 두고 학교를 다녀온 후에는 수사관의 감각으로 변화된 흔적이 있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하루 이틀 사흘....어느새 내가 준용이보다 더 맛있는 만두를 미자와 함께 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30여년 지난 지금 미자 몸엔 나쁜 친구가 와서 매일 매일을 무척 힘들어한다고 합니다. 며칠 뒤엔 과거 마실가서 함께 놀았던 그 친구들과 함께 미자를 만나러 갈 계획입니다. 미자를 만나면 아름다운 추억은 함께 할지 몰라도 맛있는 만두는 더 이상 함께 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미자네 친정집엔 감나무가 많습니다. 그 감나무 잎이 더는 떨어지지 않도록 기원하며 더러 근무 중에 두 손을 합장하고 콧잔등을 만지는 척하며 기도하곤 합니다.

<며칠전 mbc방송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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