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쿠바에 갔다> - 박세열 : 쿠바라는 일명 ‘외계’를 통한 문명에 대한 거대한 통찰력과 소소한 이국생활 경험이 주는 달콤함이 마
작성자정병철작성시간25.01.03조회수42 목록 댓글 0*『너는 쿠바에 갔다』
-박세열/숨쉬는 책공장 2016년판
쿠바라는 일명 ‘외계’를 통한 문명에 대한 거대한 통찰력과 소소한 이국생활 경험이 주는 달콤함이 마구잽이 뒤섞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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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쿠바에 갔다’가 아닌 ‘너는 쿠바에 갔다’라는 문체. 작가가 ‘내가 쿠바에 갔다’라고 써도 독자들은 알아서 감정이입을 통해 마치 작가가 아닌, 독자인 내가 마치 쿠바에 간 양 읽어나갈 것을 왜 굳이 ‘독자인 네가 쿠바에 간’것처럼 서술해 나갔을까. 여행기 중에 작중 화자인 ‘나’가 빠짐으로서 책을 읽는 독자는 ‘너’가 되어 마치 ‘내’가 쿠바를 여행하는 듯한 착각과 환상을 일으키게 된다. 그래서 책을 읽는 내내 마치 꿈을 꾸는 듯한 몽롱한 분위기로 젖어들게 하고 목도한 쿠바의 여러 현실은 비현실적인 외계로 착각하게 만든다. 이 지상에서는 결코 없는 듯한 나라, 있을 수 없는 현실을 여행하는 듯한 환상을 심어준다. 그렇지만 작가인 ‘너’가 장시간 머문 쿠바라는 나라의 엄연한 현실 상황들은 사뭇 진지하다. 쿠바라는 ‘외계’와 그 나머지 대부분의 지상에서 벌어지는 삶의 현장을 서정적인 듯 감성적으로 바라보지만 한편으로는 냉철하게 비교, 비판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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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지구라는 생명체 내부에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는 현실과 미래에 대한 통찰력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이미 지구상에 내노라하는 출판업계와 저명한 학계에서 내놓는 각종 서적과 보고서를 보면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그리고 거대 종교의 틈바구니에서는 더 이상 미래가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부정적인 평가를 내비추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지구의 찬란하다고 자평하는 문명이 생성된 지는 불과 250여 년에 불과하며 그나마 지속가능한 시간을 짧게는 100년, 길게 보아도 천 년이라는 시간 속으로 한정한 채 바라보는 시각으로 희망을 갖기 위해서 남은 시간동안 인류가 어떻게 행동해야 할 지에 대한 통찰을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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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통찰을 위해서 제공하는 ‘너’의 쿠바 방문지와 답사기는 의외로 간소하고 소박해서 아연실색할 수도 있다.
-시작, 변화, 문, 여행, 기다림, 마를리네, 이중경제, 그들이 꿈꾸는 사회, 미국, 불평등, 신문, 인터넷, 전투기, 이주, 시스템, 물, 테라스, 가난, 감기, 금욕, 허리케인이 스치던 날, 라이터 충전소, 이어폰, 마트와 쇼핑몰, 레게톤, 미래에서 온 화석, 올드 아바나의 하루, 호텔, 신호등, 노리코네 식당, 아웃 오브 아프리카, 딱 한 달 쿠바, 게으르고자 하는 욕망, 다시 돌아온 도 다른 외계
이상은 시집의 소제목 같기도 한 각 장의 제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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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부에서는 여행으로 들어가는 통과과정이라면 이중경제부터는 스페인 식민지 통치의 부당함과 미국 자본주의의 폭력적 수탈을, 자본주의의 병폐인 인터넷과 신문에서는 과열과 그 폐해를 보여주었고, 쿠바의 사회주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기 위해 이주, 시스템, 물, 가난, 감기, 라이터 충전소 등을 섬세한 필치로 거론한다.
물론 ‘외계’인 쿠바에도 자본주의 사회처럼 빈부의 격차가 발생하기 시작하고 생필품의 부족과 효율이 없는 공평한 분배가 주는 느슨함으로 활력(자본주의 사회처럼)이 부족한 듯 보인다. 지난날 제국주의와 자본주의가 남긴 상처로 쿠바는 쉽게 그 시장과 마음을 열지 못하고 있는 듯도 하다.
그럼에도 ‘너’는 쿠바에서 일말의 희망을 찾아낸다. 새로운 세대의 젊은이들이 구가하는 생명력 넘치는 댄스와 사랑에서, 자본 선진국과 같이 넘치는 재화와 사치스런 상품들 없이도 일상에서 질서와 만족을 구가하는 삶에서, 그들이 버텨낸 반백 년 넘는 시간의 세계에서.
‘너’는 일회용 가스라이터조차 회수해서 재활용하는 그들의 일상을 누추하고 번잡스럽다고 손가락질할지도 모르겠다. ‘너’는 생활용수가 모자라 호텔에서 일회용 생수를 찾아 시내 곳곳을 헤매고 다닌 후에 절망할지도 모른다. 아니, ‘너’는 감기에 걸려 ‘약’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다시피 시내를 전전하고는 무료인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후 ‘약국’을 찾지 못해 또 한 번 병든 개처럼 이리저리 길바닥을 헤맨 후 치를 떨지도 모르겠다.
‘뭐 이런 나라가 다 있냐고.’하면서.
그런 쿠바도 이제 서서히 변하고 있다. 특히 ‘아바나’와 같은 곳은 선진 자본주의 행태의 모습으로 천천히 치장하고 있다. 일부 유명 메이크의 상품을 파는 가게도 제법 있다. 그러나 그건 순전히 관광객용일 뿐 내국인은 언감생심이다. 쿠바는 여전히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외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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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너’는 책말미에 이르면 여타 평범한 여행객으로 비로소 돌아온다. 집생각과 아울러 고국 음식이 생각나 일본인인 ‘노리코’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일본 음식을 먹으며 향수를 달래고, 다람쥐 챗바퀴 돌 듯 도는 문명세계의 시스템에서 벗어나 게으름을 부리고 싶은 욕망을 진솔하게 드러내기도 하며 좀 더 쿠바에 머물고 싶어하는, 긴 여행 끝에 온몸이 달착지근한 평범한 여행객으로 말이다.
책을 덮으면 ‘너’는 잠시 꾸었던 ‘꿈’에서 깨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