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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

소설가 김승옥의 '환상수첩'

작성자정병철|작성시간06.07.18|조회수149 목록 댓글 0

1.제목: 환상수첩幻想手帖
2.저자: 김승옥(소설가)
3.출판사: 문학동네 2004년판
4.독서기간: 2006.7.3 - 7.12

 




 1


소설가 김승옥은 '무진기행'이라는 작품으로 세간에 잘 알려진 작가다. 지도상에 없는 가공의 도시를 건설해서 각종 풍광을 오로지 상상으로만 펼쳐 놓고 마치 실제 여행을 하는 것처럼 적은 작품이다. 그는 문학계에서는 타고난 이야기꾼으로 통한다. 문학을 막 시작하는 많은 후학도들은 그를 사표(師表)로 삼고 정진하는 경우가 많다. 그는 아직 생존해 있는데, 나이 육십을 넘어 하나님을 만나는 종교적 체험을 극적으로 하여 지금은 신앙과 전도에만 남은 여생을 바치고 있다.
 

그런 그를 나는 이 년 전 종로의 어느 서점에서 그가 쓴 '내가 만난 하나님'이라는 산문집 출판기념회가 있다는 현수막을 길을 걷다가 우연히 본 적이 있다. 아마 충격을 적잖게 받았던 것 같다. 문학은 예술의 한 분야로 종교와 별개의 영역이기는 하지만 글(문장)을 주된 도구로 사용하는 까닭에 영감을 받는다는 부분과 영혼 구원이라는 목표도 어느 정도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면에서 서로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문학과 종교는 엄연히 다르다.


문학은 전적으로 인간적인 입장에 서서 전개되는 인생을 치열하게 그려 나가는 분야다. 필요상 신(神)에 대한 문제가 주제로 거론되거나 상황 설정에서 기정사실로서 도입되어 묘사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적으로 인정하는 것은 아닌 것이다. 보다는 오히려 부정하거나 부정하지는 않지만 그 존재에 의문을 가지고, 결정은 읽고 생각을 하게 되는 독자들에게 맡기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작가들에게는 신(神)에 준하는 치열한 정신을 요구한다.


그 치열한 작가 정신을 늘 염두에 두고 모든 예술가들을 바라보던 터였는데, 젊어서 일찍부터가 아닌 노년에 이르러 신앙에만 전념을 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는 그만 머리가 갸웃해지고 만 것이다. 혹시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에서 그만 패배하고 만 것은 아닌지. 그렇다면 그가 쓴 작품들은? 그것들은 자신의 배를 오랜 시간 아파하며 낳은 자식들과도 같은데. 그 작품들에서 보여준 그의 사상과 미학은 이제 어떻게 되는 것인가. 하긴 작품이라는 것이 작가의 손을 떠나는 탈고(脫稿) 시점부터는 잘 키운 딸을 시집보내는 심정과 같이 손에서 떠나간다고 여기는 것이 문학의 전반적인 풍조이니 별로 의미를 두지 않으려면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여길 수도 있지만. 그렇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그는 우리들에게 오랫동안 사랑받은 소설가이며, 앞으로도 한동안 그의 여러 작품들로 인해 받는 사랑은 꾸준할 것이다.

 



 2


제목 '환상수첩'에는 중편 '환상수첩幻想手帖'외에 '다산성多産性', '재룡이', 그리고 미완의 작품인 '빛의 무덤 속'과 '먼지의 방' 이렇게 5편의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출판사 문학동네에서 작가 김승옥을 기념하는 소설작품 전집 총 5권을 발간했는데, 그 중 2번째 작품집이다. 

 



3-환상수첩幻想手帖


주인공 나는 심약한 대학생이다. 원래 서울과 같은 대도시 출신이 아닌 남해 어느 소 도시에서 자란 약골이다. 그나마 서울에서 태어나 자랐다면 영악하기라도 했을 텐데, 60년대 격랑기의 서울 생활과 세상 모두가 부조리한 젊음에 적응하지 못하고 그만 낙향하고 만다. 그 전에 같은 시골 출신인 어느 여대생도 건드려 임신을 시키게 되지만, 심신 전체가 건강하지 못했던 그들은 애를 낳을 엄두는커녕, 주인공 나의 추잡스러운 연애 행각으로 가까운 친구에게 떠넘기듯 넘긴 여자는 그만 실연을 당하고 마침내 자살해버리고 말았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찾은 고향에는 친구들이 제법 남아 있지만 제대로 된 삶을 꾸려 나가는 친구는 하나도 없다. 문학에 제법 소질을 보이던 친구는 문학에 정진하는 대신 색주가를 드나들며 술과 여자로 시간을 낭비하고 있고, 같이 상경해서 공부를 했던 법대 친구는 건강이 나빠 벌써 낙향한 후 마음이 비뚤어져 자신의 약값은 스스로 벌겠다며 집안에 창녀들을 불러들여 춘화를 찍은 후 마을 근처 또래들에게 팔아 제법 돈을 모으지만 소문이 안 좋아 근근한 바느질감으로 하루하루 생활을 연명해가는 홀어머니와 여동생을 욕보이고 있고, 남은 한 명은 화재 사고로 시력을 잃어 맹인이 된 채 안마를 해주며 생활을 하지만 기거하고 있는 친척집의 골방에 놓인 이불은 한 번도 빨지 않은 채 새카만 땟국에 쩔어 있을 정도로 그 비참함은 심히 말로 표현하지 못할 정도다.  


나는 아무런 할 일이 없어 무위도식을 한다. 그리고 친구들과 대책없는 관계를 유지하며 불안한 나날을 흘려 보낸다. 우리에게는 아무런 희망이 없다. 오히려 까마득한 절망만 더욱 분명할 뿐이다. 춘화를 만들어 팔던 친구의 여동생이 동네 건달에게 붙들려 몸을 더럽히는 사건이 발생하고 나와 문학을 하는 친구는 보다 못한 아버지의 권고로 마음을 잡기 위해 먼 곳으로 여행을 갔다 오지만 아무런 소득이 없다. 문학을 하는 친구가 몸을 더럽힌 친구의 여동생을 위해 건달을 찾아가 싸우다가 그만 죽임을 당하고, 춘화를 만들어 파는 친구는 더욱 악착스러워져 가고, 그리고 난 결국 자살을 하고 만다.


이것은 주인공의 행적을 기록한 일기 겸 수첩으로 춘화를 만들어 팔던 친구에게 발견돼 알려진다. 친구는 자살한 그를 두고 심약한 친구로 몹쓸 사람 취급을 하는데, 주어진 주변의 생활 여건이 어떠하든 삶은 끊임없이 이어져야 한다는 강한 생의 욕구를 드러낸다.

 



 4-재룡이


재룡이는 마을에서 일 잘하기로 소문난 머슴이었다. 그런데 그가 전쟁 통에 집에 알릴 사이도 없이 군대에 붙들려 무수한 전쟁을 치루고 몇 년만에 고향에 돌아왔다. 고향의 다른 친구들은 전쟁터에서 일부 죽거나 죽지 않고 무사히 살아 돌아와도 몸 성하게 돌아온 경우가 거의 없다. 재룡이는 요행스럽게도 몸 성하게 살아 돌아왔던 것이다.


그러나 예전의 재룡이는 이미 아니었다. 예전의 무식하고 겁 많던 재룡이는 귀향하는 길에 역전에서 만난 헌병들을 상대로 철모를 땅에 곤두박질치며 주먹을 휘둘러 먼저 상대방의 기를 제압할 줄 아는, 군복 상의에는 어느 전투에서 무공을 떨쳐 군사령관으로부터 받은 철제로 만들어 제법 무게가 느껴지는 훈장이 달려 있어 그 누구도 함부로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재룡은 그런 것 보다 집에 얼른 가고 싶다. 갓 시집왔던 색시는 잘 있을 지, 혼자인 엄니는 그대로 잘 계실 지 늘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다.


전란이 한바탕 요란하게 휩쓸고 간 고향은 전쟁터에서 변해서 돌아온 재룡이만큼 예전의 고향이 아니다. 엄니의 말에 의하면 아내는 재룡이 전쟁터에 끌려간 후 미쳐서 친정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그리고 전에 머슴 살던 지주의 집안은 전란 통에 공비들에게 식사를 강제이긴 하지만 대접했다는 이유로 빨갱이 취급을 받아 지주는 돌아온 마을 사람들과 군인들에 살해당하고 그 아들은 다시 공비가 되어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복수를 잔인하게 마을 사람들에게 감행한다. 무지한 고향 마을 사람들은 마침내 전쟁으로 인해 좌우로 갈라져 이념 대립의 갈등을 보이며 사사건건 부딪친다.


고향에 돌아와도 아무 것도 남은 게 없고 자신마저 변해버렸음을 잘 알던 재룡이는 속으로 무척 괴로워하며 읍내의 술집을 제집처럼 드나들며 술로 시간을 보낸다. 친정으로 간 아내를 찾아가 볼만 하지만 엄니의 생각처럼 그마저 여의치가 않다. 그러던 차에 얼마 전 공비 토벌 때 죽은 전 지주의 아들이자 친구의 매장(埋葬) 문제를 놓고 또다시 마을 사람들끼리 좌우 충돌을 벌이자 이때다 싶었던 재룡이는 묘지 주변에 모였던 마을 사람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일대 봉변을 줘 통렬한 복수를 펼친다. 한바탕 봉변을 당하는 과정에서 재룡의 본 면목을 지켜본 사람은 비로소 옛날의 재룡이가 아닌 철저히 다른 어쩌면 정신이 이상해져 버린 사람으로 받아들이며 멀리한다. 그것은 그의 엄니조차 마찬가지다. 전쟁은 재룡이를 비롯한 마을 사람들 모두를 정신이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어 버렸는지도 모른다. (2006.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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