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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감상노트

열심히 산다는 것 - 안도현

작성자정병철|작성시간07.12.28|조회수166 목록 댓글 0

열심히 산다는 것
-안도현

 

 

산서에서 오수까지 어른 군내버스비는
400원입니다

운전사가 모르겠지, 하고
백원짜리 동전 세 개하고
십원짜리 동전 일곱 개만 회수권 함에다 차르륵
슬쩍, 넣은 쭈그렁 할머니가 있습니다

그걸 알고 귀때기 새파랗게 젊은 운전사가
있는 욕 없는 욕 다 모아
할머니를 향해 쏟아 붓기 시작합니다
무슨 큰 일 난 것 같습니다
30원 때문에

미리 타고 있는 손님들 시선에도 아랑곳없이
운전사의 훈계 준엄합니다 그러면,
전에는 370원이었다고
할머니의 응수도 만만찮습니다
그건 육이오 때 요금이야 할망구야, 하면
육이오 때 나기나 했냐, 소리 치고
오수에 도착할 때까지
훈계하면, 응수하고
훈계하면, 응수하고

됐습니다
오수까지 다 왔으니
운전사도, 할머니도, 나도, 다 왔으니
모두 열심히 살았으니!

 

 

<감상노트> 사람 살아가는 정겨운 모습이 연상되어 시를 읽으면서 피식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몇 푼 안되는 차비를 아끼려는 마음에, 그리고 슬쩍 속이고픈 어릴 적 개구쟁이 소녀같은 마음에 그만 낭패를 당하고 마는 할머니와 일상 생활에 충실한 채 악착같이 나머지 차비를 받아내려는 운전사의 마음. 이들은 지켜보는 이들에게 한바탕 기쁘고 즐거운 웃음을 선사합니다. 물론 당사자들과 당일 버스를 이용했던 승객들은 살벌했겠지요. 그러나 서로 지지않고 악착같이 훈계하고 응수하는 모습이 되돌아보면 우리가 살아온 지난 날처럼 여겨지며 그만 용서가 되고 한편으로 낯이 뜨겁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사는 것은 어찌보면 별 것이 아닌, 이런 사소한 일상들에서조차 생활의 끈을 놓치지 않고 꽉 부여잡으며 함께 가는 정다운 길일 것입니다.<2007.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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