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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형식(4) - 산문

작성자정병철|작성시간04.03.09|조회수46 목록 댓글 0
 

글쓰기의 형식(4) - 산문


 

 

 

 

편린의 조각들, 어디에 적당히 써먹을 수 있을지 알 수는 없어도 그냥 버리기에는 아까운 생각들, 그러나 그것은 뜬구름같이 형체를 붙들 수 없는 망상은 아니었고, 다만 지금 이 순간 길을 잃고 헤매는 것일 뿐, 그것은 문득 혹은 뭉클 떠오르는 어린 시절의 추억의 한 귀퉁이거나 살아오면서 좋았던 감동일 수 있었고, 귀중한 체험이나 삶의 지혜일 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것들은 쉽게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채, 마치 과일이 되어 누군가 맛있게 먹을 수 있도록 기다리는 애처로운 형색을 하고 있었으니 그것이 바라는 바가 적확하게 무엇인지는 알 길이 없어도 배제할 수 없는 내 살의 일부라 잊은 듯 기억의 저장 창고 한구석에 그냥 무심히 내버려둘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러한 편린들은 생의 한가운데서 가끔 찾아오는 것인 줄 알고 무심했는데 어느 날 문득 뒤돌아보니 조그만 옹달샘에 가득 고인 물처럼 어디론가 흘러가기를 간절히 원하며 맑은 소리를, 향기를 내뿜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렇다고 그것들은 앞서 밝혔듯이 딱히 어떤 용도로 써야할 도무지 연결이 되지 않는 종류의 것들이라 좋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것을 소진하거나 좋은 용도로, 물꼬를 터 더 이상 두었다가 어렵게 생긴 맑은 샘터를 썩히는 일이 없도록 하는 방법을 당시의 난 알지 못했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많은 사람들에게 동일하게 일어나는 것으로 별 대수로울 것은 없다고 막 꿈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여겨보기도 했다. 그것은 다른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동일하게 일어나기는 하는 현상은 맞는 것이나 그 다음 처리 방법이 천차만별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은 나로서, 글쓰기의 문외한으로서는 소설과 시 쓰기 정도 밖에 모르고 그것을 하루의 일거리마냥 씨름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던 때였다. 그래서 그것들을 당시의 사건으로 만들거나 느낌으로 간추려 시와 소설의 일부로 편입시켰다. 그리고 한동안은 그럭저럭 무리가 없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 무리가 애초 없었다면 중간에 창작열이 식어질 정도로 중단감이, 단절감이 없어야 했고 시와 소설은 넘쳐나는 영감과 기억의 바다에서 찬란하게 영그는 열매처럼 빛을 받았어야 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가끔 난 세상을 어느 정도 살면 주변에 이름 붙여지고 인식, 파악되어지는 것들은 흔히 소를 한 마리 잡으면 버릴 것 하나도 없이 모두 인간들이 소화해내듯 그 이름 하에 버려질 것은 하나도 없다라고 말하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오히려 생각하는 힘이 없거나 생각조차 귀찮아서 하려들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꼬집어 내야 한다면 문제지, 억지로 끄집어내는 것도 아니고 저절로 샘솟듯 이는 어떤 생각의 편린은 내가 필생의 일로 여기고 매일 주부들이 방바닥을 쓸고 닦듯, 대장장이가 풀무질을 하루도 빠짐없이 하듯 하는 시와 소설에서도 밑빠진 독으로 새어나가고 어떤 결실을 만들어내 마음의 공백이 없게 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허전함으로서 여전히 머릿속에 남은 채 과연 글을 쓴다는 행위가 내 삶의 유일한 길인 척 정진하려는 것이 정당하고 올바른 것인가라는 판단을 휘청거리게도 했던 것이다.

산문은 그래서 알게 되었다. 그러한 형식이 문학의 장르 내에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많은 시인과 소설가들이 혹은 예술가들이 동일한 범주내에서 동일한 체험과 동일한 과정을 거쳐 그러한 편린들을 소중하게 다루어 책으로 내기도 한다는 것을. 이것은 수필과는 또 다른, 신변잡기적인 일들은 고운 문양의 백자를 만들어 내듯 부분부분 정성을 들여 빚는 다정다감한 작업과는 좀 다르다. 아니 영 다를 수도 있는 것이었다.

해결되지 않는 수학 방정식은 늘 자신을 미진하게 만든 학창시절의 기억처럼 비록 수학과는 다르지만 그 생각을 붓 가는대로, 무엇인가에는 써먹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미한 희망도 없이, 그러나 글을 쓰는 가장 기본인 어법과 맞춤법, 문맥 그리고 진솔하게 써나가는 것이 바로 산문으로서 그 이후로 난 내 머릿속의 방이 늘 새로움으로 개운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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