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의지
똑같은 일은 두 번 이상 일어날 수가 없다. 매일 아침 거의 같은 시각, 거의 같은 코스를 다라 걸어보지만 마음에 떠오르는 느낌들은 늘 한결같지 않고, 만나는 사람도 매일 다르며, 같은 사람일지라도 그들에게서 받는 느낌이나 대화도 한결 같지가 않다. 어느 날은 이쪽의 경사가 완만한 코스를 따라 걷고, 어느 날은 목적지를 넘어 더 먼 곳까지 가보기도 하고.
산을 처음 올랐을 때의 기분도 마찬가지다. 산을 타기 시작한 초기에는 아직 새벽잠에서 덜 깬 눈이라 그런지 산의 굴곡을 따라 옮겨가는 걸음마다 시야를 통해 감지되는 세상의 정경은 순간순간 꿈결처럼 매혹적이고 아스라하기까지 했다. 그런 산이 몇 달에 걸쳐 꾸준히 비슷한 시각에 오르게 되자 어는 순간부터는 말똥말똥한 게 별로 변화의 느낌은 벌써 오래 전에 없어졌고 그저 오르는 일 자체가 밋밋해지는 것이었다.
물론 최근에는 아침에 일찍 일어난다는 것과 봄되며 등산을 새로 시작하는 사람들 중 친구를 만들기도 한다는 것, 그리고 날로 여물어지는 건강 등으로 그 관심은 바뀌고 있다. 산을 오르는 일을 놓고 단순히 볼 때도 그 단순한 일 안에서조차 미미하지만 초기와 돌이켜보면 많은 변화가 있었음을 발견하게 된다.
문학은 그 변화의 미미함과 오랜 세월 뒤의 변화된 그 놀라움에 대한 덧없음을 알게 하며 대신 그 덧없음의 덫에 걸려 희생되지 않기를 독려하는 교본이다. 삶의 변화되는 속도에 있어 가장 놀라운 것은 매일매일 변화되는 정도는 눈에 뜨일만큼 미미하여 참으로 시간이 가는 건지에 대한 의문을 품고 답답해하는 반면에 나이가 들수록 체험하는 것은 갈수록 그 하루가 빨리 지나간다는 사실이다. 거창한 역사까지 갈 것도 없이 개인의 인생 하나를 놓고 보아도 태어나서 유년기, 소년기, 청년기, 장년기를 보내고 어느덧 인생의 종말이 목전에 닿아있는 노년기에 이르게 되면 그 인간사를 통해보아도 엄청난 변화가 왔음을 알고 대개는 깜짝 놀란 채 그 변화의 소용돌이에서 '난 무엇을 하고 있었던가?'라는 불가항력적인 질문을 던지며 대개 인생과 시간과 속도 앞에서 무릎을 꿇거나 혹은 엄숙 경건해지거나 아니면 좌절이 깊은 나머지 자아 상실의 위기를 초래하는 수도 발생한다.
소위, 세상을 뒤바꾸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온 세계가 공인하는 모든 영웅과 악인들조차 세계가 변해온 오랜 역사에 개인을 놓고 생각해볼 때 허무해도 이건 너무 허무한 것이다.
더구나 개인마다 똑같은 역사가 역사 전체를 통해 되풀이된다면 앞서 살아간 사람의 인생이 충분히 모범답안이 되어주련만, 이 시간이라는 것도 운동장 위를 마구 천방지축으로 튀는 럭비공처럼 난삽하고 복잡하기 이를 데 없으니, 어느 한 사람도 확신에 가까운 삶을 평생을 통해 누리면서 살아보지를 못했던 것이다. 고군분투하는 것이다. 그것 외에는 지금껏 어느 방법도 제시되어 탄탄대로를 열어준 선례는 없는 것이다.
문학은 각자의 영역에서 고군분투하는 역겨운 삶을 보여준다. 운 좋으면 극복하고 극복하지 못해도 지나온 과정은 교훈처럼 바랜 빛으로도 재미가 있고, 어쩌면 만에 하나 내 인생에도 적용해 볼 수 있을 길을 발견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글쓰기는 고군분투의 최악의 전선이다. 천방지축이 위기 때마다 세계의 물꼬를 열고 길을 터주는 효자 노릇을 하는 것처럼, 결코 그들을 함부로 대해서는 안될 일이다. 허무의 최저에서 시름시름 막 흰 재로 변하려는 불씨에 입대신 펜을 바짝 들이대고 입김을 불어넣어 죽어가는 영혼과 세계를 일으켜 세우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