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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

길-영원한 나그네의 화두(2)

작성자정병철|작성시간04.03.12|조회수8 목록 댓글 0
 

길-영원한 나그네의 화두(2)


 

 

 

 

길은 낯설어야 맛이 나고 길눈은 어두워야 감칠 맛이 나는 법이다. 새벽 등산을 처음 시작할 무렵의 산길은 참으로 신비로웠다. 오랜만에 보는 별과 누런 금빛이 은은하게 감도는 달과 산 정상에서 그 달이 비추는 강 표면의 잔잔한 모습은 황홀했다. 올라가는 길속에 숨겨진 숲은 저 아래 사람들이 세상을 이루어가는 풍경이 자아내는 요란한 각종 소음과는 달리 조용하고 한적한 가운데 은은한 숨결을 퍼뜨려내고 발길을 더듬는 사람의 감각을 차근차근 휘감아 도취케 하고도 남았다.

희부연 달빛 속에서 감추듯 드러내는 산봉우리들은 또한 얼마나 아스라한지 마치 꿈결 속에서 헤매는 기분을 가지게 한다. 그런데 몇 개월 동안 같은 길을 반복하며 오르는 동안 귀와 눈이 밝아지고 발걸음에 힘이 들어가면서 갓 태어나 주변의 현상과 사물에 어느 정도 익숙해져 또렷한 눈과 표정을 지니게 되는 아기처럼, 그리고 곧 시들해지는 것처럼 그 동안의 모든 것이 제자리를 잡으며 약간은 섭섭함을 가질 정도가 이윽고 되었다. 처음에 지녔던 호기심과 신비로움이 그만큼 경감되었다는 이야기이다. 물론 제자리를 잡았다는 의미는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는 것을 의미할 뿐, 아직도 산은 보여줄 게 많다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길은 모두를 들뜨게 하고도 남음이 있고, 생과 사의 갈림을 수없이 오래전부터 결정해왔다. 길에서 생명은 태어났고 길에서 생명은 죽어갔다. 그 명멸하는 모습만 과거와 다를 뿐 나그네의 습성을 결코 잊지못하는 사람들은 해가 뜨기 전부터 부산한 모습으로 제각기의 여정을 재촉하며 좁게는 가정이 있는 집으로부터 넓게는 태어난 곳을 떠나 혹은 국경을 넘어 생전 가보지도 못한 이국의 땅까지 가는 걸음을 여전히 반복하고 있다. 실제 오늘날과 같이 국경을 허물고 다국적인 기업이 무역을 하며 앉은 곳에서 전 세계를 내려다보듯, 심지어는 태양계의 먼 혹성까지 우주선을 보내 탐사케 하는 나그네의 열정은 오랜 옛날 살 곳을 찾아 전 세계를 간단없이 유랑해야 했던 인류의 조상에서부터 원천적으로 지니고 있었던 본능에 가까운 삶에의 의지였고 그때 더워진 피는 지금도 좀체 식을 줄을 모르고 전 인류의 혈관 속을 뜨겁게 흐르며 맥을 이어오고 있다.

천체 궤도, 항로, 육로, 그리고 피가 흐르는 혈관 등 이 모두는 길의 개념 속에 진행되는 생명의 흐름이 아닌가. 길이 끊어지는 곳에는 단절이 있었고, 단절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행성은 자신의 주어진 궤도를 헤아릴 수 없이 오랜 시간에 걸쳐 회전하고 있고 앞으로도 언제까지나 그럴 것이며, 인간의 길 또한 육로와 항로를 거쳐 문화가 교류되었고, 삶을 풍요롭게 만든 물질과 정신의 교류가 있었으며, 그 교류가 단절된 채 오랜 시간 고립된 문명은 대부분 자연 소멸해갔다. 우리 신체 안을 흐르는 피 또한 그 흐름이 원활하지 않을 때 병을 부르거나 죽음이 닥치는 경우가 많다.

길은 무지를 넘어 인식의 넓은 바다로 흐르게 하는 의식의 안내자였으며 항시 불안과 죽음을 염두에 두고 힘들게 걸어가야 하는 삶 속에서 정신적이든 육체적이든 숨통을 트게 해주는 윤활유 그 자체였다. 이성을 가진 채 세상이라는 무거운 태산을 항시 짊어지듯 염두에 두고 살아야 하는 인류에게 시름을 잊게 하고 새로운 등불을 밝혀 인생의 결승선까지 완주할 수 있도록 격려하는 정신사적인 길이 있는가 하면, 눈앞에 닥친 환경적, 인위적 역경을 뚫고 새로운 희망의 소식과 인간의 허기진 배를 채워줄 온갖 물질들이 길을 통해 전해지고 들여왔던 것이다. 문학이 지향하는 많은 작품들은 길 위에서 나고 성장하며 자식을 낳고 기르며 이윽고 죽어가는 생명들, 인간들의 이야기이다. 지루하고 멀기만 할 뿐아니라 언제 끝날지 짐작도 하기 어려운 삶의 여정 속에서 잠시 피로를 접고 시원한 그늘 아래에서 땀을 식히게 하는 것이 문학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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