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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영원한 나그네의 화두(3)

작성자정병철|작성시간04.03.13|조회수17 목록 댓글 0
 

길-영원한 나그네의 화두(3)


 

 

 

 

새벽에 길을 나서거나 그렇지 않으면 낮에 길을 걸을 때, 마음의 귀를 열지 않으면 들리지 않을 소리를 종종 듣게 된다. 그것은 인생의 길에서만, 일상의 길에서만 들을 수 있는 소리다. 그럴 경우 난 그냥 듣고 지나갈 수밖에 없다. 그들의 음성에 대해, 주변의 다른 사람도 들을 수 있을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지금 처해 있는 환경과 그들의 심경을 이해하고 관심을 가지는 동시에 좀 더 동정적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삶의 긴 노정(路程)에서 겪게 되는 고달픈 세상살이에 대해 한 번 더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따라갈 수밖에 없는 그들의 체념적인 인생을 보고 과연 그런 방법 외에는 다른 방도는 없는지, 그들이 힘들어하는 현재가 삶의 진실인지, 그렇지 않으면 깨달음이 없는 현실 속에 나름대로 어리석게 안주하는 것은 아닌지 고뇌해보게 된다. 어쩌면 삶은 그들에게는 온통 불가항력적인 요소로만 가득 찬 것일 수 있는데 과연 그들이 보는 삶이 인간들 전체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진정한 의미인가를 되새겨보며, 삶의 의미를 진지하게 되돌아보는 계기를 가지는 기회로 받아들이게 되고 혹 난 어떤 삶의 자세인지, 내가 처해있는 환경은 어떤 것인지, 기만과 아집과 편견 속에서 스스로 도취된 나르시스처럼 흥취하며 아무 의미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혼란스러운 늪 속으로 줄곧 빠져 들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하는 시간을 가지게도 된다.

길은 그런 의미에서 늘 겸허한 모습을 견지하고 있다. 끝없이 뻗어 있는 길은 아무리 확신과 자신에 찬 사람이라 할지라도 아직 가야할 길이 남아 있다는 것에 겸허한 자세를 가르친다. 세상에 태어나서 무슨 족적이나 흔적을 남기겠다는 것보다 주어진 길만이라도 꿋꿋하게 갈 수 있는 당당함을 가지고 싶기 때문이다. 이 세상이라는 알지 못하는 터전에 발을 들여놓은지 어언 사십 년, 어떤 의미도 확신할 수 없는 길, 걸어가면 갈수록 더욱 많은 노정을 내보이는 길, 인간만이 가질 오만과 편견을 제대로 알도록 가르치는 길에서 날마다 새롭게 보는 세상을 겸허하게 길에서 보며, 만나게 되는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그 길에서는 쉬이 휴식처와 안식처가 보이지 않는다. 어디쯤에서 쉬어야할 지도 가늠할 수 없고 갈 길이 많이 남았다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 그 잠시의 시간에 비로소 자신을 돌아보며 마음을 가다듬게 되는 것이다. 만약 이것은 추상적인 생각이라고 묻는다면 현실은 어떠한가. 어떤 현실이 존재하는지 어느 순간 잊어버렸다고 한다면 우문우답이라고 할 것이다. 실제 어떤 길이, 왕도를 찾는 것은 아니고, 자신에게 진정 주어진 길인지는 길이라는 개념을 삶의 어느 순간에 깨달으면서 금방 망각 속으로 사라졌다고 하는 편이 글을 쓰겠다고 나설 당시에 나에게 일어난 사건이다. 그것은 새로운 지평을 연 내 삶에 있어 일생일대의 대사건으로 글을 쓰기 전에도 어리석기 그지없던 난 글을 쓰기 시작한 이후로 더욱 혼란의 소용돌이로 빠져든 것 같은데 유일한 그 중의 등대는 글쓰기 하나뿐, 그것만이 유일하게 남은 기억이고 이성이며 내가 안식을 얻을 수 있는 집이었다.

글쓰기 자체가 고집이 될 수는 없다. 도취는 더더욱 될 수 없다. 오히려 비인간화를 막고 사람 사는 세상 속에서 더욱 사람이고자 하는 몸부림에 다름 아니다. 그러는 와중에 난 사람이라는 존재에 대해, 사랑에 대해, 세상과 세계에 대해, 역사에 대해, 인류의 정신사에 대해 더욱 깊이, 진지하게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과거에 내렸던 모든 결정에 대해 신중하게 재고해 봄으로서 삶을 재음미하는 시간을 나날이 조금씩 향유하려고 하고, 나눌 수 있다면 기꺼이 나누기 위해 글쓰기에 지금 매진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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