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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쓸 것인가 (2)

작성자정병철|작성시간04.02.27|조회수7 목록 댓글 0

 무엇을 쓸 것인가 (2)

 

 

 

 

 

 살아간다는 것은 행위의 연속이다. 부단히 움직이게 되는 몸도 그러하거니와 머리 속에 든 사유 능력 또한 잠시도 멈추지 않는 채 물이 아래로 흐르듯 부단히 흐른다. 우리가 흔히 고정관념같이 생각하고 있는, 움직이지 않고 붙박힌 듯 자리하고 있어 아름다운 소설이나 시상(詩想) 안에서 제재로 많이 사용되고 있는 바위라는 것도 기실 과학적인 발견으로 움직이는 동체라는 물리학적 판단이 내려진 지 오래다.
 어느 비평가는 무엇을 쓸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다고 했다. 글이란, 문장이란 글을 쓰는 작가의 창의력과 글을 담아내는 능력만 있으면 제 스스로 생명체를 지닌 단어들이 조합을 이루며 작가의 손끝에서 움직이는 펜에 의해 고뇌처럼 감겨있던 작가의 의식 속의 이야기 혹은 관념의 덩어리가 실타래 풀려나가듯 풀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오히려 무엇을 쓸 것인가를 놓고 고민하던 중 이미 손끝의 펜에서 슬슬 풀려나갔을 생각의 실타래가 금방 혹은 어느 순간에 꼬여서는 더 이상 전개되지 못 한 채 풀려나가기는커녕 작업 전체를 중단해야 할 지도 모르는 일이 벌어지게 된다.
 작가(作家)는 글이 쓰여지는 손끝의 펜만 쳐다보며 의식 속의 관념들이 초기에 떠 올렸던 창작적 방향으로 잘 흘러가는지 지켜보기만 하면 그 글은 무난하게 목표했던 바에 순항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무엇을 쓸 것인가는 이제 쓰고 있는 내용을 경우에 따라서는 보다 구체적으로 할 것인가, 아니면 추상적으로 할 것인가, 형식적인 방법에서 시적(詩的)으로 다룰 것인가, 희곡적 대화체로 나아갈 것인가, 그것도 아니면 소설적 장황한 배경 설명을 곁들일 것인가 등등의 내용으로 그 고뇌 혹은 관심의 방향이 전환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이러한 전환까지는 많은 글쓰기의 과정들이 습작이라는 형식으로 사전 점검되어야 한다.
 그래서 작가는 우선 글을 쓰기에 앞서 많은 생각을 해야 하고, 정리해 놓아야 하며, 창의적인 방법론으로 쓰기를 결정하기까지 마치 수제비를 만드는 과정에서 밀가루 반죽의 기간과 강도가 늘면 늘수록 그 맛이 더 좋아지는 것처럼, 초기에 다소 허황된 것처럼 느껴지는 생각이나 소재들을 부단히 연마시켜 양질의 결정체로 다듬는 노력이 중요하고 절실히 요구된다.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끊임없이 흐르는 냇물처럼 흘러가는 의식 속의 모든 생각들을 차단시키고 그것을 삶의 활력으로 전환시키겠다는 종교적, 철학적 필요성을 아름다운 작품이라는 문학적 방법 속으로 끌어들여 글을 쓰는 작가와 더불어 읽는 이로 하여금 읽음으로서 역시 부단히 쉬지 않고 돌아가는 머릿속의 복잡한 의식 구조를 잠시 쉬게 하고, 읽는 내용으로서 그 의식들을 점검, 혹은 수리하여 재가동시키는 일종의 안식과 충전의 기회를 가지도록 만드는 것이니 만큼, 다른 사람과는 다른 방법으로 보다 참신하고, 지혜로우며 날카로운 신선함을 불어넣는 주제들을 늘 머릿속에 담아야 할 것이며, 또 부단히 교체해서 진부함이 묻어나오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무엇을 쓸 것인가라는 문제는 곧 무엇을 볼 것인가, 무엇에 관심을 가질 것인 가로 그 방향이 선회되어야 하며 이미 본 것에 대해, 머릿속에 담게 된 것을 어떤 식으로 처리하는가 하는 그 창작법이 더불어 의미를 지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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