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너무도 비현실적인 삶
늘 변함없이 이어지는 일상이 있어서 우리는 때때로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르지만, 그런 일상 때문에 생활 속에서 흔하게 일어나는 자기 기만은 또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삶이란 늘 변하게 마련인 것을. 그것도 누구나 확신할 수 있는 한 두가지 방향 안에서 모색되고 이끌어지면 좋으련만, 불행히도 그런 것은 있어주지도 않을뿐더러 오히려 가지각색의 다른 얼굴들만큼 다른 방법, 다른 방향으로 삶이 순간순간 피어나는 봄철의 현란한 꽃들처럼 펼쳐지니 인간이란 이름으로 철학이 시작된 이후 아직도 종결되지 못한 채 이 우주에 의문을 던지는 것처럼, 인생도 여전히 종잡을 수 없이 우리 눈을 현혹시키며 이리저리 떠다니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우리네 인생이 매혹적이고 혼란을 주지만 곧 우리는 습관처럼 변함없이 이어지는 일상에 몸을 의탁하고 만다. 아니, 차라리 일상에 져주고 싶고 차라리 그렇게 기만당하는 편이 속시원하다는 것이다.
'나만 그런가, 너희도 나이 차봐라. 그렇게 호락호락 넘어가 지는가. 얼른 세월이나 흘러야지. 내 시퍼런 두 눈알이 빠져버려서 분간 못 할 정도의 어둠으로 몸을 반쯤 디밀면 나도 마음을 놓을게.'
어느 나이 든 할망구의 지청구만은 아니다. 차라리 맹수처럼 서로 물고 뜯는 것이 차라리 더 인간적이고 살맛 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눈이 부실 듯, 환각처럼 봄이 계절의 계곡을 지나 우리들 곁을 지나가면, 그래서 여름이 오고 서늘한 찬바람이 불어오는 가을의 황혼에 서보면 흰 눈은 보기 싫어도 떠다밀어도 곧 보게 되는 것이다. 역시 인생이란 허망한 것이며, 아무리 이러쿵 저러쿵 떠들어 보아야 헛일이며, 이 푸른, 눈이 부시게 푸른 가을, 내 삶의 황혼이 이렇게 지나고 나면 난 저 황량한 겨울 들판의 어디쯤에서 어떤 모습으로 하고 있을까. 편안한 잠자리는 있을 란지. 무섭고 두려운 일이다. 무엇을 어떻게 대처해 볼 시간도 기회도 주지 않는 채, 이 인생이라는 잔인한 동물은 나를 지금까지 이리저리 쫓듯 몰아왔던 것이로구나.
일상에 젖어들면, 한 번 몸을 의탁하게 되면 그 기만에 배신당하는 감정은 유도 아니며, 바닥이 까마득한 벼랑길의 끝에서 늘 불안한 생활을 할 수 밖에 없게 되는데, 진실로 난 이런 것이, 불보듯 눈에 뻔하게 보이는 이런 일상에 머리를 조아리고 오그라들 수는 없었다.
그러하면 이러한 기만적인 일상의 틈틈이에서 나에게 보여진, 실낱같은 이미지들과 희망적 의미들은 과연 무엇이었던가. 추운 겨울 바람을 헤치고 따스한 황금같은 햇살이 텅 빈 도로의 나무가지에 찾아들 때 그 찬란함은 무엇이며, 배가 볼록하도록 작은 배를 가득 채우고 꾀꼬리같이 맑은 음성으로 헤헤거리며 까만 눈빛으로 가만히 얼굴을 올려다보는 아이들의 해맑은 미소는 또 무엇인가. 아무 의미도 없다면, 그저 그만인 일상이라면 우리 인간들에게 이렇게 많은, 복잡한 문명이 왜 필요했으며, 역사라는 어둠을 넘어가는 긴 시간을 들여 오늘 이 시간까지 왜 힘들게 걸어왔는가. 차라리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손으로 돌멩이를 굳건하게 쥔 유인원적인 삶으로 회귀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러나 문득, 아무도 돌라갈 수 없다는 것을 퍼뜩 깨닫는다. 너무 멀리 와버렸던 것이다. 그 사실을 알고 부랴부랴 서둘러 보지만 이젠 갈 곳이 마땅한 곳이 없다는 것을 뒤늦게 또 알아차린다. 돌아갈 길이며, 신발이며, 우리들의 사랑하는 자전거며, 인형 등이 이미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버려진 채 기억 속으로 매장당했던 것이다. 이미 알아차렸다고 하지만, 너무 늦어 돌아가기에는 애초 글렀고, 그렇다 하더라도 그냥 마구잡이로 앉아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라 짐을 헐레벌떡 싸는 시늉을 한다. 돌아갈 길을 찾는 방법을 떠올리고 기억도 일부 건드려 본다. 글을 쓴다. 허둥대며 글을 쓰는 것이다. 그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