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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소통 - 불멸의 바벨탑

작성자정병철|작성시간04.03.02|조회수15 목록 댓글 0

 의사 소통 - 불멸의 바벨탑

 

 

 

 

 봄을 재촉하는 비가 밤새 추적추적 내리고 아침에 본 마을 주변은 그 어느 때보다도 정갈하고 평화로웠고 화창하다. 그런 날 어머니는 평소보다 큰 음성으로 '날씨가 참 좋구나. 어디로 놀러 갈 사람 없니?' 라고 말씀하신다. 평소 '어디로 놀러가자'라는 말씀을 잘 하지 않는 분이 그런 말씀을 날씨를 빌어 불쑥 말씀하실 때 나와 동생은 이렇게 생각을 한다. '그 참, 좋은 생각입니다. 어머니, 어디로 가고 싶으세요?' 그 날 아침, 식사시간 내내 훈훈했다. 어머니, 연로하신 어머니의 감성에 젖은 그 한마디는 우리를 닫고 있던 마음의 문을 활짝 열게 만들고, 여자들이 덜 뜨고 그런 여자에 덩달아 남자도 흥분하는 봄이 비로소 왔으며, 겨우내 품었던 긴장을 어디 가서 쓴 소주 한 잔 하며 녹여도 되겠구나 라고 알아듣는다.
 나이가 들수록 많은 말이 성가심을 체득한다. 또한 나이가 들수록 그러고 싶지는 결코 아닌데 속에서 많은 할 말이 부글부글 용광로 끓듯 생긴다는 것도 안다. 그러다 보면 적절한 장소에 필요한 말을 놓치고 그만 어영부영 딴소리만 너저분하게 늘어놓다 마는 경우도 점점 나이가 들수록 많이 생기는 어려움이다.
 남녀간의 사랑에는 무슨 말이 필요할까. 소위 허용되지 않는 말은 사랑 앞에서 결코 있을 수 없다. 차라리 불필요한 말은 하지 않는 것이 둘 사이의 감정의 불을 점화시키는 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을 수도 있고, 때로 많은 말은 둘 사이의 벌어진 틈을 모색하고 연결시키는데 좋은 촉매 구실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어쩌면 사람이 쓰는 말들도 하등 필요가 없는 건지도 모르겠다. 오히려 없는 편이 서로 간의 모든 편견과 차별을 없애고 동질감을 느끼는데 빠르지 않을까. 감정을 아름다운 적절한 말로 표현을 한다지만 과연 우리가 전하고 싶은 느낌의 어느 정도까지 의미전달이 가능하겠는가. 훌륭한 시적 어구 몇  줄보다 뜨겁게 흘러내리는 눈물이나 복받치듯 엉엉 울어대는 오열이 더욱 직감적이고 모든 것을 일거에 알고 느끼게 하지 않겠는가. 울어야 할 시기에 울고 화사하게 웃어야 할 때 웃을 수 있다면, 그것처럼 훌륭한 의사 전달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문제는 환경이 복잡해졌다는 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것처럼, 웃을 때 바로 웃고, 슬플 때 눈물 흘리며, 아픔을 격렬하게 호소하며 삶 그 자체를 어떤 기만도 없이 몸 전체로 받아들이던 시대에는 하늘을 향해 탑을 쌓아올리는 용기와 자신감과 넘치는 사랑이, 숨기지 않는 순수함이 그대로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인간들의 오만함에 격노한 하나님은 종족 수만큼이나 다양한 언어를 소유하도록 조치하였고, 그 수많은 언어는 몇 가지 자연 본능적 문화요소 말고는 거의 일치가 되지 않을 정도로 복잡해지고 넘어서기도 힘들만큼 거대해졌다.
 그 수많은 언어를 이해하기 전에는 바벨탑을 쌓아 올리던 시절같은 자신감이나 우월감은 찾을 수 없을 것이며, 우월감 속에 쟁취하지 못한 사랑은 항상 부끄럽고 밝은 태양으로부터 비켜서 있어야 하며, 태어난 아기는 충분한 신적 축복을 받지 못한 채 마치 하등동물에서 사람으로 성장하는 것을 배우게 하려는 시도가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시도되지만 결코 성공적이지 못하고 바벨탑이 무너진 것처럼 인간의 우월감은 그때 이후로 높아지지 않는다.
 이제 사람들은 잃어버린 신을 찾아 헤매며 과거 기억의 아련한 향수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찾게 되고 어렴풋이 확신하는 자신들의 존재의 정체성을 찾아 죽는 그 순간까지 혼란과 방황과 좌절의 시간을 반복한다. 인간의 정신으로 엮어지는 글은 그런 그들에게 최소한 희망과 아직도 늦지 않았다는 확신의 길을 제시하며 인간에게서는 이미 떠난 지 오래인 신성을 유감없이 보여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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