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러글라이딩 역사와 현실

작성자미스터 CHA|작성시간07.11.21|조회수46 목록 댓글 0

안녕하십니까?

 

대전패러글라이딩 휘파람새스쿨의 차우성입니다.

패러글라이더는 하늘을 새처럼 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도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들은 아직 그 상식이 없어 위험천만한...또는 "무모함, 스릴, 도전이 가득한 래져"정도로만 알고 있는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종목은 이미 그 교육체계가 잡혀있고 그 안전성이 입증되어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항공스포츠입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때, 항공스포츠로선 처음으로 스카이다이빙이 소개되는데, 패러글라이더는 이보다 더 많은 인구와 안전성때문에 바로 그 뒤를 이을 전망입니다.


IMF이전에는 대전 동호인들의 숫자가 200명이상으로 많았으나, 지금은 절반에도 못미치는 미약한 활동뿐입니다.

 

경제력과 시간은 필수이며, 위험성까지(그렇게 생각들하죠^^)..."사실과 다른데...??? 이러니"...ㅉㅉ!!!

 

일반 대중들에게는 여러가지로 어려운 점이 많은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누구나 하늘을 날고 싶어 하기때문에 앞으로의 전망은 매우 밝다고 하겠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시간, 경제력, 위험성 중에서 최소한 한가지.....

위험성만큼은 수많은 선배들의 각고의 노력으로 해결되었습니다.

 

패러글라이딩관련 사고 소식이 9시 뉴스를 통해 보도되곤 합니다만, 이는 무자격자들의 안전불감증에서 야기된 몰상식한 행동이므로 지탄받아 마땅합니다. 차후 이러한 사고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각 지방자치단체나 정부에서는 엄격한 통제와 관리를 해야만 할 것입니다.

 

건설교통부 대한민국항공회 산하 한국활공협회에서는 이미 그 자격을 엄격히 제한하여 아무나 함부로 교육시킬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제대로 교육받고 지정된 곳에서 안전수칙을 준수할 때 패러글라이딩은 즐거울 수 있으며, 항공스포츠로서 더 많은 대중들과 함께할 수 있음을 우리 모두는 자각해야 할 것입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패러글라이딩의 역사

 

패러글라이더(Paraglider)의 출발점은 둥근 캐노피(Canopy)를 가진 낙하산(Parachute) 이다.

낙하산은 군사상의 목적으로 탄생,

고공에서 지상으로 침투 혹은 투하시 낙하속도를 줄여 안전한 수직강하를 그 목적으로 하고 있다.

 

제1·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낙하산은 특수목적을 위해 수상 또는 지상에서 견인(Towing) 하여 띄우기도 하였는데, 둥근 캐노피를 가진 낙하산을 견인하여, 띄우는데는 엄청난 힘과 속도가 요구되었다.

 

1950년대 말 한 낙하산 제조회사에서 패러코맨더(Paracommander) 라는 새로운 스타일의 낙하산을 제작하였는데, 이 것은 더 큰 양력을 발생시키고, 조정성과 직진성을 향상시키기 위한 장치들이 첨가된 형태로, 뒤쪽의 공기 구멍과 양단측의 수직 안정판이 부착된 형태이다.

 

수직강하만을 하는 종래의 낙하산과는 달리 Paracommander는 1m 침하하는 동안 2.5m 정도를 날아갈 수 있는 활공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하여 Paracommander를 이용하여 패러세일링(Parasailing) 이라는 새로운 스포츠가 부각되었다.

 

1960년대 미 항공우주국(NASA)에 의해 대혁신을 이루게 된다.
당시 아폴로 우주 계획의 일환으로 안전한 우주선 캪술 회수 장치로 로갈고 날개(Rogallo Wing) 와 램에어 패러슈트(Ramair Parachute) 등 여러 가지 조종할 수 있는 것들이 고안되었다.

 

로갈로 날개는 삼각날개(Delta wing) 로도 불리우며 군사 목적보다는 스포츠 패러 슈팅으로 발전하게 된다.

램에어 패러슈트는 사각형 낙하산으로도 불리는데, 종래의 원형 낙하산에 비해 빠른 반면, 착륙이 까다로워 많은 사고가 유발되었다. 이러한 문제점 해결과 더 나은 성능 향상, 안전성을 위한 연구가 계속 진행되었다.

 

그 과정에서 유럽을 중심으로 램에어 패러슈트를 가지고 산에서 이륙하려는 시도가 거듭되고 그것은 캐노피의 면적을 크게 하고 그 재질을 개선하는 것으로 곧 실현되었다.

 

최초로 산에서 이륙한 사람에 관한 기록은 명확하게 남아있지 않지만 1984년 프랑스 등산가 Jean Mark Cuovins가 낙하산을 개조하여, 비행에 성공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것이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폭발적 인기를 얻고 있는 패러글라이더의 효시라 할 수 있다.

 

그 후 1980년 중반부터 많은 사람들이 쉽게 그리고 간단하게 배워 비행을 즐겼고, 그 인구가 급속도로 증가함으로써,
각국의 항공협회에서는 패러글라이딩을 앞다투어 새로운 비행장르로서 수용하게 되었다.

 

현재 각국 항공협회 산하 행글라이딩 협회내에 패러글라이딩 위원회를 구성하고 있다. 국제 항공 연맹(F.A.I) 산하 국제 행글라이딩 위원회(CIVL) 에서도 그 조직내에 패러글라이딩 분과를 구성하였고, 패러글라이딩은 항공 스포츠로 성장하게 되었다.

 

국내에는 1986년 처음으로 소개되어 레저 항공 스포츠로 각광을 받기 시작하여

현재 한국활공협회 조직 내에 패러글라이딩 분과를 구성하고 있으며, 건설교통부 산하단체로 국가대표선발 리그전 및 기타 동호인의 안전교육, 자격증관리, 활공장 관리, 불법교육자들과 단독비행자들의 감시, 고발도 담당하고 있다.

 

또한 1999년에 대한민국 항공회로부터 독립한 문화관광부 산하 대한민국 패러글라이딩협회(대패협)는,

2003년 3월 1일부로 국민생활체육협의회의 정식 단체로 인정받아 동호인의 복지를 대변하며 활동 중이다. 그러나 이 단체(전국패러글라이딩연합회)는 국제항공연맹(F.A.I)산하 국제행글라이딩위원회(CIVL)의 비인가 단체이며, 또한 건교부 항공안전관리국의 통제를 받을 수 밖에 없으므로 주어진 권한이 없음을 알아야한다. 

 

이렇게, 우리나라에는

건설교통부 대한민국 항공회 산하의 한국활공협회와 문화관광부 산하 전국패러글라이딩연합회가 각각의 특성을 가지고 활동중이다. 특히, '전패연'은 각 지방자치단체 내의 독립적 기구(각 시.도 패러글라이딩 연합회)를 두고 정부에서 지원되는 체육기금을 지원 받을 수 있어 동호인에게는 꼭 필요한 조직이며, 체육활동의 일환으로 건설교통부에 우리의 권익을 대변한다면 더욱더 좋은 조건의 활공장 및 각종 대외활동을 보장받을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2007년 3월 기준, 국내 패러글라이딩 동호인 수는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약 2만명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성원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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