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3일(19일째) 토요일
해자구에 가기 위해 7시 50분에 숙소를 출발했다.
간단한 운동 후 8시 20분쯤 매표소를 출발하였는데, 이숙님이 우리 팀과 걷기 시작하고 나머지 분들은 말을 타고 올라오기로 했다.
걷다 보니 몇 년 전 딸과 함께 걸었던 스위스 리기산 분위기와 비슷하다.
어느 새 기분이 좋은 일행들은 사운드 오브 뮤직의 주인공이 되어 노래도 부른다.
저 멀리 쓰구냥산이 흰 눈을 덮어 쓰고 있고 가는 길은 평탄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햇살을 정면으로 받고 가는데다 길이 진흙탕이라 두시간 이상 걸으니 지친 표정들이다.
결국 중간에 지영샘, 비송님이 말을 타고 올라가고 미경샘이 나를 뒤따라 올라가게 되었다.
오늘은 각자의 페이스에 맞게 트래킹을 하기로 했다.
올라가는 도중에 진흙탕에 빠져 등산화가 엉망이 되어 버렸다.
걷다가 그늘에 앉아 커피도 마시고 경치 좋은 곳은 사진도 찍으며 여유 있게 걸었는데, 걷는 내내 에델바이스가 지천으로 널려 있고 색색의 꽃들도 많아 눈이 즐거웠다.
어느 순간 제일 선두가 되어 12시 40분 대해자에 도착했고, 13시에 대해자를 돌아 화해자에 도착하여 호수가 보이는 그늘에 자리를 깔고 혼자서 도시락을 먹었다.
오늘은 달달한 커피를 타왔는데 마시고 나니 피로가 풀리는 느낌이다.
하늘과 산이 비치는 맑은 호수, 푸른 하늘과 흰 구름,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는 말들, 어여쁜 야생화...
오늘을 이번 여행의 마지막 선물이라 생각하자.
한참을 바라보다 양산으로 얼굴을 가리고 드러누워 평화로운 시간을 즐겼다.
어제 쌍교구는 편하게 쉬었다 뿐, 솔직히 큰 감동은 없었다.
주변에 한사람도 없이 혼자서 평화롭고 아름다운 시간들을 독차지하며 즐기니 충만한 행복감이 가슴을 벅차게 한다.
호수 저편을 보니 말을 타고 오는 촌장님 부부, 요셉님 부부, 스카이님이 보인다.
좀 있다 요셉님이 호수를 촬영하기 위해 오셔서 사진을 좀 찍어 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혼자 걷다보니 내 사진이 없어 이 아름다운 호수에서 사진 한 장 남기고 싶어서였는데, 그 순간에도 먹을 것을 나눠주시는 고마운 요셉님.
늘 챙겨주시는 이 부부님들 덕분에 이번 여행이 참 따뜻하게 느껴진다.
1시 50분에 말 탄 분들이 출발을 하셔서 그분들 사진 몇 장 찍어 드리고 나도 뒤 따라 출발했다.
처음엔 같이 출발했는데 어느새 말 탄분들이 사라지고 없다.
혼자 걷는데 앞에 우리 팀이 보인다.
이분들은 화해자까지는 못 오고 대해자 입구에서 점심을 먹고 쉬다 내려가는 길이었다.
미경샘이 나보고 먼저 가라하고 제일 뒤에 오던 비송님도 자기 신경 쓰지 말고 각자의 속도대로 가자신다.
한참 걷다 보니 내 앞뒤로 아무도 없다.
똑 같은 길을 걸어 내려오자니 지겨운 생각이 들어 폰으로 음악을 켰다.
등산 다니며 다른 사람들에게 공해가 될까봐, 또 물소리, 바람소리, 새소리, 나뭇잎소리 들으려고 음악을 안 켜는데 오늘은 음악이 있으면 좋을 것 같다.
쇼스타코비치의 왈츠, 막심의 크로아티안 랩소디, 어구스틱 기타의 라스트 카니발 등을 들으며 걸으니 힘이 난다.
한참을 그렇게 걷다가 휴게소를 지나는데 누군가가 나를 불러 돌아보니 말을 타고 내려가시던 분들이다.
인사를 하고 다시 걷기 시작.
신나는 노래가 나올 때는 춤도 추고 바람에 내 몸을 맡기며 자유를 만끽했으며 어떤 구간은 나도 모르게 신이 나서 달리기도 했다.
올라갈 때도 햇살을 얼굴로 맞고 갔는데 돌아갈 때도 햇살을 정면으로 맞고 간다.
이제는 햇살이 너무 강해 피부가 따가울 정도인데, 얼굴을 스카프로 가리니 호흡이 답답해 입만 겨우 가리고 내려왔다.
어느 순간 뒤를 돌아보니 말을 탄 촌장님과 다른 분들이 보인다.
말 탄분들 뒤에 가면 방금 눈 말똥도 봐야하고 시야가 가리기에 서둘러 내려왔다.
한참을 내려오다 보니 나무로 된 계단이 보이고 그 계단을 내려오니 매표소가 있다.
시계를 보니 4시 50분인데 화해자에서 출발해서 세시간 만에 도착한 셈이다.
그런데 오늘의 최대 난관이 마지막에 기다리고 있었으니 공사 중인 도로를 지날 때였다.
공사판의 차들이 도로를 점령하여 경적을 울리며 위협하는데다 흙먼지와 차에서 내뿜는 매연으로 숨 쉬기가 힘든데 그곳의 경사가 심해 빨리 탈출하려 급하게 걸었더니 숨이 턱까지 찬다.
5시 10분에 숙소에 도착해서 땀범벅이 된 몸을 씻고 진흙탕에 빠진 운동화 빨고 빨래를 했다.
6시가 지나도록 일행들이 안 와서 기다리고 있는데 누군가 문을 두드려 지영샘인가 싶어 문을 여니 비송님이다.
방문을 두드려도 미경샘이 문을 안 열어 준다며 아무래도 피곤해서 쓰러진 것 같단다.
내가 잠시 빨래 널러 옥상 간 거 빼놓고는 방에 있었는데 인기척을 느낀 적이 없고 아직 지영샘도 안 왔으니 두 분이 아마 마트 들렸다 오나 보다.
비송님은 너무 지친데다 땀에 절어 빨리 씻고 싶어 우리 욕실에서 샤워를 했다.
6시 40분이 다 되어 지영샘과 미경샘이 왔는데 에델바이스를 보다가 산을 하나 더 타서 이렇게 늦게 도착 한 거란다.
지영샘은 너무 지쳤는지 저녁 생각이 없단다.
일단 씻고 빨래 한 후 늦게라도 식사를 하시라고 당부를 드리고 저녁 먹으러 내려갔다.
어제 1박 2일, 쓰구냥산 가신 분들이 오늘 일찍 도착해서 쉬셔서 그런지 싱싱한 얼굴로 식탁에 앉아 있었고 오늘 산에 올라간 분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좀 있다 한분 두분 나타나셨는데 모두 무지 피곤해보였다.
나중에 우리 팀 샘들도 다 오셨는데 오늘 메뉴인 닭백숙이 맛이 있어 밥을 말아 다 들 잘 드셨다.
지영샘만 입맛이 없는지 찻물에 밥을 말아 드셨는데 이숙님이 닭을 뜯어서 밥그릇에 억지로 올려주셨다.
난 닭백숙을 별로 안 좋아하는데 오늘은 오이무침을 반찬으로 한 그릇을 먹었다.
평소 맥주를 안 좋아하는데 오늘은 땀을 많이 흘려서인지 맥주를 두 잔이나 마셨는데도 안 취했다.
피곤한대도 여자들의 즐거운 대화는 계속되었고 덕분에 이번 여행 와서 처음으로 크게 웃었다.
그런데 저녁을 먹고 먼저 방으로 올라간 지영샘이 창문을 닫으려다 금이 가 있던 유리창에 손가락을 심하게 베어 큰 상처를 입었는데, 고산이라 그런지 지혈이 안 되어 심하게 놀란데다가 상처도 깊어 고생을 하였다.
다행이 일행 중에 간호사인 분이 있어 응급처치는 하였지만 같은 방을 쓰며 지켜보는 나로서는 마음이 너무 아팠다.
안 그래도 잠을 잘 못 자는 지영샘은 아픈 손가락 때문에 뜬눈으로 밤을 샐 것 같다.
많은 분들이 자기 일처럼 걱정을 해 주셔서 크게 위안에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