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경 여행5 - 공자의 사당 푸츠먀오 夫子廟(부자묘) 에서 비림 비공 운동을 떠올리다!
10월 20일 우화대열사릉원 을 보고는 명나라 성벽인 난징성 중화문 에 도착해
난징(南京 남경) 의 남문인 중화먼 中华门(중화문) 을 구경하고는
10여분을 걸어서.... 공자의 사당 인 푸츠먀오 夫子廟 (부자묘) 에 도착합니다.
진회하 운하에 정박중인 유람선 이며 건너편 벽에 조각된 큰 용 두 마리 조각을
구경하고는 부자묘 로 들어가는데 여기도 학생과 60세 이상은 50% 할인이네요?
안으로 들어가니 우선 양쪽 벽에 仁(인)과 禮(예) 라는 글씨가 선명하고 마당에는 공자의
제자 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는 가운데 大成展(대성전) 앞에는 공자의 동상 이 보입니다.
사당 에는 萬世師表(만세사표) 라는 글귀 아래 공자의 초상화 가 그려져 있는데
중국 사람 들이 초상화에 엎드려 절하며 기원 을 드리는 모습을 봅니다.
벽에는 공자의 일대기 를 자개 같은걸로 표현한 그림이 보이는데 세상을 주유 하며 뜻을
펼치려고 애쓰던 모습으로 80세 노모를 부축하고 참배한 50대 여인의 정성 이 돋보입니다.
중국에서는 산동성의 공자묘 외에 아마 가장 큰 공자 사당 이지 싶은데 외국에 공자학원
까지 성행하지만..... 내겐 엣날에 “비림비공” 운동이 떠올라 격세지감 을 느낍니다?
모택동 은 대약진운동 을 개시하였으나 대기근 이 일어나 수많은 사람이 아사하자 1959년
열린 루샨 회의 에서 국방부장 펑더화이는 마오를 비판 하지만 도리어 해임 당합니다.
그러나 마오 의 뒤를 이어 국가주석에 취임한 류소기 는 대약진운동 을 강하게
비판하였고 이후 등소평 과 함께 경제개혁을 주도 하게 되었습니다.
류소기와 등소평 이 국가주석과 당서기 를 맡아 파멸적인 대약진운동의 뒷수습 을
하면서..... 점점 마오(모택동)를 제치고 실권자 로 떠오르게 되었던 것이지요.
그러자 마오(모택동) 는 1966년 문화대혁명 을 일으켜 실권을 장악하려 시도 하였으니
전국에서 마오를 맹목적으로 따르는 홍위병 들이 일어났고 중국은 대혼란 에 빠집니다.
이러한 혼란 속에 류소기와 등소평은 실각 하여 다시한번 마오는 권력의 전면 에 나서니
류소기에 맞서 마오를 지지한 국방 부장 린뱌오(임표) 는 마오의 후계자 로 떠오릅니다.
하지만 마오는 린뱌오를 신뢰하지 않았고 1971년 마오가 남중국을 시찰하면서 돌연
린뱌오를 비난 하자 린뱌오(임표) 는 쿠데타 시도에 실패 하고 망명하다가 죽습니다.
임표가 사망 한후 노쇠한 마오를 대신하여 정치실권은 혁명원로들을 제치고 처 강청 과
사인방 이 장악해 임표(린뱌오) 와 공자 를 비난하는 "비공비림" 운동을 전개합니다.
임표는 공자를 존경 하여 공자와 맹자 가르침 을 공산당내에 끌어들여 자본주의 부활 을
꿈꾸고 있으며 반혁명 수정주의자 라 못박으니 "공자와 유학도 수난" 을 당했던 것이라?
공자의 아버지는 송나라 미자의 후손으로 노나라 추읍의 대부 이며 무예가 뛰어난 숙량흘
叔梁紇 인데.... 70세에 안씨의 딸 인 16세 징재와 야합하여 공자 를 낳았다고 합니다.
숙량흘의 본부인은 시씨로 딸 아홉 에, 둘째 부인은 다리를 저는 아들 하나를 낳았다는
데.... 남편이 죽자 본부인 시씨 는 사망 사실 을 안씨 에게는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공자 는 아버지 묘소 위치 조차 모르고 성장했다고 하는데....
훗날 어머니 안씨가 죽자 묘소 위치를 모르니 거리에 빈소 를 차렸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일이 벌어졌으니 한국을 대표하는 화가로 꽃그림 으로 유명한 천경자
씨가 죽은후 장남과 차녀 그리고 배우자가 무덤 위치를 알려달라고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천경자 씨는 74세때인 1,998년 서울시립미술관에 그림 93점을 기증하고 뉴욕 으로 건너가
장녀 이혜선 씨와 살다가 2,003년 뇌출혈로 쓰러져 12년만인 2015년에 91세로 죽었습니다.
장녀는 뉴욕의 성당에서 혼자 장례식을 치른후 유골을 들고 한국을 다녀가기도 했다는데
장남과 차녀는 은행의 예금계좌 해지 동의 전화를 받고서야 엄마가 죽은줄 알았다나요?
그러니까 장녀는 엄마가 치매 에다가 뇌출혈 로 쓰러져 12년간 투병 하는 중에 형제들이
나몰라라 했으니 혼자 간호의 수고를 감당 한지라 형제들이 자식이 아니라는 것이고....
다른 형제들은 누나 가 엄마와 작품을 독점해 차단막 을 치는 고집을 피우다 이제 사망
사실과 무덤 위치 까지 알려주지 않으니 기자회견에서 법적 조치 까지 하겠다나요?
공자는 훗날 동네의 늙은 여인 이 아버지의 묘소 를 일러주는 바람에
늦게나마 어머니 시신 을 아버지 묘소에 이장 합장 했다고 합니다.
하늘나라에 간 천경자씨의 자녀들도 법정 에 까지 갈게 아니라 조금 양보해서는
역지사지 하여 화해하고 잘 마무리 짓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천경자씨는 강열하고도 독특한 꽃 그림 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화가이니 말입니다!
그러고는 공자 사당 푸츠먀오 夫子廟 (부자묘) 를 나오니 다시 진회하 운하
인데.... 밤에 이 일대의 야경 은 난징 최고의 볼거리 로 친다고 합니다.
그러고는 문 까지 걸어 나와서는 오른쪽으로 길을 잡아 물어가며
명나라 정원 이라는 잔웬 瞻園(첨원) 을 찾아 갑니다.
잔웬 짜이날? 瞻園 在 哪儿?
여긴 거리에 골동품등 가게 가 줄지어 서 있어 구경하느라 심심치가 않습니다!
여긴 명나라때의 중국 정원 이라고 하는데 태평천국의 난때 천왕부 가 자리한
곳이라... 입구에는 정원 간판 보다 남경시박물관 총관 간판 이 먼저 보입니다.
그리고 옆에 金陵第一園 (금릉제일원) 이라는 간판이 걸려있는데 30元(학생과
경로 15원) 을 내고 입장해서는 박물관 을 보고는 다시 정원 으로 나갑니다.
명나라 태조 주원장 이 원나라를 쳐서 북경을 빼앗은 일등 공신 서달 에게 하사한 저택
인데... 훗날 청의 건륭제 가 방문해 구경하고는 잔웬 膽園(첨원) 이라 명명했다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