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화산 여행8 - 무하선사를 기리는 백세궁을 보고 능선을 걸어 동애선사에 가다!
10월 23일 구화산 높은 산중에 자리한 九华街(구화가) 에서 김교각 스님이 머물렀다는
화청쓰 化城寺 (화성사) 절을 구경하고는.... 모노레일 을 타고 산정 으로 오릅니다.
산정이라 양쪽 전망을 구경하고 왼쪽으로 난 산길 을 걸어가는데 펜스에 매달린 자물쇠 를
구경하며 5분여 걸으니... 붉은색으로 담벼락을 칠한 바이쑤이궁 百岁宫 (백세궁) 입니다.
절의 붉은색 담 벽에 작은 창 이 나 있는데 그 모양이“卍(만)” 자라.... 불교의 상징 인
이 글자는 인도에서 전하여 오는 부처님의 성덕(聖德)과 길상(吉祥)의 징표 라고 합니다.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에 卍자 와 관련된 신화 가 있는데 태양의 상징 으로 보기도 하고
흐르는 물 로 해석하기도 하며.... 또 둥글게 선회하는지라 신령한 빛 이라고도 합니다.
여기 바이쑤이궁 百岁宫 (백세궁) 은 무하선사가 126세 를 살며....
혀를 깨물어 그 혈로 화엄경 을 쓰고 앉은채로 죽어 3년이
지나도 살아있는 모습으로 남아 금가루 를 입혀 등신불 이 되었습니다.
김교각 스님에 이어 두번째 등신불 로 백세궁은 무하선사를 모시기 위해 1,630년에 창건한
사찰이니, 호국만년사 인데, 명나라 숭정황제가 응신보살 이라는 이름을 주었다고 합니다.
무하선사 (無瑕禪師) 는 명나라때 북경의 왕평현에서 태어나 24세때에 산서성 오대산 에
출가 하였는데 법명을 해옥(海玉) 이라 하였으며 26세 되던해에 구화산 을 찾아옵니다.
출발한지 7개월 만인 9월 24일에 구화산 에 도착해 40리 산으로 올라 갔으나 승중(僧衆)
은 물론이고 거주하는 사람 조차 볼 수 없는지라 내려와 사람들에게 물으니....
"당대 초기에는 불교가 융성하여 산에 묘우(廟宇) 가 많이 있었으나 당말에 이르러 황제
와 왕실이 도교 를 신봉함에 따라.... 지방 관리들이 억압함에 핍박을 피해 떠났다."
또한 "지장보살 (신라 김교각 스님 지칭) 의 육신이 존재 하는가? 묻자, " 어떤 스님이
지장보살의 육신 을 모시고 동남제일산(東南第一山) 위에다 묻었다" 라고 대답했다.
현재는 이곳을 九華山肉身寶殿 (구화산육신보전) 이라고 부르는데 산머리의 지세
를 살펴 보고 빼어난 용두석 을 찾아 올라가 지장보살의 탑묘 임을 알았다.
용두석 옆에 거처를 정하고 산열매를 따먹으면서 계율을 엄정히 하고 뼈를 깎아내는 고통
과 청빈한 수행 생활을 하다 1639년 혈경(血經) 한질을 남긴채 입적하니 126세 였다.
스님이 먹은 황정(黃精) 은 10년을 자라면 길이가 일척이니 1년에 손가락 몇마디 만큼
자라는데 쪄서 밤 이슬을 맞힌후 다시 햇볕에 말리고 하기를 아홉번 해서 입안에 넣는다.
달기가 꿀맛 과 같고 아침에 한번 먹으면 저녁 때가 되어도 배고픈 줄을
알지 못할 뿐 아니라....... 기력과 정신 이 그대로 있었다고 합니다.
황정 을 많이 먹은 탓인지 정력(精力) 이 충만하여 혀를 잘라 피를 내어 대방광불화엄경
(大方光佛華嚴經)을 베껴 쓰기를 38년 써서 80본 화엄경을 혈(血) 로써 완성 하였다.
지금도 혈경 의 글자는 분명하고 단정하여 국보로 지정 하여 구화산 역사문물관 에 보존
되어있으니 구화산에서 혈경을 친견하면 무하선사의 지극한 신심에 옷깃을 여미게 됩니다.
1630년 명나라 말엽 병부상서 왕대인 이 구화산 동남 제일산 에 이르게 되자 산꼭대기
에서 방광(放光) 을 하여 자세히 보니 한 줄기의 흰 빛이 탑묘 를 비추고....
동남방 탑묘에서도 또 한줄기 빛을 놓아 두 줄기의 빛이 서로 비추는지라 산에 오릅니다.
간신히 동굴에서 노인 을 찾게 되었는데 앉아서 천화(遷化) 하였다고 하며 유체(遺體)
는 바짝 말라 있었지만 마치 살아 있는듯 했으며 유물도 이미 다 썩어
버렸는데.... 그 옆에는 혈로 쓴 화엄경 한질 만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무하선사는 앉아서 천화 했고 이미 3년 9개월 이나 자났음을 알수 있어 숭정 황제 에게
보고하니 황제는 그를 칭하여 대보살의 화신 이고 장보살의 응세(應世) 라고 하였습니다.
황제는 그곳에다 절을 짓게 하였고 왕대인이 머무르면서 문 앞 에는....
흠사백세궁호국만년사 (欽賜白歲宮護國萬年寺) 라고 하는 편액을 붙여 놓게 됩니다.
또한 1630년 숭정 3년에는 응신보살(應身菩薩) 이라는 호와 아홉마리 용 이
그려져 있는 숭정옥쇄(崇禎玉鎖) 를 만년사에 하사 하였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황제는 무하선사 의 육신을 금을 입혀 금상(金像) 으로 만들도록 하고 탑 을 세워서
등신불 을 안장한 후 연화보장(蓮華寶藏) 이라고 하는 탑명을 하사 하셨다고 합니다.
이렇듯 무하선사 는 제자를 두어 법을 직접 전하지는 않았지만 구화산을 찾는 사람들에게
응신보살화 된 등신불과 혈경(血經) 은 많은 가르침과 깊은 신앙심 을 북돋아 준다나요?
여기 백세궁 을 보노라니 좀 전에 김교각 스님 의 고배경대 나 천태사
며 화성사 또 나중에 지원사 에서도 느끼는 바이지만.....
스님 중에는 수행에 정진하시는 분도 있겠지만 그 중에 일부는 직업 으로
중 노릇 하는 사람도 많은것 같은데 그럼에도 신자들만은 지극정성 이라...
향 을 사르며 꿇어앉아 부처님 은 물론이고 사천왕상 이며 그 외 여러 불상 앞에서
간절히 기도 하는 모습을 보건대..... 그 신앙심 만큼은 놀라지 않을수가 없네요?
특히 단체로 모집해서 온 할머니 할아버지 가 많은데 행색 으로 보아 멀리서
온 듯 한데..... 비용도 엄청날 것이니 일생 일대의 큰 소원 인가 보네요?
백세궁 을 뒤로하고 다시 산길을 걸어 모노레일 정류소 에 이른 다음 다시 계단을 올라
능선을 타고는 동애선사 로 가는데, 나중에 올때는 오른쪽 건물 뒤쪽 아래길로 옵니다.
여기 능선 길 은 고요한 데다가 인적이 없어 무서울 지경인데..... 백세궁 에 그
바글바글하던 인파의 10% 라도 东崖禅寺 (동애선사) 절에 오면 좋으련만!
그런 생각을 하는중에 동애선사 쪽에서 백세궁 쪽으로 오는 서너명 을
지나쳐서 절 에 도착하니 스님들도 심심한지 하품 을 하고 있네요?
요사채 를 지나니 거기 언덕 바위 위에 절 을 지었기로 엄청 높고 가파른 계단
을 올라가는데, 마치 베트남 하노이에서 기둥 하나로 절 을 떠받치고 있는.....
일주사 Chua Mot Cot 못꽃 사원 을 보는 것 같은데.... 그 보다는 좀 더
크고 높은데 위태로운 계단 을 올라가니 경치 하나는 끝내주네요?
여기 东崖禅寺 (동애선사) 는 신라 왕자 지장보살 김교각 스님 이 수도하던 바위 로
여기서 구화가 마을 이 잘 내려다 보이며 건너편으로 천대와 화대풍경구 도 보입니다.
지장보살 김교각 스님은 중국 구화산지 와 서장문화 등 3백종 가까운 중국측 고전 및
현대 문헌 기록에 의하면..... 신라 33대 성덕왕의 장남 으로 태어났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서기 695년 7월 15일에 태어나 21세때인 716년에 당나라 로 건너온 뒤
바로 여기 구화산에서 성불 했으며 794년 7월 30일 99세로 입적 했던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