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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허페이 9 - 포하공원 호수 섬에 조성된 포청천의 포공사!

작성자털보(정헌룡)|작성시간20.12.23|조회수151 목록 댓글 0



허페이 여행9 - 포하공원 호수 다리를 건너 섬에 조성된 포청천의 포공사를 보다!

 


여행 6일째인 10월 24일 버스로 허페이 合肥(합비) 에 도착해 소요진공원 을 보고는

차없는 거리 화이허루 淮河路(회하로)에서 李鸿章 生家(이홍장 생가)를 구경합니다.





그러고는 바오궁츠 包公伺(포공사) 를 찾아가는데 도중에 구치, 프라다,

 카르티에, 루이뷔똥 명품 숍 들이 늘어선 거리를 지나고.....




다시 소로 를 접어들어 좀 더 걸어서  담 벽에  “24 孝(효)”그림과

 “中國夢(중국몽)”그림을 지나 포하공원 호수 에 도착합니다.




언덕을 넘어서 나무가 울창한 호숫가를 걸어 중간쯤에 놓인 다리를 건너 반대편으로 가는데

다리를 일직선으로 만들지 않고 정원 처럼 지그재그 로 만든 曲桥(곡교) 가 눈길을 끕니다.




 호수 에는 일본의 다카다성과 아키타성 해자 처럼 연꽃 이 엄청 많이 심어져

있는데..... 절기가 가을이니 말라 시든 모습 을 보니 쓸쓸함을 느낍니다.




曲桥(곡교) 다리를 건너니 반대편에는 수양버들 이 늘어진 거리

인데..... 화단에 붉고 노란 꽃들 이 가득 심어져 있네요?




그런데 아무리 둘러보아도 포청천의 포공사 를 발견할 수가 없어서

행인 에게 물으니... 왼쪽으로 호수를 따라 조금더 내려 가랍니다.




그러고는 드디어 바오궁츠 包公伺(포공사) 를 발견했는데 호수 안에 섬 이 있고 그 섬에

포청천을 모신 포공사 를 세운지라..... 20위안 입장료를 내고 안으로 들어 갑니다.




작은 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가니 넓은 마당이 나오고 향로 가 있으며 맞은편에

포청천황금색 동상 이 있는데... 그 좌우에 4명의 집행관 들이 서 있습니다.



실내에는 여러 그림과 사진들 이 전시되어 있는데 그중에 가면 을 쓴

포청천 의 여러 모습들이 무섭다기 보다는 오히려 익살 맞네요?



그의 일대기를 소개한 사진 들을 지나니 바로 눈에 확 들어오는게

있으니.... 바로 형을 집행하던 단두대 격인 "작두" 라!!!



여기 포청천 동상 앞에도 여느 절에서 부처님 에게 하듯이 그렇게 예불

드리며 정성을 다하는 사람들을 보는데 젊은 처녀들 이 많은게 특이합니다!





包公伺(포공사) 는 포하 공원 내에 세워진 사당 으로 북송때의 명신 포증(包拯)

모신 곳인데 청백리의 전형적인 인물 로 드라마 “판관 包靑天”으로 유명합니다.



포증 은 송나라의 정치가로 부당한 세금을 없앴으며 판관이 되어 부패한 정치가들

엄정 하게 처벌하였으니 청백리 로 칭송되었으며 병사후 예부상서에 추증되었습니다.



서기 999년 이 도시 허페이 (合肥 합비)에서 출생했으며 1027년(인종 5년) 진사(進士)

급제해 건창현 현령 이 되었으나 연로한 부모를 봉양하기 위하여 사임 합니다.



1037년 다시 안휘성 천장현 현령 에 임명된뒤 감찰어사 등을 지내고 1056년 송나라

수도인 개봉부 지부 (開封府知府) 가 되었으며 1061년 추밀부사 에 임명되었습니다.



관료생활 하는동안 공평하고 사사로움이 없는 정치를 펼친 것으로 유명한데 지방관으로

있을 때는 부당한 세금 을 없애고 백성들의 억울한 사명쾌하게 해결해 주었습니다.



판관 이 되자 부패한 정치가 들을 엄정하게 처벌 하였으며 높은 벼슬에

오른 뒤에도 소박하고 검소한 생활 을 하여 청백리 로 칭송 되었습니다.

 


남송(南宋)과 금나라 때부터 그를 주인공으로 한 문학작품 이 등장했으며 명나라 때는

수백권으로 된“포공안”그리고 청나라 때는“칠협오의 (七俠五義)”가 쓰여집니다.



범중엄의 신정이 실패한후 북송은 날이 갈수록 부패해졌는데 도성 개봉부 는 고관대작들의

탐욕 이 날로 심해졌으며, 황실 내외척들은 법을 마음대로 어기며 못하는 짓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개봉부 포증(包拯) 이라는 지부사 가 새로 부임되어 와서는 이런 악한

무리들엄하게 다스려서는.... 부패 상황을 어느 정도 돌려놓았던 것 입니다.




포공사(包公祠) 는 그가 태어난 허페이시 외에도 근무했던 하남성 개봉시 에도 있으니

권세에 아부할줄 모르고 법을 엄하게 다스려“포청천(包靑天)”이란 칭송을 받았습니다.



포증안휘성 천장현 현령 으로 있을때 어느 농민이 밭 갈던 소를 외양간에 들여

놓고 잠을 잤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소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둥이 를 벌려 보니 누군가가 소의 혀를 베어 간 것이 아닌가? 농민은 그 길로

관청 에 달려가서 소의 혀를 베어 간 놈 을 잡아 달라고 포증에게 애원 했습니다.



무슨 수로 범인을 찾을 수 있겠는가? 한동안 궁리를 하던 포증은 농민에게 이르기를

“이 일을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고, 집으로 돌아가는 즉시 소를 잡아버리게나.”



한창 부리는 소를 잡으라니 현령이 제정신인가! 농민들이란 부리는 소를 잡기 아까워하는

법인 데다가.... 법률 도 밭 가는 소를 사사로이 잡는 것을 엄금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니 혀가 잘린 소가 살면 얼마나 살 것 이며, 현령 이 잡으라고

해서 잡은 것이니...... 율을 어긴 죄 현령이 질 거라는 생각 이 들었습니다.



이에 농민 은 집으로 돌아가자마자 소를 잡아버렸는데 이튿날 어떤 자가

현청을 찾아와서 그 농민이 소를 사사로이 잡았다고 고해 바쳤습니다.



이에 포증 은 몇 가지를 묻고나서 이렇게 호통을 쳤다. “네 이놈, 어디 와서 거짓말이냐?

남의 소 혀를 잘라놓고 주인이 소를 잡았다고 고자질 을 하다니! 네 죄를 이실직고하렸다



눈이 휘둥그레진 그자는 한동안 말을 못하더니 황급히 무릎을 꿇고 제발 목숨만 살려 달라

머리를 조아리니 소 주인에게 원한 이 있어서 그 보복으로 소의 혀를 베어 간 것이었습니다.



예상대로 소 임자가 소를 잡자 관청에 고발 했던 것인데 그후 포증의 명성이 높아지게

되었으며 가는곳 마다 과중한 세금을 없애고 억울한 사건 을 해결해 범죄자를 다스립니다.





그러다가 수도 개봉의 질서가 문란해 지자 인종 의 어명으로 개봉부 지부사 의 소임을

맡게 되었는데 개봉부는 황실의 내외척에 권문세족 들이 집중되어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어느 누가 개봉부 지부사 로 오더라도 권세가들의 말을 들어주게 되고 그들의

뇌물을 받는 것이 관례 처럼 되어 있었으니 포증은 부패한 풍기 를 바로잡겠다 결심합니다.



송나라의 법규 에 의하면 관청에 고소 를 하는 사람은 고소장을 써서 아역 들에게 올리고, 

 아역이 지부사에게 올리는데 악덕을 일삼는 아역들은 이 기회에 백성 재물을 갈취합니다.



포증은 이 법규를 없애고 대신 관청 앞에 "북" 을 걸어놓게 했으니 고소할 일 이 있는

백성이 북을 치면 관청에서는 즉시 그를 불러들여 고소를 심리 하도록 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백성들이 직접 고소장 지부사에게 올리도록 하자....

더 이상 악덕 아역들이 중간 에서 농간 을 부리지 못했습니다.




이렇듯 포증엄하게 죄를 다스리자 사리사욕을 채우던 권세가들은 겁이나 몸을 사렸고

뇌물 을 먹이려 했으나 그가 청렴한 사람이란건 세상 사람들이 다 아니 부질없는 짓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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