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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합비18 - 호수의 섬에 조성된 포청천의 포공사를 보다!

작성자털보(정헌룡)|작성시간23.09.15|조회수20 목록 댓글 0

합비 여행18 - 포하공원 호수 다리를 건너 섬에 조성된 포청천의 포공사를 보다!

 

 

여행 6일째인 10월 24일 허페이 合肥(합비) 에 도착해 소요진 공원을 보고 차없는 거리

화이허루 淮河路(회하로) 에서 李鸿章 生家(이홍장 생가) 를 구경합니다.

 

 

그러고는 포공사를 바라보고 가는데  구치, 카르티에, 프라다,루이뷔똥 등 명품숍

들이 늘어선 거리를 지나고 다시 소로를 접어들어 좀 더 걸어서  담 벽에  

“24 孝(효)”  그림과  “中國夢(중국몽)” 그림을 지나 포하 공원 호수  에 도착 합니다.

 

 

언덕을 넘어 나무가 울창한 호숫가를 걸어 중간쯤에 놓인 다리를 건너

반대편으로  가는데 다리를 일직선으로 만들지

않고..... 정원 처럼 지그재그로 만든 曲桥(곡교) 가 눈길을 끕니다.

 

 

 호수에는 일본의 다카다성과 아키타성 해자 처럼 연꽃 이 엄청 많이 심어져 있는데...

절기가 가을이니 말라 시든 모습을 보니 저절로 "쓸쓸함" 을 느낍니다.

 

 

曲桥(곡교) 다리를 건너니 반대편에는 수양버들이 늘어지고 화단에 붉고 노란 꽃들

가득 심어져 있는데....그런데 아무리 둘러보아도 포청천의 포공사 

발견할 수가 없어서 행인에게 물으니 왼쪽으로 호수를 따라 조금더 내려 가랍니다.

 

 

그러고는 드디어 바오궁츠 包公伺(포공사) 를 발견했는데 호수 안에 섬이 있고

그 섬에 포청천을 모신 포공사를 세운지라 20원 입장료를 내고 안으로

들어가 다시 작은 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가니 넓은 마당이 나오고 향로가 보입니다.

 

 

맞은편에는 포청천 의 황금색 동상이 있는데 그 좌우에 4명의 집행관 들이 서

있으며 실내에는 여러 그림과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그중에 

가면 을 쓴 포청천 의 여러 모습들이 무섭다기 보다는 오히려 익살 맞네요?

 

 

그의 일대기를 소개한 사진들을 지나니 바로 눈에 확 들어오는게

있으니.... 바로 형을 집행하던 단두대 격인 "작두"  라!!!

 

 

여기 포청천 동상 앞에도 여느 절에서 부처님에게 하듯이 그렇게 예불 을 드리며 정성을

다하는 사람들을 보는데 젊은 처녀들이 많은게 특이합니다!

包公伺(포공사) 는 포하공원에 세워진 사당으로 북송때 명신 포증(包拯) 모신곳입니다.

 

 

청백리의 전형적인 인물로 드라마 “판관 包靑天”으 로 유명하지요? 포증송나라

의 정치가로 부당한 세금을 없앴으며 판관이 되어 부패한 정치가들을

엄정 하게 처벌하였으니 청백리 로 칭송되었으며 병사후 예부상서에 추증되었습니다.

 

 

서기 999년 이 도시 허페이 (合肥 합비) 에서 출생했으며.... 1027년(인종 5년) 진사

(進士)급제해 건창현 현령이 되었으나 연로한 부모를 봉양하기 위하여

사임했으며 그후 1037년 다시 안휘성 천장현 현령에 임명된뒤 감찰어사를 지뱁니다.

 

 

1056년 송나라수도인 개봉부 지부 (開封府知府) 가 되었으며 1061년 추밀부사에 임명됩니다.

관료생활을 하는동안 공평하고 사사로움이 없는 정치를 펼친 것으로 유명한데 지방관

으로 있을 때는 부당한 세금을 없애고 백성들의 억울한 사건을 명쾌하게 해결해 주었습니다.

 

 

판관이 되자 부패한 정치가들을 엄정하게 처벌 하였으며.... 높은 벼슬에

오른 뒤에도 소박하고 검소한 생활을 하여 청백리로 칭송되었습니다.

 

 

훗날 남송(南宋)과 금나라 때부터 그를 주인공으로 한 문학작품이 등장하였으며 명나라 때는

수백권으로 된  “포공안”  그리고 청나라 때는  “칠협오의 (七俠五義)” 가 쓰여집니다.

 

 

범중엄의 신정이 실패한후 북송은 날이 갈수록 부패해졌는데 도성 개봉부에서는 고관대작들의

탐욕 이 날로 심해졌으며 황실 내외척들은 법을 마음대로 어기며 못하는 짓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개봉부에 포증(包拯) 이라는 지부사가 새로 부임되어 와서는 이런 악한

무리들을 엄하게 다스리고 부패 상황을 어느 정도 돌려놓았던 것입니다.

 

 

포공사(包公祠)는 그가 태어난 허페이시 외에도 근무했던 하남성 

개봉시 에도 있으니 권세에 아부할 줄 모르고 법을

 엄하게 다스려 “포청천(包靑天)”이라는 칭송을 받았다고 합니다.

 

 

포증이 안휘성 천장현 현령으로 있을때 어느 농민이 밭 갈던 소를 외양간에 들여

놓고 잠을 잤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소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둥이를 벌려 보니 누군가가 소의 혀를 베어 간 것이 아닌가? 농민은 그 길로

관청에 달려가서 소의 혀를 베어 간 놈을 잡아 달라고 포증에게 애원합니다.

 

 

무슨 수로 범인을 찾을 수 있겠는가? 한동안 궁리를 하던 포증은 농민에게 이르기를

“이 일을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고, 집으로 돌아가는 즉시 그  소를 잡아버리게나.”

 

 

한창 부리는 소를 잡으라니 이 현령이 제정신인가! 농민들이란 부리는 소를 잡기 아까워하는

법인 데다가 법률도 밭 가는 소를 사사로이 잡는 것을 엄금 하고 있었기 때문 입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니 혀가 잘린 소가 살면 얼마나 살 것이며, 현령이 잡으라고

해서 잡은 것이니 율을 어긴 죄 는 현령이 질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에 농민은 집으로 돌아가자마자 소를 잡아버렸는데, 이튿날 어떤 자가

현청을 찾아와서 그 농민이  "소를 사사로이 잡았다"  고 고해 바칩니다.

 

 

이에 포증은 몇 가지를 묻고나서 이렇게 호통을 쳤다.   “네 이놈,  어디 와서 거짓말이냐?

남의 소 혀를 잘라놓고 주인이 소를 잡았다고 고자질을 하다니! 네 죄를 이실직고하렸다

 

 

눈이 휘둥그레진 그자는 한동안 말을 못하더니 황급히 무릎을 꿇고는

제발 목숨만 살려 달라머리를 조아리는데......

소 주인에게 원한 이 있어서 그 보복으로 소의 혀를 베어 간 것이었습니다.

 

 

예상대로 소 임자가 소를 잡자 관청에 고발했던 것인데 그후 포증의

명성이 높아지게 되었으며 가는곳 마다 과중한 세금을

없애고 억울한 사건 들을 해결해서는 범죄자를 다스렸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수도 개봉의 질서가 문란해지자 인종의 어명으로 개봉부 지부사의 소임을

맡게 되었는데 개봉부는 황실의 내외척에 권문세족 들이 집중되어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어느 누가 개봉부 지부사로 오더라도 권세가들의 말을

들어주게 되고 그들의 뇌물을 받는 것이 관례처럼 되어

있었으니.... 포증은 부패한 풍기 를 바로잡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송나라의 법규에 의하면 관청에 고소를 하는 사람은 고소장을 써서

아역 들에게 올리고, 아역이 지부사에게 올리는데

악덕을 일삼는 아역들은 이 기회에 백성들의 재물을 갈취했습니다.

 

 

포증은 이 법규를 없애고 대신 관청 앞에 "북" 을 걸어놓게 했으니 고소할 일이 있는

백성이 북을 치면 관청에서는 즉시 그를 불러들여 고소를 심리하도록 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백성들이 직접 고소장 을 지부사에게 올리도록 하자....

더 이상 악덕 아역들이 중간 에서 농간을 부리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렇듯 포증이 엄하게 죄를 다스리자 사리사욕을 채우던 권세가들은 겁이나 몸을 사렸고

뇌물 을 먹이려 했으나 그가 청렴한 사람이란건 세상 사람들이 다 아니 부질없는 짓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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