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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쑤저우21 - 한산사 절과 풍교 다리에서 한시(漢詩)를 떠올리다!

작성자털보(정헌룡)|작성시간24.02.11|조회수9 목록 댓글 0

쑤저우 여행21 - 한산사 절에서 절과 풍교 다리를 구경하며 한시(漢詩)를 떠올리다!

 

 

2023년 10월 26일 북사탑과 쑤저우 비단박물관졸정원 과 스쯔린외성하(外城河)에 동원을 보고 버스

를 2 타고 창랑팅 沧浪亭(창랑정)을 구경하고는 공자를 모시는 문묘(文庙)를 보고 걸어 판먼

도착해서는 구윈허 苏州 古運河 소주 고운하를 보고는 23위안에 택시를 타고 한산사 에 도착합니다.

 

 

옛날에 왔을때는 운하가 보이고 풍교(楓橋앞에서 한산사(寒山寺절로 들어 갔었는데 오늘은 그 앞에 새

건물을 짓고 정원 을 조성했으며 새 건물에서 티켓을 10위안에 끊어 입장하니 2번째 건물을 지나 도로 가

나오니 또 반바퀴를 돌아 정문 을 통해 한산사에 입장하자 관광객들로 미어터지니 입추의 여지가 없습니다.

 

 

한산쓰 寒山寺(한산사는 쑤저우(소주서쪽에 1,40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사찰로 당나라

시인 장계 의 명시 <풍교야박(楓橋夜泊)> 의 '고소성(장쑤성 쑤저우의 옛 명칭

한산사한밤의 종소리가 객선까지 들려오네' 라는 문구로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절 입니다.

 

 

한산사 (寒山寺는 소주시 구쑤구에 위치하고 있으며 남조 소량 왕조의 천건 시대 (502 ~ 519)

에 창건되었으며 원래 이름은  "미오 리푸밍 탑 으로 선종의 임지종에 속하는데.....

당나라 정관 시대에 승려 한산 과 시첸이 창건했는데 복을 기원하는 유명한 장소로

매일 사원에 찾아와 종을 치고 향을 피우며 평안을 바라는 신도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습니다.

 

 

1000년 세월 한산사(寒山寺는 5(일곱번?)의 화재로 소실 되었고마지막 재건은 청나라

광서시대 였으며 역사적으로 한산사는 한때 중국 10대 명사 중 하나였으며 사찰에는

장지시의 석조 비문한산수집된 석조 조각문정명당인의 비문 등 많은 유적지가 있습니다.

 

 

한산사(寒山寺대부분의 사원은 청나라 건물 로 주로 대웅전티베트 경전 건물종탑비석 회랑,

펑장 타워슈안 종 정자 등이 있으니 한산사의 건축 배치는 엄격한 중심축이

아니고 문 앞의 고대 석조 아치교는 장춘교로다리와 산문 사이의 노란 벽을 사진벽 이라고 합니다.

 

산문 양쪽에 두 그루의 고대 녹나무노란 벽의 고전 정자는 처마와 모서리오른쪽은 Fengjiang

Tower, 왼쪽은 Shuangzhong Tower모두 Fengqiao Night Poetry 에서 유래

하는데 불교 사원 뒤에는 마하비라 홀을 마주보고 안을 향한 장엄한 장군상이 있으며,

손에는 황금 또는 낙악 杵 라고도 불리며 4대 천왕의 32명의 신 중 첫 번째인 Wei Wei 입니다.

 

 

한산사 본당 왼편 화단 양쪽에는 두 개의 긴 돌 조각이 박혀 있는데..... 하나는 명나라 중계 시대에 새겨진

"추적자" 이고 다른 하나는 청나라 말 장쑤 총독 청덕취안이 쓴 "묘리 종풍이며 대웅전좌통푸명탑,

수도원장실을 나와  "한밤중의 종소리를 듣는 종탑은 바로 앞에 있는 2층 건물은 티베트 경전 건물 입니다.

 

 

멀리 지붕을 바라보면 당나라 승려,  원 등  서천에서 경전을 촬영한 동상 들이 보이니 티베트 경전 건물의

위층에는 비밀과 귀중한 불교 경전 이 있으며 아래층은 "한시전" 이라고 불리며 한시전 뒷벽 뒤에는

거대한 비석이 있고 천 손과 천안 관음위위관공과 같은 인물이 새겨져 있으며 종탑은 한시전 옆에 있습니다.

 

 

한산사(寒山寺의 배치는 좌우 균형을 추구하지 않고벽과 산문은 기본적으로 일선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뒤에 있는 마하비라전과 티베트 경전 건물은 중심축에 있지 않으니 새로 지어진 푸밍 타워

안뜰은 남북 방향의 중심축에 따라 배치되며 사원의 모든 곳에 안뜰이 있으며 이어져 연결되어 있습니다.

 

 

절을 나와 스님에게 풍교(楓橋위치를 물어서 운하에 도착하니 큰 다리가 걸려 있는데이른바 저 유명한

풍교로 과거에 낙방해 쓸쓸하게 배를 타고 고향 으로 돌아오던 張繼(장계) 가 밤이 되어 절 앞

다리 밑에 배를 대고 하룻밤을 자면서 지었다는 楓橋夜泊(풍교야박) /夜泊楓江(야박풍강시가 떠오릅니다.

 

 

月落烏啼霜滿天(월락오제상만천)

江楓漁火對愁眠(강풍어화대수면)

姑蘇城外寒山寺(고소성외한산사)

夜半鐘聲到客船(야반종성도객선)

 

 

달마저 지고 까마귀도 까악까악 울며 온 세상에는 서리가 가득 내렸다강가의 단풍나무와 고기잡이

배에 켜진 불빛을 마주하며 수심에 잠긴 나그네는 잠들지 못한다. 저 멀리

고소성 밖의 한산사에서 깊은 밤에 종소리가 조용한 밤을 타고 나그네가 있는 배에 까지 다다르건만.

 

 

수많은 唐詩(당시)의 絶品(절품) 가운데 특히 인구에 회자되는 명시 이니 객지에 다다른 나그네의 쓸쓸한 심회

를 단지 낯선 景物(경물)에  부쳤을 뿐인데적막한 모습이 愁 ()’ 자 하나에 집약되어 점점 퍼져나갑니다.

 

 

앞의 두 구절과 뒤의 두 구절을 시간 순서가 도치된 것 으로 보는 해석도 있는데, 1구의 月落(월락)’

달 지는 새벽 으로마지막 구절의 夜半(야반)’ 을 이보다 앞선 시간 으로 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널리 알려진 시라 뭇 사람들이 다 한번씩 해설을 하는 때문에 이 시를 둘러싼 이야기와 논평도 셀 수 없을 만큼

많으니..... 본문 글자에 차이가 많은 것 도 역으로 이 시가 널리 전파되었음을 알려주는 징표이기도 하답니다.

 

 

많은 시인 묵객 과 또 훗날의 문학 평론가들이 이 시를 다루었는지라 楓橋夜泊(풍교야박)

이라는 시의 제목이 夜泊楓江(야박풍강)’ 으로 되어 있는 (도 있다고 합니다.

 

 

 ‘楓橋(풍교)’ 는 강소성(江蘇省오현(吳縣창문(閶門밖 서쪽 10里 에 있으니 豹隱紀談(표은기담)에 풍교

(楓橋)는 옛 이름이 봉교(封橋였다후에 장계(張繼시의 江楓漁火對愁眠 (강풍어화대수면)’

구절을 따라 楓橋(풍교)’ 로 고쳤다. [楓橋 舊名封橋 後因張繼詩江楓漁火句 改楓橋]” 라는 기록이 보입니다.

 

 

이 시를 지은 시인 張繼(장계) 는 생몰년이 미상인데 ()는 의손(懿孫)으로 양주(襄州湖北省 襄陽縣 호북성

양양현사람이니 일설에는 남양(南陽河南省 南陽縣사람이라고도 하는데천보(天寶) 12(753)

 진사에 급제,  강남(江南에서 염철판관(鹽鐵判官을 역임했으며 全唐詩(전당시에 시 1()이 전합니다.

 

 

江楓漁火(강풍어화) : ‘江楓(강풍)’ 은 강가의 단풍나무 를 말하는데   江村(강촌)’ 으로

 본도 있으며 청()나라 유월(兪樾의 楓橋夜泊詩碑(풍교야박시비)

당나라 장계(張繼의 楓橋夜泊(풍교야박)〉 시는 인구에 회자 된다고 적혀 있습니다.

 

 

江楓漁火(강풍어화)’ 네 글자만은 자못 의심할 만하니 송()나라 공명지의 中吳紀聞(중오기문)

에는 江村漁火(강촌어화)’  라고 하였으니송나라의 옛 서적을 보물로 귀하게

여길 만한데...... 여기서 漁火(어화)’ 는 고기를  잡으려고 漁船(어선)  에  켠  불빛 을 말합니다.

 

姑蘇城外寒山寺(고소성외한산사에서 姑蘇(고소)’ 는 소주(蘇州의 별칭 이니 도시 서남쪽

에 고소산(姑蘇山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며......  寒山寺(한산사)’  

강소성 (江蘇省소주시(蘇州市서쪽에 있는데 남조(南朝()나라 때 지어졌다고 합니다.

 

 

원래 이름은 묘리보명탑원 (妙利普明塔院이었다고 하는데, ()나라 초에 시승(詩僧)

한산(寒山) 이 이곳에 머물러 이에 한산사(寒山寺로 부르게 되었다고

하며 풍교(楓橋부근에 있으며 소중(蘇州의 명승(名勝가운데 한 곳이기도 하답니다.

 

夜半鐘聲(야반종성) 은 시인 구양수(歐陽脩가 지적한 이래 논란이 분분하니 당시(唐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표현이라는 의견도 있으며 또 半夜鐘聲(반야종성)’ 으로 되어 있는 ()도 있습니다.

 

 

한산사 절을 나와 둘러보니 이제 밤이 되어 사방이 캄캄해졌는데... 에전에는 한참 걸어

나가  큰 도로에서 버스 를 탔던 기억이 있지만 방향이 짐작되지 않는지라....

여기 대로변에 줄지어 서 있는 택시로 가서 타려고 하니 기사가 행선지를 물어 봅니다.

 

 

그래서 쑤저우역 으로 간다고 하니 갈수 없다며 거절 합니다? 해서 다음 택시로 가서 물으니 역시나 거절

하는데... 뭐야 이거 승차 거부 한다는 것이야세 번째로 거절당하고는 보니 저 수많은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 다 관광버스로 온 사람들이고 일부는 자가용으로 왔으며 개인 여행자 는 별로 보이지 않습니다.

 

택시들이 승차를 거부하는 것은 다른 관광객이 타고와서 나올 때 까지 대기 하는 차이거나 아니면

누가 앱으로 전화를 해서 불러온 택시 이거나 그도 아니면 쑤저우역이 짧은 거리는

아니니 단거리라 거절할리는 없고..... 그렇다면 퇴근시간이라 그 쪽이 교통 정체가 심한 것일까요?

 

 

어쨌던 3번이나 거절 당했고 다른 택시는 없으니 이제 예전 처럼 걸어서 큰 도로로 나가서 버스 

타야겠다고  생각하는데한 사람이 다가오더니 어디 가느냐기에 쑤저우역 이라니 50위안 을

부르는데.... 미터기로 하자면 30위안 정도 나올 거리라고 짐작이 가지만 별수 없으니 승낙합니다.

 

 

그러자 자기를 따라 오라더니 2~3 분을 걸어가서는 한참 떨어진 곳에 도착해 타라고 하는데 보니 택시가

아니고 승용차 입니다이른바 승용차 영업 을 하는 사람이라..... 차는 도심으로 들어가지 않고

멀리 외곽으로 빙 둘러 가는데아마도 퇴근시간이라 교통체증이 심하니 그걸 피하고자 하는 모양입니다?

 

 

차는 외곽도로를 무서운 속도 로 한참 동안이나 달려서는 빙 둘러서 다시 도심으로 진입하는데....

고가도로에서 보자니 저 멀리 쑤저우 역 건너편에 두 개 큰 건물에 불빛 이 보이는데얼마나

많은 전구를 켰는지 휘황찬란한데 기사가 손가락으로 가리키기에  라고 말하니 차를 세웁니다.

 

 

그러고는 여긴 쑤저우역이 아니라 고가도로 위 인데  오른쪽에 보이는 계단을 내려가면 된다고 말하면서

50위안 짜리 지폐를 꺼내 보이는데... 혹시나 우리가 신용카드나 알리페이 또는 위쳇페이 로 계산

하자 할까 보아 걱정하는 것 같은지라,  100위안 지폐 를 주니 활짝 웃으면서 50위안 지페를 거슬러 줍니다.

 

 

차에서 내려서 보니 여긴 고가도로 위로 차가 서면 좀 위험한 곳 으로 보이는데... 들은대로 달팽이

처럼 생긴 가파를 계단을 꼬불꼬불 내려가니 아주 작은 구멍가게가 보여 캔맥주 를 사려고

하니..... 마눌이 너무 작은 곳이라고 말리기에 끝까지 내려가니 쑤저우 기차역으로 연결 이 됩니다.

 

 

쑤저우 역을 나오면서 슈퍼에서 맥주 를 사려니 마눌이 역 가게는 비싸다면 자기가 본  큰 슈퍼 가 있다며

가자기에 북 광장을 나와 시외버스터미널에 가니 마눌이 2층으로 올라가는데.... 가 보니 편의점인

超市(초시이기는 하지만 술은 팔지 않는지라 내려와서는 다시 북광장을 지나 쑤저우역으로 되돌아 갑니다.

 

 

울 마눌은 희한한게 길이 두갈래로 갈라지면 확률이 50% 이지만 틀린 길로 가는게 90% 이상인데,

나는 방향을 보고 길 을 찾지만 마눌은 건물 생김새를 보고 길 을 찾는 것이며 질러가기를

좋아하고, 또 마눌은 국내에서 몇푼 가지고 상대적으로 싼 여러 가게를 다니는 습관 때문에

오늘도 이처럼 헤메게 만드는데.... 여행 중에는 마눌의 말을 들어서는 안된다는걸 재삼 다짐합니다.

 

 

역 구내의 작은 슈퍼로 되돌아 가서는  한 캔에 10위안  이라는 조금 비싼 가격에 캔맥주를 사서

시외버스터미널 뒤쪽에 있는 우리 호텔 진지앙 인 쑤저우 레일웨이 스테이션 노스 스퀘어 

锦江之星旅馆 Jinjiang Inn Suzhou Railway Station North Square 로 돌아와 술을 드니

그새 마눌이 휴대한 전기남비로  밥을 해 주어 먹고는 잡니다.  나의홈 : cafe.daum.net/baik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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