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받는 삶(행9:36-42)

작성자진리수호|작성시간17.07.23|조회수159 목록 댓글 6

2017.07.23.대민(주일낮)

 

인정받는 삶(9:36-42) 대민성결교회 이석민 목사

 

인생은 한 번입니다. 그 누구도 두 번을 살 수 없습니다.

인생은 한 번의 기회밖에 주어지지 않습니다. 생의 마지막 시간이 있다는 것은 알지만 그 의미를 새기며 사는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남은 날들이 한 달이라고 생각하면서 인생을 살아간다면 분명 지금과 다른 인생이 펼쳐지게 될 것입니다.

무엇보다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나 자신만 생각했던 것들을 다 내려놓게 될 것입니다. 이웃도 돌아보게 될 것입니다. 지나쳤던 작은 것 하나라도 다시 돌아보고 감사하며 하루하루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게 될 것입니다. 사는데 열정을 느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 인생들에게 한 번 허락하신 이 소중한 삶을 사랑과 자유의 평강과 즐거움도 없이 끊임없이 두려움에 짓눌려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온 천하보다 귀한 삶입니다. 오늘이 가면 다시는 없습니다. 인생은 재탕을 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소중한 인생을 삶의 즐거움도 사랑도 전혀 느끼지 못하고 그냥 속고 속으면서 속절없이 그 많은 날들을 고통과 두려움과 불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한 다복한 가정의 중년 부인이 어느 날 의사를 찾아갔습니다. 선생님, 저는 요즈음 몸에 기운이 없습니다. 매사에 의욕도 없습니다. 그래서인지 사는 재미도 없습니다. 결혼해서 이제껏 남편 뒷바라지 하느라, 아이들 키우느라 정신없이 살아왔는데, 이제 남편 직장도 안정되고 아이들 대학 다니고, 꿈꾸던 일들이 웬만큼 이루어졌는데, 오히려 마음이 이렇게 허전하고 공허할 수 없습니다. 식구들이 직장으로 학교로 나가고 난 후 텅 빈 집에 혼자 있으려면 얼마나 서글픈지 모릅니다. 내가 이제껏 희생하면서 사랑하면서 정신없이 살아온 것은 후회 안합니다. 그러나 텅 빈 내 자신을 드려다 보면 참 서글프기만 합니다. , 이때 의사 선생님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주머니, 이제는 자신을 위해 사십시오. 이제는 즐겁게 인생을 사십시오. 아주머니는 그렇게 살 자격이 있습니다."

 

바른 진단이요, 치료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거기서 한걸음 더 나갈 수 있어야 합니다. 내 삶에 의미가 있는 일, 보람 있는 일, 기쁨이 있고, 가치가 있는 일을 함으로 고독과 허무와 삶의 의미 상실을 이겨 나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성도 된 우리는 각 분야에서 인정받고 영향력 있는 탁월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에게 인정(認定)을 받는다는 것은 그 사람의 신임을 얻는다는 것을 뜻합니다. 내 실력이나 인간 됨됨이를 상대방이 알아주는 것을 말합니다. 인정을 받는다는 것은 신뢰를 얻는 일입니다. 어느 사회에서나 인정을 받는 사람이나 혹은 집단이 된다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회사 직원이나 공무원이 자기 상사에게 인정을 받지 않으면 출세할 수 없습니다. 장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소비자들에게 인정을 받지 못하면 곧 망하고 맙니다. 상표(商標)란 원래가 신용의 상징입니다. 소비자들은 상표를 보고 물건을 사게 마련입니다. 병을 잘 고친다고 인정받는 병원에만 환자들이 가게 마련입니다. 음식을 잘 한다고 인정받는 음식점에는 사람이 많이 몰리게 됩니다. 어쨌든 인정을 받는다는 일은 좋은 일입니다.

 

성도 된 우리는 인정받기 위해서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노력하고 성실해야 합니다. 정치계, 경제계, 학계, 법조계, 의료계등 각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영향력 있는 성도들이 많이 나와야 합니다.

 

사실 사람에게 인정을 받는 것도 이렇게 중요한데 하물며 하나님께 인정을 받는 일은 더욱 중요한 일입니다. 마지막 때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거기서 하나님께 귀중히 여김을 받은 자 혹은 인정을 받은 사람은 상급을 받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에서 그의 인정을 받는다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하나님은 그가 인정하시는 자들에게 은총을 베풀어 주셔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크게 일하게 하십니다.

 

우리 인생이 승리하는 삶 부끄러움 당하지 않는 삶을 사는 것이 인생의 성공입니다. 잘사는 것 많이 배운 것 높이 올라가는 것이 성공이 아니라 믿는 사람들은 깨끗하게 사는 삶 하나님 앞에 인정받는 삶을 사는 것이 우리에게 성공입니다.

사람들에게도 인정받고 하나님께도 인정받는 삶을 살아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1.선행과 구제하는 삶(36)

 

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가 있으니 그 이름을 번역하면 도르가라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

 

신앙생활의 목적은 여러 가지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의 목적은 나만 천국 가는 것이 아닙니다. 나만 복 받아 잘 먹고 잘사는 것이 아닙니다. 나를 통해 옆 사람이 예수님 생명을 얻어 새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의 기쁨이요, 헌신의 목적입니다,

이러한 신앙생활의 목적을 이루려면 선행과 구제하는 삶이 필요합니다.

 

본문에 도르가는 순전한 신앙의 인물이었습니다. 도르가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답게 선행과 구제에 힘쓰는 그리스도인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순전한 믿음의 실천적인 인물로 살았습니다.

도르가는 의심할 여지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본문을 기록한 저자 누가는 그 여인을 '여제자'라고 표현하지도 않았을 것이며(9:36), 그녀는 가난한 과부들에게 실행과 구제를 베푸는 일을 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도르가는 말과 마음 뿐 만 아니라 전인격적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 주위에서 전도를 많이 하는 사람들의 간증을 들어보면 거의 예외 없이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많은 것을 발견합니다.

 

그들은 사람들을 좋아하고 사람들을 칭찬하고 사람들에게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는 것이 전도의 기본이라고 항상 말합니다.

 

아람에 포로로 잡혀갔던 작은 계집아이도 아람 주인에게 선을 베풀었기 때문에 아람 주인과 아람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였습니다. 선행과 구제는 전도의 필수 조건이 됩니다. 아니 예수님을 따르는 모든 제자들의 필수 조건이 됩니다.

 

마태복음516절에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여기 착한 행실이란 우리의 성실함과 충실함과 희생과 사랑과 인내 등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 대한 착한 행실은 우리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함으로써 하나님을 증거하는 수단이 되고, 말씀에 대한 착한 행실은 이웃에 대한 사랑의 의무를 실천함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착한 행실은 그리스도인이 말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 즉 그의 외적으로 나타나는 모든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백 마디의 말보다는 조그마한 행동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신앙생활은 입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 자체로 믿음을 보여야 합니다.
우리의 거룩한 삶을 통해 불신자에게도 선한 증거를 얻을 수 있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도르가는 도움이 필요한 많은 사람들에게 자애로운 어머니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아마 욥바 지역의 모든 과부들은 도르가가 만들어 준 속옷과 겉옷을 입으면서 성도의 사랑과 하나님의 사랑을 느꼈습니다.

 

우리의 신앙의 모습을 한 번 되돌아보시기를 바랍니다. 도르가처럼 선행의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아름다운 신앙의 자취를 남기고 있는 생활인지를 살펴야 합니다.

 

나 자신이 몸담고 있는 교회에서 또한 생활권에서 신앙의 흔적을 남기는 삶인지 신앙의 행적들을 얼마나 아름답게 수()놓는 삶을 살고 있는지를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이사야117절에 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 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

 

성도 된 우리들은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따라 선하며 자비로운 사랑을 베풀어 과부들과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과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돕는 생활로써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만민에게 드러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그리스도인들이 잘 못 살아서 영광을 받으실 하나님께 얼마나 많은 욕을 돌리는지 모릅니다.
초대 예루살렘 교회는 세상 사람들에게서도 칭송을 들었습니다. 그들의 선행과 구제하는 일들을 세상이 들었을 때에 과연! 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도르가는 적당히 구제와 선행의 시늉을 한 것이 아니라 아주 헌신적인 태도로 최선을 다해 구제와 선행을 베풀었습니다. 즉 도르가는 믿음과 행함이 일치하는 참된 신앙의 삶을 살았습니다.

선행과 구제는 시간 나고 틈나면 짬짬이 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짜나 깨나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베풀어야 합니다.

자기 것을 챙기는 것보다 남 주기를 더 좋아하는 사람이 되어 선행과 구제에 힘써야 합니다.

선행과 구제하는 삶을 통하여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하나님께 인정받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2.동역자들이 함께 하는 삶(37-40)

 

[37] 그 때에 병들어 죽으매 시체를 씻어 다락에 누이니라 [38] 룻다가 욥바에서 가까운지라 제자들이 베드로가 거기 있음을 듣고 두 사람을 보내어 지체 말고 와 달라고 간청하여 [39] 베드로가 일어나 그들과 함께 가서 이르매 그들이 데리고 다락방에 올라가니 모든 과부가 베드로 곁에 서서 울며 도르가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지은 속옷과 겉옷을 다 내보이거늘 [40] 베드로가 사람을 다 내보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돌이켜 시체를 향하여 이르되 다비다야 일어나라 하니 그가 눈을 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는지라

 

본문에서 여제자라고 불릴 정도로 도르가는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하며 성도들 앞에 아름다운 본을 보이는 사람이었음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주신 말씀을 한 마디로 정리하면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도르가는 이 사랑을 몸소 실천한 사람입니다.

본문 어디에도 그 남편에 대한 언급이 나오지를 않고 있습니다. 그를 통해서 볼 때 도르가는 과부였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 그녀가 돌본 사람들이 있었는데 다른 과부들이었습니다. 이스라엘에 있어서 과부만큼 힘든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도 없습니다. 과부가 되어서도 여전히 가진 것이 좀 있다면 그래도 낫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정말 처량한 신세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 바로 과부입니다.

 

도르가는 선한 일을 많이 한 사람입니다. 그와 같이 생활했던 사람들은 그의 죽음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이 사람이 살았으면 더 좋은 일을 많이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39절 하반절에 "모든 과부가 베드로의 곁에 서서 울며 도르가가 저희와 함께 있을 때에 지은 속옷과 겉옷을 다 내어 보이거늘"
정말 아름다운 장면입니다. 도르가는 과부들을 위하여 정말 많은 수고를 하였습니다. 도르가의 도움을 입었던 과부들의 눈물이 베드로의 마음을 뜨겁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도르가를 위하여 기도하게 된 것입니다.

 

이 장면에서 즉 모든 과부가 베드로의 곁에 서서 울며 도르가가 저희와 함께 있을 때에 지은 속옷과 겉옷을 다 내어 보이라고 한 것은 도르가를 살려 달라는 간절한 요청입니다.

사도인 베드로 선생님이 하나님께 기도해서 도르가를 살려 내라는 간곡한 부탁입니다. 이것이 중보기도입니다. 도르가에게 이런 중보 기도자 과부들이 있었기 때문에 도르가가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도르가 라는 여인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과 베드로에게 인정받는 삶을 살게 된 데에는 많은 이유 있습니다. 그녀는 말씀에 입각하여 말씀을 실천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19924, LA 흑인 폭동 때의 일입니다. 대부분의 한인들이 운영하는 가게가 불에 타 버렸고, 그 피해는 엄청나게 컸습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서 오히려 흑인들의 도움을 받은 상점도 있었습니다.

매일 저녁, 가게의 물건을 정리할 때면, 거의 팔지 못할 정도의 식품이 생기면 쓰레기통에 버립니다. 그때 주인이 그 중에서 먹을 만한 것을 골라 깨끗이 포장해서 상점 주변의 굶주린 흑인들에게 주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언제부터인가 상점 한 모퉁이에 베니어판 몇 장으로 그들의 휴식처도 만들어 주었고, 그들은 대신 밤에 상점을 잘 돌보아 주었다고 합니다.
흑인 폭동이 나던 날, 그 흑인 거지들이 그들의 패거리들을 몰고 와서 그 상점을 지켜주었다고 합니다. 모든 상점이 불 타, 생활필수품이 귀할 때 그 가게는 큰 호황을 누렸다고 합니다.

평상시 어려운 사람을 돌봐준 선행이 결국 자기가 위기에 처했을 때, 구해주는 원동력이 된 것입니다. 우리가 평상시 다른 사람들에게 잘 해야 할 것을 말해 주는 교훈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기에게 도움이 되지 않거나 이익이 되지 않는 한,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거나, 다른 사람을 돕고 섬기는 일에 대해서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막상 자기가 어려움이 처했을 때는 그 때야 도움을 달라고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사정하고 요청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사람은 도움을 받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평상시에 남을 위해 헌신하고 봉사하던 사람은, 막상 본인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주변의 사람들이 앞장서서 일어나 그 사람을 돕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참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도르가가 살아 난 사건은 도르가가 생전에 선행과 구제에 힘쓴 일을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셨고 감동을 받으셨는가를 한 순간에 입증한 사건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추상적인 것이 아닙니다. 개념적인 것이 아닙니다. 옆에 있는 지체를 섬기는 것입니다.

 

도르가는 평소에 옆에 있는 지체들을 잘 섬겼습니다. 그 결과 많은 동역자들이 생겼고 그 동역자들이 도르가를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사람에게도 인정받으면 어려움을 당할 때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도르가가 남긴 것이 있다면 진실한 이웃입니다.
우리에게 진실한 이웃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모릅니다. 특별히 과부로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도르가는 진정한 이웃이 되어 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갚을 길 없는 자들에게 도우라고 하였습니다. 받을 줄 알고 돕는 것은 진정한 선행이 되지 못한 것을 말씀하였습니다.
다비다가 남긴 유산은 겉옷과 속옷 만이 아닙니다. 슬플 때에 같이 울어주고, 기쁠 때 함께 웃어주는 이웃이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 예수님 믿는 사람들이 세상 가운데 살면서 이런 선행을 실천한다면 전도를 다 받을 것입니다.

 

우리들 주변에 많은 믿음의 동역자들을 만드시고 동역들이 우리들과 마음을 같이하여 협력하는 것이 인정받는 삶입니다.

믿음의 동역자들과 마음을 같이하여 협력하는 삶을 통하여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하나님께 인정받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3.많은 사람이 주를 믿게 하는 삶(41-42)

 

[41] 베드로가 손을 내밀어 일으키고 성도들과 과부들을 불러 들여 그가 살아난 것을 보이니 [42] 온 욥바 사람이 알고 많은 사람이 주를 믿더라

 

베드로를 통하여 죽었던 도르가를 살린 기적의 결과는 온 욥바 사람이 이 소문을 듣게 되었고 살아난 도르가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주를 믿게 되었습니다.

 

당시 욥바에 교회가 있었지만 믿지 않는 사람이 훨씬 더 많았습니다. 그런데 본문에 보면 온 욥바 사람이 다 믿었다고 하였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이 더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온 욥바 사람이 예수님을 믿고 돌아왔습니다. 누구의 영향을 받은 것이 분명합니다.

그것은 도르가가 죽었다 살아나는 사건으로 인하여 성도들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믿는 사람의 영향을 받았고 믿는 사람은 그들에게 영향을 주었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전부 동화되어서 교회에 나와서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영향을 주었을지라도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닙니다. 신령한 성도는 영향을 주는 성도입니다. 세상의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영향을 받지 마시고 가는 곳마다 영향을 주는 우리들이 되어야 합니다.

 

도르가는 살았을 때에도 많은 일을 하였지만 그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남으로 욥바의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살아서보다 죽어서 더 많은 일을 하였습니다. 한 사람의 영향력은 아무리 평가하여도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사실 병을 고치고, 죽은 사람을 살리시는 하나님, 이런 하나님의 능력의 최종 목적은 영혼 구원입니다. 병이 낫는 것보다, 죽은 사람이 살아나는 것과 비교할 수 없이 아름답고 복된 것이 영혼이 구원받는 것입니다.

병이 나아도 40-50년 정도 더 살면 결국은 죽습니다.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도 4,50년 더 살면 다 죽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으면 영원히 삽니다. 영생을 얻습니다. 천국에서 영원한 영광을 누립니다. 그러니, 영혼 구원이 가장 큰 복입니다. 가장 큰 기적입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 받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베드로후서39절에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하나님의 관심은 영혼 구원입니다. 영혼 구원을 위해 헌신하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최대의 봉사입니다.

 

사람마다 자기의 재능과 소질에 따라 무슨 일이나 할 수 있지만 막상 하나님의 특별한 목적에 의하여 선택을 받게 되면 거기에다 자기의 인생을 걸어야 됩니다.

특히 영혼 구원을 위하여 하나님께 헌신된 사람은 그것만을 위해서 다른 것을 포기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마태복음1037-38절에 “[37]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38]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재물에 대한 집착이나, 가족에 대한 인정이나, 다른 어떤 것에 마음의 일부라도 빼앗기게 되면 목숨을 걸고 수행하여야 영혼 구원을 위한 사명에 전념할 수 없습니다.

 

교회는 어떤 재산을 축적하는 영리단체가 아니라, 사람의 영혼 구원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선포하는 구령단체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더욱 풍성한 경제사용권을 주시고 물질 관리권을 허락해 주십니다. 더욱 부요하고 자유로운 경제생활을 주 안에서 영위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산다는 것은 실제로 남을 위해서, 선을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최고선인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하여, 영혼 구원을 위하여, 세계선교를 위하여, 구제와 나눔을 위하여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도르가는 참으로 아름다운 구제와 선행으로 살았으므로 온 욥바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그만큼 다비다의 선행과 구제가 사람들을 감동케 하였습니다.

 

구제는 풍족할 때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비록 어려운 중에도 마음이 있으면 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은밀한 중에 보시고 계시는 하나님 앞에서 최선을 다해 은밀하게 구제를 해야 합니다.

 

히브리서1316절에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 주기를 잊지 말라 하나님은 이같은 제사를 기뻐하시느니라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주기를 잊지 말라는 말을 한마디로 줄이면 베풀고 나눈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랑은 표현을 해야 합니다. 형제자매를 사랑할 때에 그 사랑 표현은 베풀고 나누는 것입니다. 말로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과 실천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베풀고 나누기 위해서는 희생이 필요합니다. 모든 사랑이 다 그렇습니다만, 형제사랑도 희생이 필요합니다. 내가 쓰고 싶은 것을 다 쓰고 남는 것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쓰고 싶은 것을 참고 절약하고, 그리고는 베풀고 나누어 주는 것입니다.

희생을 하는 것입니다. 나 자신을 희생하고 헌신할 때에 형제자매 사랑이 됩니다.

 

오늘날은 전도가 안 된다고 하는 시대입니다. 그 이유 중의 하나가 섬김의 원리를 따라 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나보다 '못한' 사람, 나와 '같은' 사람, 나보다 '나은' 사람에게 나누고 돌보고 섬기는 사랑의 삶을 살아왔는지 돌아보시기를 바랍니다.

전도가 안 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섬김의 원리가 일상 속에 작동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기 세계에 갇혀 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욥바에 살던 여 제자 도르가는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았고 가난한 과부들에게 속옷과 겉옷을 만들어 주었는데 그것은 욥바 사람들의 기억과 하나님의 기억 속에 영원히 남는 것이 되었습니다.

 

로마 군인 백부장 고넬료는 유대 백성들을 많이 구제했는데 그것은 유대 백성들과 하나님의 기억 속에 영원히 남는 것이 되었습니다. "네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10:4).

 

장기려 박사는 자기의 재능과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사용했는데 그가 사용한 그의 재능과 재산은 그의 도움을 받은 수많은 사람들과 하나님의 기억 속에 영원히 남는 것이 되었습니다.

 

영화 쉰들러 리스트의 주인공 오스카 쉰들러는 많은 재물을 들여 유대인들의 생명을 구출했는데 그가 사용한 재물은 유대인들과 하나님의 기억 속에 영원히 남는 것이 되었습니다.


부흥되는 교회에는 도르가가 있습니다. 구제와 선행을 하는 일에 앞장서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님 말씀처럼 세상에서 빛으로 사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착한 행실이 널리 퍼졌고, 그들의 착한 행실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가 도르가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세상을 맛나게 하고, 세상을 변화시키고, 세상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되고, 세상을 밝게 하는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선행과 구제를 베풀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선행과 구제하는 삶을 통하여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하나님께 인정받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1.선행과 구제하는 삶(36)

2.동역자들이 함께 하는 삶(37-40)

3.많은 사람이 주를 믿게 하는 삶(4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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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답댓글 작성자진리수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7.07.24 감사합니다.
  • 작성자RKKYU | 작성시간 17.07.29 도르가의 모습을 본 받아 사람에게 또 하나님에게 인정 받는 삶을 살도록 하겠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진리수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7.07.29 감사합니다.
  • 작성자qortnrgml1010 | 작성시간 17.07.30 도르가처럼 선한일에 힘써 사람들과 하나님께 인정받는 삶을 살도록 하겠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진리수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7.07.30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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