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중요성(겔22:30-31)

작성자자료창고|작성시간23.06.05|조회수512 목록 댓글 0

2023.06.04. 대민(주일낮)

 

한 사람의 중요성(22:30-31) 대민성결교회 이석민 목사

 

[30] 이 땅을 위하여 성을 쌓으며 성 무너진 데를 막아 서서 나로 하여금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내가 그 가운데에서 찾다가 찾지 못하였으므로 [31] 내가 내 분노를 그들 위에 쏟으며 내 진노의 불로 멸하여 그들 행위대로 그들 머리에 보응하였느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사람은 누구에게나 심각한 위기가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예측 못 할 위기가 찾아옵니다.

사람에게는 위기가 찾아오는 것보다 더 위험한 것은 위기 불감증입니다.

분명히 위기에 처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위기의식이 없는 것입니다.

 

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가 있습니다. 사회가 몹시 위험합니다. 한국교회가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가정에 위기가 옵니다. 개인의 삶이 위기에 휘말릴 수 있습니다.

 

중국 사람들이 위기(危機)라는 단어를 만들 때위험기회를 합하여 만든 것은 참으로 슬기로운 착상이라고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들은 위험도 하나의 기회가 된다고 본 것입니다. 위기는 두려움이 아니라 도약의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1645, 단 한 표 차이로 올리버크롬웰은 영국의 통치권을 장악했습니다. 1649, 단 한 표 차이로 영국 왕 찰스 1세가 처형되었습니다. 1776, 단 한 표 차이로 미국은 독일어 대신 영어를 국어로 채택했습니다. 1923, 단 한 표 차이로 아돌프 히틀러는 나치당을 장악했습니다.

 

가끔 우리는 한 사람이 정말 중요함을 느낍니다. 특히 역사의 혼란기에는 한 사람이 더욱 중요합니다. 그 한 사람이 하나님 앞에 헌신 된 사람이라면 더욱 중요합니다. 나 한 명이 변화되면 가족도 살고, 교회도 살고, 나라도 살 수 있습니다

 

시대의 위기 때마다 한 사람이 나타나 위기를 구하는 일이 역사 속에 수없이 나타났습니다.

 

본문36절에 이 땅을 위하여 성을 쌓으며 성 무너진 데를 막아 서서 나로 하여금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내가 그 가운데에서 찾다가 찾지 못하였으므로

 

한마디로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지 못하도록 가로 막아서서 탄식하며 눈물 흘리면서 애원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성읍을 멸하지 않으려고 해도 하나님이 아무리 찾아보아도 그런 사람이 없어서 결국 하나님의 진노의 불로 멸했다는 말씀입니다.

 

멸망하는 역사의 마지막 단계에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사람은 중보기도를 할 사람입니다. 중보기도로 역사는 바뀝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바뀝니다.

한 사람의 뜨거운 눈물의 기도에 의해서도 역사는 바꾸어 집니다. 한 사람의 중보기도로도 하나님의 뜻이 바뀌어집니다.

 

모세가 증인입니다. 하나님의 진노 앞에서 중보의 기도, 내 이름을 차라리 지워달라고 기도한 그의 기도로 멸망을 면하였습니다.

 

시편10623절에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을 멸하리라 하셨으나 그가 택하신 모세가 그 어려움 가운데에서 그의 앞에 서서 그의 노를 돌이켜 멸하시지 아니하게 하였도다

 

중보기도를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기도의 응답을 확인해보시기를 바랍니다.

 

나라가 어려움을 당할 때 가정이 위기에 처할 때 한 사람의 중요성을 깨달아 위기를 극복하는 일에 쓰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1.이 땅을 위하여 성을 쌓는자(30)

 

이 땅을 위하여 성을 쌓으며 성 무너진 데를 막아 서서 나로 하여금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내가 그 가운데에서 찾다가 찾지 못하였으므로

 

불의(不義)는 나라를 패망케 하고 의()는 나라를 흥왕케 하는 법입니다(14:34). 그러므로 어느 시대이든 불의가 범람하면 나라가 망하고 의가 성하고 팽창하면 나라가 흥합니다. 그런 점에서 의인은 국방(國防)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경찰서 열 곳을 세우는 것보다 예배당 한 곳을 세우는 것이 나라를 위해서 더 유익하다는 김구 선생의 말씀처럼, 열명의 군경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나 한 명의 의인을 소유하는 것이 나라의 국방과 치안을 위해 보다 더 생산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유대 나라는 주전 586년에 바벨론에 의해 멸망했습니다. 그 이유는 우상을 숭배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격발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예루살렘 성은 훼파되어 폐허가 되었고, 성전은 무너져 터만 남았으며, 재산은 몰수되었고 백성들은 포로로 끌려 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면 응당 여기에 민족의 해방과 조국의 광복을 위한 재건 운동이 일어나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살펴보아도 이 폐허 위에 재건을 위해 그리고 더 큰 재난을 방지하기 위해 성을 쌓는 사람이 한 사람도 눈에 뜨이지 않았다고 하나님은 에스겔의 입을 통해 지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지만, 죄가 어느 한계를 넘어서면 심판을 내리십니다. 진노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렇게 진노하시는 가운데 사람을 찾으십니다. 누구를 찾느냐면 예루살렘을 멸망시키지 못하도록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여러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을 찾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도 찾지 못했습니다.

 

유다가 멸망한 직접적인 원인은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부패했다는 데 있지만, 더 근본적인 원인은 하나님이 멸망시키는 것을 막아서서 도고 기도를 하는 한 사람이 없었다는 데 있습니다.

 

유다민족은 상하(上下)를 물론 하고 모두 악한데, 이와 같은 민족적 죄악의 용서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와서 기도하는 자도 없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옛날의 모세와 같은(106:23) 도고자(禱告者)가 없었습니다. 18:23, 20:7; 32:11; 16:47-48; 5:1)

하나님께서는 멸망시키려고 진노의 막대기를 들었다가도 그 진노를 풀어드리는 사람이 있으면 진노를 쏟지 않으십니다. 그 진노의 팔을 멈추게 하는 사람이 없으면 진노가 그대로 쏟아져 내려올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회개하여 하나님의 진노의 팔을 멈추게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언제 쏟아져 내려올지 알 수 없으므로 성도는 항상 회개할 바를 찾아 회개하고 바른 신앙에 서서 이 시대를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말세가 다 된 것을 깨닫고 이 세대의 죄와 싸워 이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유다의 타락상을 꿰뚫어 보신 하나님은 그 땅을 위하여 무너진 성을 쌓아 올릴 사람을 찾으셨습니다. 자기 백성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그때나 지금이나 성을 쌓을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느헤미야를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느헤미야의 마음에 예루살렘 도성이 훼파된 사실로 인해 엄청난 부담을 가진 것을 아셨고, 그의 피맺힌 기도를 응답하셔서 예루살렘 성벽을 중건(重建)할 수 있도록 모든 길을 기적처럼 열어주셨습니다. 느헤미야는 무너진 성벽을 52일 만에 완전히 재건하였습니다

.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이스라엘의 미래에 대하여 복을 말하시면서 “...너를 일컬어 무너진 데를 수보하는 자”(58:12) 라고 하십니다. ‘무너진곳은 어떤 곳입니까? 백성들의 안전을 해치고 평화로운 삶을 박탈해 가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무너진 데를 다시 세우는 사람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성을 쌓고 무너진 데를 보수하는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그런데 나라에도 무너진 곳이 있을 수 있고, 교회에도 우리네 가정에도 무너진 곳이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어떤 공동체나 모임이나 개인의 삶 속에도 무너진 데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 시대, 세상과 교회가 함께 타락해버린 이 시대에 느헤미야와 같이 성벽을 쌓는 일에 목숨을 건 한 사람이 필요합니다.

 

1,900년대 초에 영국웨일즈(Wales)에 에반 로버츠(Evan Roberts)라고 하는 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부패한 영국을 바라보며 하나님, 부패한 영국을 구원해주옵소서라는 기도 제목으로 10년 이상 기도했습니다. 그가 도고를 10년 이상 드렸을 때 성령님께서 임하셔서 웨일즈에 엄청난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이 부흥으로 술집들이 문을 닫았고, 경찰서 유치장이 텅텅 비게 되었고, 사람들은 부정한 방법으로 벌어드린 돈을 돌려 주기도 하였고, 광부들은 탄광에서 찬송을 부르며 일을 하였고, 교회마다 차고 넘쳤으며, 2년 동안 10만명이 주께로 돌아오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에반 로버츠의 도고에 응답하신 하나님의 역사로 인한 부흥이었습니다.

 

성을 쌓고 완전무장한 성도는 절대로 쓰러지지 않습니다. 믿음과 기도가 성을 쌓는 도구입니다. 말씀과 기도로 항상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한사람이 중요합니다.

나 한사람이 가정을 지킬수가 있습니다. 나 한사람이 교회를 지킬수가 있습니다. 나 한사람이 이나라와 민족을 지킬수가 있습니다.

 

2.성터를 막는 자(30)

 

이 땅을 위하여 성을 쌓으며 성 무너진 데를 막아 서서 나로 하여금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내가 그 가운데에서 찾다가 찾지 못하였으므로

 

에스겔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위로부터 아래까지 대단히 패역한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중에서 선지자들의 패역함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들의 죄악은 마치 우는 사자가 식물을 움킴 같았다고 하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전하므로 사람의 영혼을 삼키는 일을 했습니다. 그리고 제사장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는 생활을 하고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별치 아니했으며 하나님의 성물을 더럽혔습니다. 그리고 이 땅의 백성들은 강포하여 가난한 사람들을 압제하며 늑탈할 뿐 아니라 불법으로 학대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더 이상 참지 못할 지경이 이르렀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이 이상의 불의를 더 이상 바라보실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중에서도 이스라엘 중에서 혹시 이들의 죄악을 인하여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채찍을 든 하나님의 손을 붙들고 막아 설 사람이 있는 가고 찾으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런 사람이 있으면 하나님은 그 사람의 눈물과 간구를 보시고 참으시려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 찾지 못하신 고로 그의 분노를 이스라엘의 머리 위에 쏟으셨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메시지를 듣지도 못하고 성결과 거룩이 무엇인지 잊어버리게 된 불쌍한 백성들, 악정 속에서 요령과 기회만을 배운 백성들은 이제 강도로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사회는 불신 풍조가 팽배했고, 두려움과 공포로 가득 찼습니다. 자신과 자기 가족의 이익을 위해서는 형제인 자기 민족끼리 서로 물고 뜯고 싸우게 되었습니다. 영적인 타락은 이제 사회 전체를 윤리적 타락으로 이끌어 갔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어졌기 때문에, 백성들 사이에 비록 예배의 형식은 남아 있었는지 모르지만 그 속에는 악한 영의 열매들로 가득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진노를 자초한 중요한 이유였던 것입니다.

 

공의의 하나님은 예루살렘의 무너진 모습을 아십니다.

통치의 하나님은 이 땅을 위하여 성 무너진 데를 막아서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예레미야를 통해서도 정의를 실행하며 진리는 구하는 자 한 사람을 찾으신다고 하셨습니다(5:1).

 

예루살렘을 향한 하나님의 분노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을 찾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이 살기를 원합니다.

사랑의 하나님은 응답을 미리 준비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막을 사람을 찾는다는 사실은 하나님께서 이미 용서의 응답을 준비하고 계심을 보여줍니다. 예루살렘이 망하지 않기를 원하신 것이 하나님의 본심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회복을 정해 놓으셨을 때 그것을 구하는 사람이 필요 합니다.(36:36-37).

 

사실 소돔의 멸망은 참으로 안타까운 과정을 거친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을 앞두고 아브라함과 하나님의 대화 과정이 그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소돔과 고모라에 심판이 임하지 않도록 중보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심판의 땅을 구해 보고자 하는 그의 노력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러나 소돔은 끝내 의인, 즉 경건한 사람 열 명이 없어서 멸망을 당하고 맙니다. 심판을 면하는 길은 다수의 사람이 의로워서가 아닙니다. 소수의 사람이 부패를 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와 교회의 타락을 막는 사람들은 이러한 소수의 경건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을 찾습니다.

 

한편 아브라함은 소돔과 고모라에 의인 50명이 있으면 멸하시지 말 것을 기도했습니다. 그는 다시 하나님께 나아가 45, 30, 20, 10명의 의인만 있어도 멸하시지 말 것을 기도했습니다. 결국 소돔과 고모라는 의인 10명이 없어서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실 때에 아브라함의 기도를 들으시고 롯을 구원하셨습니다(19:29).

 

모세는 범죄 한 자기 동족을 위해 중보 기도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기 위해 시내산에 올라 간 틈을 이용하여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애굽에서 인도해 낸 신이라며 광란을 부렸습니다. 이때 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셨습니다. 그 때에 모세는 여호와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였습니다. “여호와께로 다시 나아가 여짜오되 슬프도소이다.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주옵소서(32:31,32).” 그는 자기 이름이 생명책에서 지워질지라도 자기 백성을 구원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사무엘상1223절에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하지 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길을 너희에게 가르칠 것인즉

 

사무엘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범하지 않겠다고 하였습니다

 

로마서93절에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바울은 자기 동족을 위해 중보 기도하였습니다.

 

시편10623절에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을 멸하리라 하셨으나 그가 택하신 모세가 그 어려움 가운데에서 그의 앞에 서서 그의 노를 돌이켜 멸하시지 아니하게 하였도다

 

오늘 한 사람의 중요성은 이처럼 중요합니다. 성터를 막는 자는 기도하는 한 사람입니다.

 

3.행위대로 그들 머리에 보응하십니다.(31)

 

내가 내 분노를 그들 위에 쏟으며 내 진노의 불로 멸하여 그들 행위대로 그들 머리에 보응하였느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자업자득(自業自得)이란 한자성어가 있습니다. 이는 자신이 행한 일에 대하여 스스로 보응을 받는다는 인과응보(因果應報)적인 결말에 대한 교훈의 말입니다.

우리 속담 가운데 콩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말도 같은 의미의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사람이 무엇을 심든지 심은 대로 거두리라고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믿음을 심으면 믿음의 열매를 거둘 것이요 인내를 심으면 인내의 열매를, 용서를 심으면 용서의 열매를 거둘 것입니다. 또 사랑을 심으면 사랑의 열매를 맺습니다. 선을 행하면 선한 사람이 받을 상을 받을 것이요 의를 심으면 의의 열매를 거둡니다.

 

로마서26-11절에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하시리라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는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며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라 이는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심이라.”

 

이는 사도 바울이 행한 대로 보응 하시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에 대해 교훈한 말씀입니다.

유대민족은 교만하여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한 번 선택받은 민족은 어떤 죄를 지어도 복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심판하지 않으실 것이라는 잘못된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유대민족을 향해 경고했습니다. 아무리 선택받은 선민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이방인과 마찬가지로 행한 대로 심판하신다고 했습니다. 쉽게 죄를 짓고 회개하지도 않는다면 그 죄 값을 받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각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행한 대로 보응과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을 교훈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참고 선을 행하고 믿음으로 사는 자에게 영생을 보장하시고 영생의 나라에서의 영원한 유업을 허락하시는 반면, 불의를 쫓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분노와 진노가 있을 뿐입니다.

 

믿는다고 하면서 그것이 구호와 말에만 그치고 실질적으로는 아무런 행동의 변화가 없는 그런 신앙은 결국 하나님 앞에서 철저히 지적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현실은 자칫 올바른 진리를 쫓기 보다는 그릇된 불의의 길로 가기가 쉽습니다. 실질적으로 오늘의 상황은 우리가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서 사랑과 평화를 도모하기 보다는 개인적인 안락과 물질적인 행복을 위해서만 노력하도록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회는 점점 더 극렬히 분열하고 모두가 다 극도의 개인주의적인 삶을 영위합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하나님의 뜻을 골몰하여 찾고 그 뜻대로 살려고 하지 않는 자는 결과적으로 불의를 쫓는 자들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진리를 찾으려는 극렬한 몸부림과 그 진리대로 살려는 피나는 노력이 없으면 악의 세계에 편승하거나 무책임한 방관자로서 살아 가도록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더욱 두려운 사실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는 치열한 노력이 없는 자에게 하나님의 분노가 환난과 곤고로 임한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세상의 부조리 중에 하나가 악인이 흥왕하여 잘 사는 것입니다. 그 인생의 마지막이라도 비참하게 끝나거나 악행에 대한 보응을 받는다면 그나마 이해를 할수 있지만 죽을 때까지 아무런 보응을 받지 않고 잘 살다가 죽는 일에 대해서는 이해를 할 수 없습니다.

특히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공의를 믿는 성도에게 있어서 그러한 현상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이해가 가지 않을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에 읽는 동화책이나 만화에서는 언제나 악인의 최후는 멸망이고 선한 자가 행복하게 되는 것으로 결말을 맺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래서 악인들은 더욱 두려움 없이 악행을 일삼으며 교만하게 행하게 됩니다. 그러나 성경은 사람이 죽은 다음에 최후의 심판이 있음을 증거 함으로 의인과 악인에 대한 공정한 심판과 보응이 반드시 있을 것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죄인은 언젠가 마땅한 보응을 받게 된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인 것처럼, 아직까지 죄가 드러나지 않은 기독교인도 나중에 상당한 심판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결코 세상 권세의 유혹에 흔들림이 없이 언제나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의를 심는 데 주력해야 합니다.

 

시편3123절에 너희 모든 성도들아 여호와를 사랑하라 여호와께서 진실한 자를 보호하시고 교만하게 행하는 자에게 엄중히 갚으시느니라

 

성실한 자와 교만한 자의 결국을 대비시켜 하나님의 공의의 보응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성실한 자'란 곧 '하나님께 충성된 자 또는 그분을 절대 신뢰하는 자'를 가리킵니다. '교만히 행하는 자'는 하나님 대신 자신을 높이는 자를 가리킵니다. 결국 시인은 하나님께 대한 신뢰의 여부에 따라 상반된 보응을 받을 수밖에 없음을 말함으로써 '여호와 신앙'의 중요성을 최종 강조하고 있습니다.”[그랜드 주석]

 

시편1187절에 여호와께서 내 편이 되사 나를 돕는 자들 중에 계시니 그러므로 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보응하시는 것을 내가 보리로다

 

하나님과 한편인 자를 미워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미워하는 셈이며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상당한 보응을 내리실 것입니다. 원수들과의 싸움에서 성도는 결국 승리할 것입니다.

 

분문은 예루살렘 성읍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는 그런 실정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어찌 하나님께서 예루살렘 성읍을 심판하실 때 그것이 공의롭지 못하다고 항변할 사람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머잖아 하나님의 백보좌 심판 대 앞에, 하나님을 그 심령 속에 모시고 살지 않는 자들, 그리고 보호하시고 은혜를 베푸시고 갈 길을 인도해주시는 그 성령님의 음성을 끝내 거부하는 자들도 똑같이 심판하신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말씀입니다.

 

주의 법을 떠나서 어그러진 길로 행하며 합당치 못한 일을 행하는 모든 사람들은 이에 대한 보응을 받도록 되어 있으며, 단 한 사람도 피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의 보복적인 응징은 벌써 수차 우리의 주의를 끈바 있습니다.(7:3,4 9:10 16:43)

 

하나님의 원리는 한 사람이 중요합니다.

노아의 시대 때 의인이 노아 하나였습니다. 그 노아 한 사람 때문에 우리가 아직 살아 있고, 인류가 유지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땅에 기근이 났을 때 이스라엘 백성 전부를 살린 사람이

요셉 한 사람이었다.

 

성경의 원리는 그만큼 한 사람이 중요합니다.

 

1.이땅을 위하여 성을 쌓는자(30)

2.성터를 막는 자(30)

3.행위대로 그들 머리에 보응하신다 하십니다.(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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