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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계절 고기잡이

작성자和敬堂|작성시간17.02.21|조회수196 목록 댓글 0

나의 사계절 고기잡이

 

나는 낙동강 줄기가 고향마을 용전천(龍纏川)으로 모여 들어 길고 넓은 시내와 반짝이는 금모래가 있는 곳에서 살았다. 그래서 물고기, 다슬기등이 풍부했고 필요 할때 마다 냇가에 나가면 얻을 수 있기 때문에 김치류 외에는 저장 음식이 필요 없는 늘 마음을 넉넉하게 한 곳이다.

 

지금 생각해 보니 계절에 맞게 남녀노소 누구나 어느 정도는 어획을 할 수 있는 기술이 있었다. 나 역시 놀이의 절반은 물가에서 이루어졌고 계절과 상관없이 물고기를 능숙하게 잡는 방법을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곁눈으로 익혔다.

 

오빠나 아버지께서는 물고기를 잡으러 갈 때마다, 수대라도 들릴 요랑으로 날 데리고 다녔다. 그들 틈에서 인정받기 위해서 아무리 험한 길이어도 한 몫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을까! 아직 여물지도 못한 연약한 다리를 후들거려 가며 가깝게는 앞 거랑에서, 멀리는 오리가 더 되는 송생 마을 거랑까지 자갈길과 나무 등걸을 피하여 타고 넘으며 고기를 담을 수대를 들고 따라 다녔다.

 

초봄의 고기잡이는 잔잔한 재미가 있다. 음력 이월 농사철이지만 가뭄으로 냇물은 반으로 줄어들어 신발이 잠기지 않을 만큼 겨우 졸졸졸 흘르고, 물속을 들여다봐도 겨울 가뭄에 매끈하게 청태가 감긴 돌 밖에 보이지 않지만, 나를 비롯해 우리 마을 고기잡이들은 돌 아래에 숨어 있는 물고기를 다 찾아내는 재주가 있었다.

 

이때는 주로 땅이나 돌무지 아래에 바짝 엎드려 사는 진갈색 뚜구리, 침이 달린 누런 텅괄로, 알록달록 꺼레, 수수를 닮아 붉은 빛이 나는 수꾸꺼레나 혹 운 좋으면 도망 못간 작은 꺽지가 주 어종이어서 물고기를 잡아도 흥분이 되지는 않지만, 그러나 큰 힘 들지 않고 재미를 볼 수 있다.

 

초봄 냇가는 얼음이 녹은 물이어서 발을 성큼 넣기는 무리가 된다. 그래서 햇살이 바짝 오른 오후 서너시경에 큰 맘을 먹고 가야 된다. 반도를 놓는 위치는 소량의 물이라도 낙차 되는 곳을 찾아 다리를 벌려 꽉 고정을 한 후 한 손으로는 돌을 차례로 살그머니 뒤집으면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반드시 한 마리 이상은 그물 속으로 쏙 들어온다.

 

한 두번 고기가 있는 곳이라는 감을 잡으면 오빠는 반도를 쫄쫄 흐르는 물결이 있는 곳으로 찾아 땅에 바싹 붙이고, 나더러 꽉 잡으라고 한 후 준비한 작은 물괭이로 서너 걸음 위에서 자갈을 사정없이 긁는다. 희뿌연 흙탕물과 함께 언제 들어갔는지도 모르게 서너 마리 이상 물고기가 잡히면, 이때는 저절로 여유가 생겨 작은 물고기는 강으로 놓아 주는 아량도 베푼다.

 

그러나 봄철 물고기는 대부분 몸집이 작아 여간해서 어획 양이 늘지 않는다. 그래서 많이 잡으려고 욕심을 부리면 감기도 걸리고 몸살이 나기 때문에 한 사발 저녁거리라도 되면 반드시 집으로 돌아와야 뒤탈이 없었다.

 

초여름은 고기잡이는 큰물이 지기 전이어서 어종이 다양하지 않다. 들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발을 씻고 세수도 하고 허리를 숙여 돌무지 몇 개를 쌓아 놓으셨다가 새벽에 나를 깨워 거랑으로 가서, 돌무지를 뜯으면 물고기가 신기하게도 아침 밥상을 차릴 만큼 소복하게 들어 있었다. 오뉴월 보릿고개에 천혜의 조건으로 보식을 할 수 있어, “청운 사람들은 물 피가 이웃 동네와 다르게 훤하다라는 말을 듣게 된 것도 천연 단백질의 효과였던 것 같다.

 

본격적 여름이 되면 뜨거운 태양으로 일손을 놓은 온 동리 사람들이 정말 활기차게 물가로 모인다.

 

장마로 높다란 공굴 다리가 넘쳐 나면 깊은 물속에서 숨어 살던 이름 모를 고기들이 모두 물가로 나온다. 이때라 하고 몇몇은 자기의 고무신이 떠내려가는 것을 보면서도 가재비라 부르는 고기잡이를 하였다. 풀 바게쓰가 넘치도록 고기를 잡으면 이날은 온 동리 사람들이 매운탕을 해 먹기도 하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나 위험하였지만, 여름철에 한 두번 생기는 물 구경, 고기구경을 할 수 있는 그 신기한 기회를 절대로 놓칠 수 없었을 것이다.

 

장마가 지나면 물결이 고요해진다. 환한 하얀 자갈이 보이고 각양각색의 물고기가 멱을 감는 우리 발가락을 간질이며 다닐 정도로 수다워진다.

 

언제보아도 신기하게 생긴 날쌘 왕피리, 세련되게 꼬리를 치며 헤엄치는 세말로고기, 무지개색의 비늘과 휘황찬란한 왕관머리를 가진 먹지와 같이 위엄을 보이는 물고기가 무리를 지어 오르락내리락 거리고, 물살에 깍여 매끈해진 새색시 같은 갈색 골뱅이가 돌맹이에 다닥다닥 붙어 우리와 하루 종일 놀아 줄 때도 있었다.

 

여름 농사철에는 친구들이 동생을 돌보야 되기 때문에 동생이 없는 나는 학교를 마치면 거의 매일 밀기울에 된장을 섞어 고기를 유인하는 삼반을 놓는 재미로 살았다.

 

은빛 피라미를 잡는 기술이 날로 늘어나 어떤 날은 물가에 있는 모시줄기를 꺽고 엮어 말려서 집에 가지고 가면, 아버지가 빙그레 웃으시기도 하였다. 어떤 날은 물가에 작은 연못을 파서 다음날 까지 넣어 두었다가 다시 물로 보내 주기도 하며 여름을 보냈다.

 

가장 재미있었던 고기잡이는 여름 휴가철에 가족들이 우르르 모여 약간의 모험심이 발휘되어 깊은 곳으로 가서 고기를 잡는데, 큰 고기가 있을 것 같은 장소로 간다.

 

가족이 즐겨가던 곳은 월구들로, 물버들과 잎이 무성해진 버드개비, 속새가 우거져 그늘이 지고 어른 허리정도의 물이 차 있는 곳이다.

 

깊은 곳에서는 큰 고기가 산다며 허리까지 물찬 곳에 작은오빠가 앞장서서 먼저 막대기로 물버들과 버들개지가지를 흔들면 둘째오빠가 치는 반도 속으로 놀란 고기가 쑥쑥 들어간다. 이때 보는 고기는 자잘한 피라미나 보고 좋아라 하던 것과는 정말 수준이 다르다.

 

그리고는 큰 바위에 숨어 버린 고기를 장비를 이용해 찾는다. 지렛대로 끄덕거리면 숨어 있던 잉어 만한 붕어, 뱀장어, 메기, 먹지, 꺽지가 푸드득 뛰어나오고, 지렛대로 안 되면 큰 돌을 들어 벼락치기라 하는 방법으로 내리치면 간혹 커다란 뱀장어가 느릿느릿 스스르 나타나는데 반도 속에서 퍼덕거리는 그 모습은 정말 대단하다.

 

그날은 고추장과 된장과 청양고추를 넣고 찌지고, 피라미는 튀기고 잡다한 고기는 매운탕을 끓여서 먹으면 큰 돈 없이도 서른명 정도의 가족이 멋진 여름휴가를 보낼 수 있다.

 

고기잡이 베드로라는 별칭을 가질 만큼 신출귀몰한 둘째오빠가 갈대가 우거진 물가로 가서 숨어 있는 고기를 찾아내는 것을 보았으니, 훗날에 읽었지만 고기잡이는 갈대를 꺽지 않는다라는 김주영의 소설을 읽으니 매우 공감이 되었다.

 

여름철 고기잡이가 지나면 강 언덕 만취정을 시작으로 붉은 가을이 찾아오면 거랑 고기들도 고기잡이들도 모두 쉬는 계절이다.

 

장마와 피서 때문에 몸살이 났던 물고기들도 조용한 틈을 타 번식을 해야 되고, 사람들은가을걷이에 일손도 부족한데 거랑 고기가 눈에 보여도 물가로 갈 겨를이 없는 시점이다.

 

수확한 음식만으로도 충분한 먹거리가 되니 강을 헤메다닐 필요도 없고, 봇물이 들고 빠지는 논에 벼농사를 마치면 논바닥에 있는 황금미꾸라지를 잡아 추어탕을 끓여먹는 것만으로도 풍성하니 가을 냇가는 저절로 고요해 진다.

 

가랑잎이 하나둘 떨어지고 겨울이 오면 커다란 거랑은 쩡쩡 울음소리를 내며 그만 얼어 버린다. 동리장정들이 겨우내 불쏘시개를 할 작정으로 만취정 주변의 참나무 잎들과 소나무 갈비를 포대기에 담아 얼음위로 힘껏 던져도 끄덕도 않고 받아 낼 만큼 얼음 두께가 깊다.

 

밤이 일찍 찾아오는 산골 마을 아이들은 저녁 일곱시면 잠자리에 든다. 겨울 찬 바람을 이길 군불을 넉넉히 지피고 따끈한 방에 형제들이 나란히 누워 있노라면 얼음 어는 소리가 우우 쩡쩡거리고, 지진 소리처럼 구들장을 울리는 소리를 나는 똑똑히 기억한다. 무서워 이불을 덮어쓰면 일부러 아버지는 얼음 어는 소리 보이께네 내일은 거랑에 시겟토 타러가도 될 따!” 하신다.

 

이때부터 겨울고기잡이는 시작이 된다. 얼음이 얼면 우르르 몰려나와 하얀 빙판 위를 막대기에 불을 피워 살살 돌려 동그란 구멍을 만들고 얼음 위에서 낚시를 한다. 말은 낚시라고 하지만 나뭇가지에 낙시줄을 달고 밥풀을 꽂아 넣으면 신기하게도 물고기가 쏙쏙 올라와 구경거리가 됐다. 조그만 빙판 구멍을 쪼그려 앉아 보면 얼음 아래로 유유히 다니는 물고기가 무척 신기하게 보였다.

 

우리 마을이 유난히 인정이 많은 것은 사시사철 끊임없이 흐르는 물과, 하늘이 내려주는 메추라기와 맛나처럼 늘 제공되는 물고기, 조개, 다슬기등 천혜의 자원 덕분인 것 같다.

 

큰 바다를 바라보며 성장한 사람들이 대부분 마음이 넓다고 한다. 나도 어린 시절부터 풍부한 먹걸이가 있는 고향 마을 덕분에 어지간 어려워도 어찌 살아갈꼬!” 란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고기잡이와 관련하여 웃지 못할 사건을 일으킨 에피소드가 있다.

 

결혼하여 시댁에서 살던 첫 해였다. 시집동네는 물이 말라 버린 건천 외에는 도랑도 없는 곳이었다. 설렁설렁 큰 냇가에서 빨래를 하던 버릇이 있어 수돗물로 빨래하는 것이 답답하던 차, 1987년 이다, 그해 큰 홍수가 나서 커다란 마을 위에 오래된 갈평 못물이 넘쳐흘러 건천에 물이 흐른다고 난리가 났다. 나도 빨래거리를 챙겨 천변으로 나갔다. 못물이 넘치자 고기도 방출되어 내 눈앞에 까지 온 것이다. 주변을 전혀 의식하지 안하고 어릴적 부터 단련된 솜씨로 빨래 방망이 벼락치기 기법으로 한사발의 고기를 잡았다. 마을 사람들 눈에 처음 보는 광경으로 기가 막힌 노릇이었다고 한다. 갓 시집온 무실댁 며느리가 제정신이 아니었다고도 하고, 어떤 이 들은 시모에게 와서 이집 새며느리가 대단해! 하면서 빈정대기도 하였다.

 

이웃 집안 어른들도 선생 며느리를 봤다더니 어디서 상놈 행세하는 것을 보고 컸다고 걱정이 이만 저만 아니었다. 본대로 배운 대로 고기잡이를 했는데 그만 작은 마을에 큰 뉴스가 된 것이다.

 

그래도 물고기 요리를 친정에서 배운대로 맛나게 해서 대접을 하였다. 가족들에게 죄송하다고 말을 하니 웃어 넘겨주었지만 지금도 마을에서는 30년 전 그날의 일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주왕산 치마 끝자락 청운리(靑雲里), 깊지도 얕지도 않는 개울이 부채살처럼 둘러 있어, 나에게 풍요와 자유로운 영혼을 가르쳐준 고향의 강

힘든 일이 닥치면 늘 달려가 헤엄칠 수 있는 마음속 고향의 강은 늘 그림처럼 아름답고 풍성하다.

 

 

2016103일 화경당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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