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승려동기의 글 옮김
삼성전자 성과급 합의가 주는 역겨움을 논한다(2)
삼성전자의 2026년 임금교섭 잠정합의안이 예상대로 어제(5월27일) 통과되었다.(투표참여 노조원의 73.7% 찬성) 하지만 갈등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협상에서 배제된 동행노조(DX부문 직원 노조)와 성과급에 막대한 재원이 소모되는 것에 반감을 가진 주주단체의 반발이 여전히 거세기 때문이다.
그제(26일) 성과급에 불만을 품은 DX부문 직원들이 투표 참여를 위해 대거 동행노조에 가입(2,300명 ->13,000여명)하자 초기업노조가 교섭단 탈퇴를 이유로 동행노조의 투표권을 박탈한 것은 재량권남용이고 위법이라며 이날 오전 9시 수원지법에 노사합의안 찬반투표 절차 중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한다.
물론 법원이 하루 만에 심문기일을 잡고 재판을 열어 판단을 내리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고 또 13,000명이 전부 반대표를 던지더라도 숫적으로 부결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노노갈등이 여기서 끝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메모리가 적자 날 때 먹여 살렸는데 100분의 1인 600만 원밖에 안 준다고?” “적자 낸 비메모리도 1억 6,000만 원이나 주면서?” 이런 감정이 쉽게 사그라들 리 없을 것이다.
아마도 합의안 효력정지가처분을 새로 신청하면서 동시에 본안소송인 투표 및 합의안 무효확인 소송을 제기할 것으로 보인다.
기어이 본안소송까지 이어진다면 한 지붕 두 원수 가족이 되어버리는데 앞으로 어찌 한솥밥을 계속 먹고 살아갈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주주단체가 역시 이사회와 주주총회의 의결을 거치지 않은 성과급 합의는 위법이라며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선언했고 삼성전자로부터 주주명부를 넘겨받았다고 하니 소액주주들에게 동참을 요청하는 서한을 발송하는 등 주주결집을 한 뒤 본격적인 소송을 제기할 것으로 보인다.
주주들이 분통을 터트리는 이유는 성과급의 규모가 너무 과도하여서 주주의 배당권을 침해받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인데. 법리적으로는 일단 주주단체의 주장이 불리해 보인다. 법원이 사건 자체를 기각할 가능성도 높은 상황이다.
상법은 제388조(이사의보수)에서 “이사의 보수는 그 액을 정하지 아니한 때에는 주주총회의 결의로 이를 정한다”고 규정한 반면 일반 근로자는 회사의 경영진이 아니라 고용계약을 맺은 피용자이므로 임금이나 성과급을 결정을 주주총회 결의사항으로 규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신에 근로기준법이나 노동조합법에 의거하여 얼마든지 노사합의로 집행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통설이기도 하다.
그럼 상법에는 임원의 보수를 주총 의결을 거치도록 강행규정을 두면서 일반 근로자의 성과급은 왜 주총 의결이 빠져있는 걸까?
그 이유는 이사가 자신의 보수를 스스로 책정하여 회사의 이익을 침해하는 이른바 '셀프 보수(월급, 상여, 성과급, 퇴직금, 위로금 등 명칭을 불문)'의 폐해를 막을 필요가 있지만, 일반 근로자는 '고용 계약'을 맺은 피용자이기 때문에 상법에서 통제할 대상도 아니었고 성과급 지급 대상도 아니어서 규정해야할 법이익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즉 일반근로자는 경제적 약자이므로 노동법, 근로기준법, 노동조합법 등을 두고 보호해야 하는 대상이었지 규제하고 통제할 대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한편 주주총회는 상법 또는 정관이 정한 사항에 한하여서만 결의할 수 있는데(상법 제361조) 상법에는 일반 근로자의 임금이나 성과급 결정을 주주총회 결의사항으로 둔 규정이 전혀 없다는 게(규정 부존재) 결정적으로 불리한 상황이다.
그렇다면 삼성전자의 경우를 좀 더 과장하여 노조가 영업이익의 50%를 주지 않으면 전면 파업하겠다고 나섰다고 가정해보자. 그렇게 되면 회사는 당장의 손실뿐 아니라 향후 판매망이 무너지게 되어 회사의 존립이 위태롭다고 판단하여 40%를 주기로 합의한 결과 회사가 최대이익을 냈음에도 시설투자와 R&D투자로 인해 배당 재원이 고갈되어 주주에게 배당할 수 없게 되었더라도(무배당) 주주는 노사합의를 인정해야 하는가라는 의문이 생긴다.
상법에서 이사의 보수만 규정한 것은 근로자에게 과도한 임금이 지급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상식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삼성전자의 경우는 일반근로자가 평생 저축해야 하는 겨우 모을 수 있는 거액을 지급하는 상황이고, 더우기 그 공로가 노동의 대가라기보다 업황의 변화 때문인 경우에도 규정에 없다는 이유로 그냥 뭉개버릴 수 있는 문제일까?
예전에 절도는 타인이 점유하고 있는 재물(유형)을 절취하는 것이어서 전기가 발명되었을 때 전기(무형)를 절도의 목적물에 포함시키는 것에 논란이 있었지만 결국 포함될 수 밖에 없었던 것처럼 과거의 상식이 깨졌음에도 법이 현실을 따라가지 못해서 생기는 간극은 결국 법관의 판단이 바로 잡아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제의 핵심 사항을 정리하기 위해 부언하면, 상법이 제정될 당시(1962년)의 근로자는 생계유지형 임금을 받는 약자였기에 통제의 대상이 아니었으나 이사는 회사의 주인인 주주의 돈을 횡령할 수 있는 '대리인'이었기에 상법 제388조로 묶어둔 것이다. 그런데 삼성전자가 위의 예시처럼 회사의 존립을 위해 영업이익의 40%를 성과급으로 던져주고 주주에게 무배당을 결정했더라도 현재의 법리로는 이 노사합의를 법적으로 무효화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삼성전자와 같은 사례는 노동권이 주주 자본주의를 훼손하고 있다는 본질적인 모순점을 가지고 있어서 충분히 법적으로 다툴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먼저 노동의 대가가 아닌 '업황(운)'의 과실 즉 반도체 사이클이나 글로벌 공급망 변화로 앉아서 번 돈(초과이윤)인데, 주주 배당이나 회사의 미래 투자 재원으로 써야할 막대한 자금을 근로자가 가져가는 것이 정당한가에 대한 의문이다.
주주에게 갈 배당금을 '성과급'이라는 비용 명목으로 빼돌려 근로자에게만 분배한다면, 이는 사실상 '은폐된 이익처분'이 된다. 이사들이 주총을 피하려고 보수 대신 성과급으로 챙기면 처벌받듯, 근로자의 성과급도 일정 규모를 넘으면 사실상 이익분배(Dividend)로 보아야 하지 않겠냐는 문제제기를 할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전술한 전기(Electricity)의 예시처럼 법이 시대의 흐름을 쫒아가지 못해서 생긴 간극과 불합리를 법관이 법타령(교조적인 법해석)만 하고 방관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해결 방법인지 의문이다.
전기의 발명만큼이나 대기업 노동·자본 구조의 변화는 제도나 삶의 근간을 파괴적으로 바꾼다 할 만큼 획기적이다. 거액의 성과급이 주주의 이익을 실질적으로 약탈하는 수단으로 변질되고 있다면, 법원 역시 '주주 재산권 보호'와 '경영진의 배임 책임'을 묻는 방향으로 판례를 대전환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고 할 것이다. 시대의 간극을 메우는 것은 결국 법관의 용기와 입법자의 책임이라고 할 것이다.
"전기는 눈에 보이지 않으니 재물이 아니다"라며 절도죄로 처벌을 못 하다가, 결국 시대의 변화에 따라 형법 제346조(동력)에서 "관리할 수 있는 동력은 재물로 간주한다"를 신설하고 해석을 넓혀 문제를 해결했던 것처럼 대기업 근로자의 거액 성과급 문제도 법관의 전향적 해석이나 입법적 보완이 필요한 시점에 와 있다 하겠다.
그래서 법원은 미국처럼 경영진이 회사뿐만 아니라 '주주에 대한 직접적인 신의성실 의무를 진다고 해석하여 상식을 뛰어넘는 거액을 근로자에게 성과급으로 주는 합의로 인해 주주의 재산권을 침해한 경영진에게 임무해태(배임)나 권리남용을 따지고 법관이 해당 노사합의의 효력을 제한하거나 경영진에게 손해배상 책임을 묻는 문제를 전향적으로 고민하라고 요구하는 한편 주주단체가 제기한 재판도 용기 있는 법관이 나서서 솔로몬의 판결을 내려줄 것을 기대해 본다.
그리고 입법부도 일반적인 임금은 노사합의로 하되, 거액의 성과급 지급에 대해서는 이사 보수처럼 주주총회의 한도 승인을 받도록 상법을 개정하는 일을 서둘러 주기를 당부한다.
한편 노조의 과도한 성과급 독점은 주주의 몫을 부당하게 침해하는 행위이므로 이를 막기 위한 미국과 유럽에서 시행 중인 방안 2가지를 소개해본다.
- 성과급 환수제(Clawback)는 임직원이 과거성과를 기준으로 받은 성과급(보너스)을 사후에 다시 환수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로 임직원이 단기성과에 집중하거나 과도한 위험을 감수해 단기적인 실적을 낸 이후 손실이나 불완전판매 등 부실이 드러나는 관행을 막기 위한 장치이고
- 세이온페이(Say-on-Pay)는 경영진 보수를 이사회가 일방적으로 정하지 못하도록 주주총회에서 심의, 승인 받도록 하는 주주 투표제인데 일정 금액이나 비율을 초과하는 직원들의 성과급 지급에 대해서도 주주총회 표결을 거치도록 확대 시행하는 방안이다.
공권력으로 대기업 초과이익을 재분배하겠다고?
삼성전자 노사합의 최종 조정자로 나섰던 김영훈 노동부 장관이 어제(5월27일) 출입기자단 차담회에서 "삼성 노사 합의는 단순한 보상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사회가 향후 나아가야 할 '재분배'의 방향을 제시한 중요한 사건"이라고 하면서 "이제는 대기업의 초과 이익을 어떻게 사회적으로 분배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는 뉴스를 접했다.
김 장관은 최근에 불거진 대기업 초과이윤 분배와 원·하청 간 격차 문제를 언급하며 "기업의 초과 이익을 어떻게 재분배할 것인지, 스원덴의 '사회연대임금제'를 거론하며 한국형사회연대임금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시론을 열고 싶다면서 노동부가 주관하여 다음 주 월요일(6월1일)에 열겠다고 공언하였다.
아울러 삼성전자는 사기업이지만 우리에게 반도체는 공기(空氣)와 같은 것이 됐으니 민간기업이 자본과 노동을 투여해 만든 재화라도 그 성격이 공적이라면 정규직이나 대기업 주주들만 배타적으로 이익을 가져가는 것이 맞는지 사회적 대화를 해보자는 취지라고 하였다.
대기업이 만든 막대한 이익을 정부가 주도해서 나누겠다는 발언을 들으면서 "이것은 시장경제의 근간을 흔드는 사회주의적 발상 아닌가"라는 거부감과 불편함이 느껴진 것은 나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장관이 언급한대로 대기업 정규직 노조가 파업을 무기로 초과이윤을 독점하면서, 정작 밑바닥에서 고생하는 중소 하청업체 근로자들과의 격차가 극단적으로 벌어지는 현상은 자본주의 체제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사태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가 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주주 몫까지 언급한 것은 경악스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자유시장경제 체제에서 위험을 감수하고 자본을 투자한 주주와 혁신을 이끈 기업의 노력으로 얻은 기업의 이익을 정부가 '재분배'라는 이름으로 직접 룰을 정하려 들면 필연적으로 기업의 투자 의욕이 꺾이면서 자본주의의 활력이 저하될 위험이 커진다. 따라서 주주들에게 스스로 감시하고 통제할 수 있는 제도적 무기를 쥐여주는 것이 보다 시장경제에 부합한다 할 것이다.
정부의 강제적·사회주의적 개입 대신 자유시장경제의 틀을 유지하면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시장친화적인 대안을 제시해본다.
먼저 귀족노조라는 용어가 귀에 익을 만큼 노조의 파워(권력)가 지나치게 막강해졌다. 따라서 정부가 기업의 돈을 뺏어 하청업체에 나눠주는 방식이 아니라, 대기업 노조가 가진 과도한 기득권과 독점적 교섭력을 깨뜨려 시장 원리가 정상 작동하게 만드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대안이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과도하고 비대해진 노조 권력을 줄여야 한다. 대체근로를 허용하여 노사 간의 힘의 균형을 맞추면, 시장 상식에 벗어나는 과도한 성과급 요구나 합의를 자연스럽게 막을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근속연수만 차면 생산성과 무관하게 억대 연봉을 받는 대기업의 고착화된 임금구조(호봉제)를 깨고, 미국이나 유럽처럼 '하는 일의 가치'에 따라 임금을 주는 직무급제를 확산시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근본적인 임금 격차를 줄여야 할 것이다.
전술했던 개인별 사업부제를 가다듬으면 대안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해본다.
다음으로 정부가 법이나 제도로 강제하는 대신, 대기업이 자발적으로 하청업체나 지역사회에 이익을 공유했을 때 세금을 깎아주거나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을 도입할 것을 제안한다. 채찍보다는 당근이 보다 시장 친화적이고 기업 버거넌스에도 부합하는 해법이라서 거부감도 덜할 것이다.
도움이 될만한 방안들을 정리해보면,
1) 대체 근무 허용으로 노사간 균형 추구
2) 일의 가치'에 따라 임금을 주는 직무급제 시행으로 대기업과 중소기업 임금격차 해소
3) 대기업이 초과이익의 일부를 사내 정규직 성과급으로 다 쓰지 않고 '대·중소기업 상생협력기금'에 출연하여 하청업체 근로자의 복지나 안전시설에 투자할 경우, 그 금액에 대해 강력한 세액공제 혜택을 주는 방안
4) 연기금(국민연금 등)의 투자 조건이나 국가 조달 사업 입찰 시 '원·하청 임금 격차 해소 노력'을 중요한 자율 평가지표로 반영하여 기업들이 주주가치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자발적으로 하청기업과의 상생을 선택하게 하는 방안 등이 있다.
참고로 김 장관이 언급했던 스웨덴의 '사회연대임금'은 1950년대에 도입되었다가, 기업들의 혁신 의지를 꺾고 우수한 인재들이 해외로 도피하는 부작용을 낳으며 결국 1980년대에 사실상 폐기되었다. 역설적이게도 정부가 임금과 이익 분배에 직접 개입한 모델은 실패했음을 보여준 사례로 꼽힌다.
무엇보다도 대기업 근무 근로자들의 반발이 100% 예상되는 상황이라 새로운 노노갈등을 유발할 수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를 줄여 "함께 살아야 한다"는 정부의 문제의식 자체는 우리 사회가 고민해야 할 과제가 맞다. 다만 그 방법론은 정부가 칼을 쥐고 흔드는 '재분배 정책'이 아니라, 노조의 과도한 특권을 내려놓게 만드는 노동개혁, 기업의 자발성을 이끌어내는 세제 혜택, 그리고 주주의 견제권을 강화하는 방식이 자본주의 체제에 훨씬 건강하고 부작용이 적은 대안이 될 것이라는 점을 유념했으면 한다.
사족으로 두 가지 이야기를 더 하고 싶다.
1. 첫 번째 이야기
법(法)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아이콘이 천칭(天秤, balance scale)으로 불리는 저울이다.
천칭은 단순히 무거운가 가벼운가를 판단하는 도구가 아니라, 양쪽의 무게를 대조하여 '수평'을 맞추는 다시 말해 균형을 찾는 도구이기 때문에 법이 지향하는 보편타당성, 상식, 그리고 균형이 천칭의 구조와 작동 원리 속에 자동하면서 서로를 지탱하고 있다. 이 관계를 천칭의 모습에 빗대어 풀어보면,
1. 천칭의 기준인 추 : 상식(Common Sense)
천칭으로 어떤 물건의 무게를 재려면 반드시 반대편에 올려놓을 '기준이 되는 추'가 필요하다.기준이 되는 추가 엉터리라면 저울은 아무리 수평을 맞춰도 아무런 의미가 없니다. 법의 세계에서 이 기준 추가 바로 '상식'이라고 본다.
법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10계명 같은 신비한 율법이 아니라, 그 사회 구성원들이 오랜 시간 살아오며 쌓아 올린 "이 정도가 정당하다"고 믿는 상식의 집약체이다.
전술한 "이사의 셀프 보수를 제한하는 법"이나 "전기를 재물로 볼 것인가"에 대한 논의도, 결국 평범한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상식적인 선이 어디인가를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상식이라는 단단한 추가 중심을 제대로 잡아주어야만 법은 비로소 올바로 작동하게 되는 것이다.
2. 천칭의 '양쪽 접시 : 균형 (Balance)
천칭에는 두 개의 접시가 매달려 있다. 법이 마주하는 현실은 언제나 이 두 개의 접시 위에서 치열하게 대립하는 가치와 이익의 싸움이라고 본다.
기업의 이익과 노동자의 생존권, 주주의 재산권과 사회적 재분배, 처벌의 필요성과 피고인의 인권 등 법의 저울판 위에는 늘 상반된 목소리가 올라오기 마련이다.
법이 말하는 '균형'이란 어느 한쪽의 접시를 바닥에 내팽개치고 다른 한쪽만 들어 올리는 것이 아니다. 양쪽의 사정을 치열하게 달아보고, 지나치게 기울어진 쪽이 있다면 법적인 조정을 통해 어느 한쪽도 억울하지 않는 '수평의 상태'를 만들어내는 역동적인 과정을 말한다.
삼성전자의의 성과급 논란 역시 근로자 간의 형평성과 노조의 요구와 주주의 재산권이라는 두 접시의 균형이 무너졌기에 사회적 갈등이 유발된 것으로 볼 수 있다.
3. 천칭의 '수평': 보편타당성 (Universality)
상식이라는 추가 제대로 놓이고, 대립하는 가치들이 균형을 이루어 천칭이 눈금 한가운데에 딱 멈춰 서는 순간 비로소 '보편타당성'이 완성된다.
보편타당성이란 "누가 보아도, 언제 보아도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올바름"을 뜻한다.
오늘 한 판결이 내일 바뀌고, 힘 있는 자에게는 가볍게, 약한 자에게는 무겁게 기울어지는 저울이라면 아무도 그 저울을 믿지 않을 것입니다. 천칭의 수평은 '누구에게나 동일한 무게추가 적용된다'는 신뢰를 주고 있다. 시대가 바뀌고 산업 구조가 변하여 전기의 발명이나 거액의 성과급이 등장하더라도 법이 보편타당성을 잃지 않으려면 끊임없이 새로운 현실의 무게를 저울 위에 올리고 상식의 추를 미세하게 조정하여 다시 수평을 맞춰내야 할 것이다.
4. 결론: 법의 여신이 눈을 가리고 천칭을 드는 이유
법의 여신 '유스티티아(Justitia)'는 눈을 안대로 가린 채 한 손에는 검(劍)을, 한 손에는 천칭을 들고 있다. 검은 사법부의 권위와 위력을 천칭은 공정함을 상징한다.
눈을 가린 이유는 상대가 대기업 노조이든, 거대 자본이든, 국가 권력이든 상관없이 오직 '상식'이라는 무게추만 믿고 양측의 주장을 '균형' 있게 달아 '보편타당한' 수평을 맞추겠다는 굳은 의지의 표현이다.
결국 법이란 박제된 규정이 아니라, 시대의 변화에 발맞추어 끊임없이 흔들리면서도 끝내 가장 정의로운 수평을 찾아가는 '살아있는 천칭' 그 자체로 봐야 한다. 현실과 법의 간극을 메우는 과정 또한 이 천칭을 통해 새로운 시대의 균형점을 찾아가는 성스러운 상식의 여정이라고 할 수 있다.
요즘 사법부를 비롯한 검찰 변호사 등 법률 종사자들과 정치인들이 과연 천칭의 원리와 의미를 제대로 인식하고 법을 다루고 있는지 모를 지경이다. 세상이 하수상하여 상식에 어긋나는 판결이 나와도 그려러니 하는 분위기가 생기는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없다. 이런 분위기에 사람들이 익숙해지는 순간 세상은 아수라장이 되고 아비규환으로 변하고 말 것이다.
법 전문가들이 여의봉처럼 변하는 잣대를 가지고 제발 아전인수, 내로남불하는 장난을 치지 말기를 바란다. 상식에 어긋난 해석과 판결은 기록으로 남아 천세에 그대 이름을 더럽히는 멍애가 될 것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2. 두 번째 이야기
아낌없이 주는 나무(이하 '아주나'로 표기 )라는 열대지역 식물이 있는데 키우기가 매우 까다롭지만 열매가 탐스럽고 향과 맛이 좋아 성공만 하면 큰 돈이 된다고 알려졌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그 나무를 재배한 경험도 없는데다 기후 조건이나 토양도 맞지 않으므로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으나 사과, 배, 감농사를 짓던 할아버지가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용기를 내어 비닐 하우스에 씨를 뿌리고 싹을 튀우는데 성공하였다.
아들이 뒤를 이어 묘목을 좋은 터(노지)에 옮겨 심어 뿌리를 내리게 했고, 김 매고, 거름주고, 가지치기하면서 정성을 다해 키우자 나무도 점차 우리나라 풍토에 적응하면서 열매를 맺기 시작하였다. 연구소도 만들어 박사들을 채용하여 매년 품종개량을 하면서 더 많은 나무를 심었고 심지어 흉작으로 손해를 보는 해에도 투자를 멈추지 않았다.
이윽고 손주가 농장을 이어 받았는데 먹으면 살이 빠진다는 새로운 품종을 심었으나 제대로 크지 않아 인건비만 축내고 있었다.
그런데 작년부터 '아주나' 열매의 효능이 원산지 품종보다 몇배나 우수하다는 것이 밝혀지고 온갖 약제나 건강식품의 원료로 두루 쓰이기 시작하면서 수요가 폭증하기 시작하였다. 더우기 금년에는 열대지역에서 발생한 홍수와 가뭄이 겹쳐 생산량이 급감하면서 이 나무 열매의 가격이 금값 못지 않게 되어 농장이 돈방석에 앉게 되었다.
그러자 '아주나' 농장에서 일하는 일꾼들이 자기들이 피땀흘린 덕분에 큰 돈을 벌었다며 이익의 30%를 주지 않으면 일하지 않겠다고 농성을 시작했다 한다.
독자들은 무슨 얘기인지 진작 알아채고 지루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당신이 할아버지나 아버지 혹은 손주일 수도 있겠지만 그들을 믿고 투자한 동업자(주주)일 수도 있고, 그들 밑에서 품삮을 받고 나무를 길러온 퇴직 일꾼일 수도 있으며, 지금도 여러 농장에서 일하고 있는 현역 일꾼일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 현재 '아주나' 농장에서 일하는 일꾼이 아니면 솔직히 아무도 그들이 요구하는 내용을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 이유가 단지 배가 아파서만은 아니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고, 형평성(균형)도 어긋나며, 타당성도 없는 한마디로 정의롭지 않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나는 할아버지와 아버지 시대에 그들 밑에서 땀흘려 일했던 것을 영광으로 여기는 일꾼 출신으로서 내 자식이 지금 '아주나' 농장에서 일하고 있더라도 지나친 요구를 말린다는 생각으로 이 글을 썼다.
두서없이 지루한 글을 끝까지 읽어 주신 독자제위께 감사드린다.
2026. 5. 28.
승 여 생 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