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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기도출신 명재남선생

작성자사마|작성시간06.01.18|조회수939 목록 댓글 4

 

 

명재남선생은 지한재선생의 합기도에  입문한 초기제자였다.

 


지한재선생의 제자중 서열 5,6번에 해당되는 형편이라
의욕만큼 적극 나서기가  마땅치 않았다.

 


그러던중 1967년 인천 부평 미군부대의 애스컴 사령부에 방한했던 
일본 아이기도 시범단 시라다와 접촉하게 됐다.
한국내 아이기도 전파의 끈을 어캐든 잡아보려는 쪽발이들과
합기도계에서 세력을 키우려는 명선생의 선이 닿았던것.

 


1973년 아이기도 도요다 원정단과 회합하면서 아이끼도와의 교류라는
명분을 세웠고 명선생은 우에시바 기쇼마루에게 받은 사범증을 걸기도했다.

그러나 명선생은, 90년대 이후의 일본 아이기도 밑으로 절복해
들어간 국내 전향자들과 달리, 교류였음을 주장했다.

 

 

명선생의 국제연맹은 한때나마 한국합기도와 통합조직을 꾸리기도 했으며
기회가되면 자신의 독자적인 무도를 펼 심산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명재남선생과의 생전 인터뷰에서 녹취한 회고의 한대목이다.


"한번은 오스트리아에 정부초청으로 시범갔다 올때였어.. 프랑스 비행기를
탔는데 에어걸(스튜디어스)이 우리 일행에 대해 뭐하는 사람이냐고 묻데
그래서 대답해줬드니, 우릴보고 "재팬이즈 아이끼도?" 하고 묻는거야,

그때 느꼇어, 어느시대가 가면 내것을 해야 하는 구나 하고 생각햇지.
일본 합기도도 그것대로 좋은 무술이지만, 남의 것만 해서야 되겠는가?
나는 나대로 독창성있는 무술을 해야 한다고 생각햇지

지난번에도  기쇼마루 도주가.. 일본에서 천황페하의 훈장받을때
와달라고 했어, 일본에 갔었지만 그자리에는 참석하지 않았어"

 


국제연맹 계열의 선무관장은, 전향해 아예 아이끼도에 묻혀버린
측들을  얼빠진 사람들이라고도 했다. 서로 모자란것을 배우는 차원에서
교류를 할수는 있지만 우리것 다 팽개치고 매달릴 필요가없다는 것.

 


명재남선생께서 덧붙인 부언은 그가 합기도 출신임을 보여준다.

 

"합기술을 한 최용술선생이나 합기도 지한재선생 모두 당대의 출중한 분이고,
훌륭한 분이야. 그분들이 합기술이나 합기도 보급을 많이 시켜서 한국합기도가
이만큼 큰것이야. 지한재선생은 80년대초 출국전에 여기서 10단증 받아갔고,
그때 독일갓다 미국으로 건너 갔지"

 

 

명재남선생이 합기도계파간의 거칠었던 과거사를 덕담으로 회고할만큼의 심경이

인상적이었다고 생각했을 무렵,


얼마지나지 안아 별세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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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선혀니 | 작성시간 06.01.18 그리하여.. 한국 아이기도 [한기도]가 나타난 것이 아니겠나요??
  • 작성자카페주인 | 작성시간 06.01.18 아이키도를 배워서 아이키도를 한다는 사람들이 얼빠진 것인지 아니면 배우고 나서도 배운 적도 없는 듯이 "우리의 것"이라고 하는 것이 황당한 것인지...최용술선생님께 배우고도 배운 적 없다고 하고 제자가 아니라고 하는 사람이나 아이키카이에서 배우고 하카마 입으면서도 아이키도 배운 것 감추는 것이나 ...
  • 작성자운암 | 작성시간 06.01.19 교류와 절복...의 기준을 어디에 두고 "얼빠진 사람들"이라고 하셨는지 모르겠네요...과연 "내것"이었을까요...
  • 작성자카페주인 | 작성시간 06.01.20 아이키카이쪽에서 한국내 아이키도전파의 끈을 잡으려고 했던 것은 조직을 확장하려는 단체의 속성상 당연했을 겁니다. 실제 그런쪽으로 이해되는 부분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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