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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해외)

노르웨이 오슬로

작성자靑岩|작성시간26.06.17|조회수19 목록 댓글 0

오슬로(Oslo)

노르웨이의 남부 해안에 있는 도시이자 노르웨이의 수도이다. 1048년에 바이킹 왕 하랄드 3세에 의해 건설되었다. 13세기 호콘 5세에 의하여 수도로 정해져 한자 동맹의 항구로서 번영했다. 1624년에 일어난 대화재 후에 재건되었으며 그 당시의 덴마크 왕 크리스티안 4세에 의하여 크리스티아니아(Christiania 또는 Kristiania)라고 명명되었으나, 20세기에 이르러 오슬로란 본래의 명칭으로 환원되었다. 도시의 크기는 남북 약 40km, 동서 약 20km로, 전체 면적이 매우 넓다. 도시 안에는 녹지와 숲, 공원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며, 또 피오르가 들어와 있어 경치가 아름답다. 성 홀바르드를 수호성인으로 하고 있으며, 휘장에서 화살 세 개를 쥐고 있는 남자가 바로 홀바르드이다.

노스 사가에 따르면 오슬로는 하랄 하르드라다에 의해 1048년경에 설립되었다.

호콘 5세 시대(1299~1319년)부터 수도로 이어져 왔으며, 그는 이 도시에 영구 거주한 최초의 왕이 되었다. 그는 또한 아케르스후스 요새(노르웨이어판)와 오슬로 콩스가르드(Kongsgård)의 건설을 시작했다. 그로부터 1세기 후 노르웨이는 덴마크와의 동군연합에서 보조적 역할을 맡았고, 오슬로는 코펜하겐에 군주가 상주하면서 지방 행정중심지로 전락했다. 오슬로 대학교가 1811년에 설립되었다는 사실은 국가의 발전에 악영향을 끼쳤다.

오슬로는 화재로 여러 차례 파괴되었고, 1624년 크리스티안 4세는 아케르스후스 요새 부근의 만 건너 새로운 부지에 재건을 명령하고 크리스타니아(Christiania)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보다 훨씬 전에, 크리스타니아는 노르웨이의 상업과 문화의 중심지로서의 위상을 확립하기 시작했다. 1624년부터 건설된 이 도시의 부분은 정규적이고 네모난 블록의 직교적 배치 때문에 현재는 종종 크바드라틴(Kvadraturen)이라고 불린다. 오슬로에서 일어난 마지막 흑사병은 1654년에 일어났다. 1814년 덴마크와의 연합이 해체되면서 크리스타니아는 다시 한 번 진정한 수도가 되었다.

19세기에는 왕궁(1825–1848), 국회의사당(Stortingsbygningen, 1861–1866), 오슬로 대학교, 국립극장, 증권거래소 등 많은 랜드마크가 세워졌다. 이 시기에 이곳에 살았던 세계적으로 유명한 예술가 중에는 헨리크 입센과 크누트 함순(후자는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이 있었다. 1850년 크리스타니아도 베르겐을 추월해 전국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도시가 되었다. 1877년에 그 도시는 크리스티아니아(Kristiania)로 개명되었다. 오슬로의 원래 이름은 1925년에 복원되었다.

 

▶여행일자 : 2026년 6월 06일

▶여행지 : 비겔란 조각공원, 노르웨이 시청사, 카를 요한거리

▶6월 6일 12시 10분에 노르웨이 오슬로 공항에 도착,  입국 심사를 마친후 13시 10분에 공항을 출발해 비겔란 공항으로 이동하면서 차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담아보았다.

 

■ 비겔란 조각공원(Vigeland Sculpture Park)

노르웨이 출신의 세계적인 조각가 구스타브 비겔란(Gustav Vigeland)과 그의 제자들이 제작한 조각 작품 200여 개가 전시된 공원이다. 프로그네르 공원(Frogner Park)라고도 불린다. 오슬로 도심의 북서쪽, 드넓은 녹지에 조성되어 시민들의 산책 장소로 사랑받는다. 아름다운 자연과 예술 작품이 훌륭한 조화를 이뤄 오슬로가 자랑하는 대표적인 문화 공간으로 꼽힌다.

20세기 초, 비겔란은 자신의 일생 동안 영혼을 바쳐 조각한 작품들을 오슬로 시에 기증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에 오슬로 시는 공원 설계와 작품을 의뢰했고 비겔란은 13년에 걸쳐 청동, 화강암, 주철을 사용한 다양한 작품을 준비했다. 작품을 관통하는 테마는 인간의 삶과 죽음을 아우르는 희로애락이었다. 안타깝게도 비겔란은 자신이 온 힘을 기울인 공원이 완성되기 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 후 비겔란의 제자와 오슬로 시민들이 합심해 지금의 공원을 완성했다.

공원에 전시된 비겔란의 수많은 작품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높이가 약 17m에 달하는 화강암 조각상 ‘모놀리트(Monolith)’다. 공원 한가운데 서 있다. 멀리서 보면 그저 커다란 기둥처럼 보이지만, 121명의 남녀가 엉켜 괴로움으로 몸부림치는 모습이 생동감 있게 묘사된 작품이다. 정상으로 올라가려는 듯 안간힘을 쓰는 군상은 인간의 본성을 나타내며 실제 인체 크기로 조각되어 더욱 역동적인 느낌을 보여 준다.

그 밖에도 야외 정원을 천천히 산책하며 곳곳에 설치된 다양한 조각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호수와 다리, 분수대, 장미 정원 사이사이로 자리한 작품들은 비겔란이 여생을 바쳐 인간의 일생을 담아 낸 것이기에 깊은 감동을 준다. 그가 제자들과 공동 제작한 조각 작품, 공원의 랜드마크이자 기념사진 촬영 포인트로 인기 있는 '심술쟁이 소년 상'도 볼만하다. 비겔란의 삶과 작품 세계를 보다 심도 깊게 이해하고 싶다면 비겔란 박물관을 함께 둘러보아도 좋다. 공원 남쪽에 자리한 붉은 벽돌 건물로 비겔란이 생전에 사용한 작업실이다.

 

 

■ 오슬로 시청사(Oslo City Hall , Rådhuset)

   - 노벨 평화상 시상식의 장소이자, 시민들에게 활짝 열린 행정의 중심

'두 개의 갈색 치즈'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오슬로의 아이콘. 마그누스 폴손과 아른슈타인 아르네베르가 공동 설계하였고, 창도 900주년을 기념해 1950년에 문을 열었다. 1층의 메인 홀에서는 매년 400건 이상의 크고 작은 행사가 열리는데, 특히 1990년 이후부터 노벨 평화상의 시상식장으로 이용되어 매년 12월 10일에는 전 세계의 시선이 집중되는 곳이다.

1층을 비롯한 각 공간은 페르 크로그(Per Krohg), 알프 롤프센(Alf Rolfsen) 등의 노르웨이 대표 화가들이 작업한 초대형 프레스코화로 가득 차 있다. '뭉크의 방'에는 1938년에 사들인 뭉크의 <인생>이 자리 잡고 있으며 일반인에게는 매달 1회 시민들의 결혼식 장소로만 개방된다. 

특히 이곳은 오페라 하우스와 함께 시민들에게 개방된 대표적인 '열린 공간'이다. 전 세계 시청사 건물 중 관광객들에게 중요 시설을 무료로 자유롭게 개방하는 곳은 오슬로뿐이라는 사실! 외관부터 내부까지 모두가 20세기를 대표하는, 독립한 조국에 바치는 노르웨이 예술가들의 역작이라는 걸 생각한다면 시청사는 시민들을 위한 하나의 거대한 '예술 작품'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 카를 요한거리(Karl Johans gate)

노르웨이의 수도 오슬로를 대표하는 가장 번화한 중심가이자 유서 깊은 메인 스트리트이며, 오슬로 중앙역에서 부터 노르웨이 국왕이 거주하는 왕궁까지 직선으로 길게 이어지는 약 1.4km 길이의 대로이다. 

거리의 상당 부분이 보행자 전용 도로로 지정되어 있어, 여행객과 현지인들이 여유롭게 산책을 즐기기 좋은 곳이다. 거리를 따라 걷다 보면 왕궁 뿐만 아니라 노르웨이 의회 의사당, 오슬로 국립극장, 오슬로 대성당등 도시의 상징적인 건물들을 모두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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