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모습은 평범하다. 이제는 너무도 이해하기 쉽고 당연한 명제 앞에서 우리는 때마다 새로움을 느낀다. 누군가가 세상을 충격에 빠뜨릴 정도의 악을 행하면,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악의 평범함을 부정하려 들곤 한다. 그래서, 악인의 신상과 주변을 잔인할 정도로 파헤쳐댄다. 종종 그가 악인이 될 수 밖에 없는 이유들을 찾아내기도 하고, 하나의 이유를 부풀려 이야기꺼리로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결국 그는 그러한 일이 있기 전 까지, 아무도 몰랐던 그저 평범한 한 사람이었음을 깨닫는다.
1999년 컬럼바인 총격사건의 주인공 중 한 사람인 딜런의 엄마가 어렵고 힘들게 아들을 사랑함을 고백하고, 잔인한 악마가 되어버린 아들을 이해하려 노력한다. 20여년이 흐른 시점에서 엄마의 고백을 차분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본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사건당시 가해자들과 가해자들의 가족과 주변을 무섭게 흔들어대며 악의 발원을 찾아내고자 했던 호들갑과 달리 그들은 그저 평범하고 차분한 일상을 영유했던 가족들이자 일원들이었다. 미국의 환경에서 어디서나 흔하게 볼 수 있었던 단란한 가정의 모습은 조금 어색한 연관이긴 해도 악은 그저 평범하다는 명제를 좀 더 진실에 가깝게 만든다.
딜런의 엄마는 자신의 가정의 모습과 육아의 방식을 철저하게 회고한다. 그 안에서 우리가 발견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저 미국이라는 환경 아래에서 평범하면서도 존중과 사랑이 충분한 한 가정의 모습을 볼 수 있을 뿐이다. 그 안에서 아이들 역시 미국이라는 환경 아래에서 평범하고 차분하게 성장했다. 그러고는 돌연 참극이 발생했다. 평범하고 차분하게 성장하던 아이의 의지에 의해서 말이다. 갑작스런 돌발은 단 한가지만을 깨닫게 한다. 자식은 온전한 하나의 인격체로, 부모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는 점..
악의 근원을 고민하는 정유정의 소설 ‘종의 기원’이 떠올랐다. 내면 어딘가에 품고 태어나거나, 성장하면서 스스로 싹을 틔우는 악의 본성.. 딜런이나 에릭에게 그러한 것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해 보았다. 만일 그런 것이 내면에 존재했다면, 그들은 어떤 상황에서 그것을 증폭시키고 행동에 옮길 생각을 했을까 궁금해지는 것이다. 내면의 본성이 개개인의 어쩔 수 없는 것이라면, 그것이 증폭되고 행동으로 드러나는 건 관계와 사회의 문제일 수 있다. 사람과의 관계, 속한 사회의 풍경.. 딜런의 엄마는 아들의 심리를 분석해보고 관계 안에서 어떠한 문제점이 있었는지를 찾아보려 노력한다.
딜런과 에릭은 서로 심리적 역학이 작용되었고, 그것이 악행의 발현의 한 원인이었다. 딜런의 엄마는 아들을 중심에 두고, 주변과의 역학에 대해 집요할 정도로 분석한다. 그리고, 상처받은 자신의 회복과정을 자신의 주변과의 역학으로 설명해간다. 그러나, 거기까지이다. 딜런을 악인이게 한 좀 더 확장적인 원인을 살피지 않는다. 총기규제가 느슨하고 획득이 쉬운 미국사회의 현실에 대해서는 언급정도만 한다. 학교의 보수적 환경이 아이들의 성장과 서로의 역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고민도 없다. 뒤이어 이어졌던 모방성 짙은 총기사고에 대한 심리적 분석은 있어도 사회적 관점은 존재하지 않는다. 수많은 전문가들과 조언자들을 동원해 개인수준의 문제에서 분석하고 위로받으며 스스로를 설명하는 느낌도 있다. 당연하지만, 미국적 환경과 가정에 대한 서술이 우리와는 조금 다른 부분도 많아서 그것이 미세한 가정의 문제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조금 들었다. 어쨌든, 엄청난 충격을 안아버린 엄마의 아들에 대한 사랑과 이해에의 노력에 머리를 숙인다. 그리고, 조금 더 내려놓아도 괜찮을 거라 조심스레 건네어본다. 악은 평범하다. 문제는 우리가 그리고 사회가, 악의 발현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