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부터 우리는 그림일기를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어떤 생각이나, 막막한 슬픔, 죽음, 갑갑한 심정을 나름의 이미지를 가지고 그려보았습니다.
뭔가 착잡한 마음을 그린 그림을 그려놓고 들여다보면 그림속에 뭔가 중요한 것이 빠진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몸과 마음이 둔한 날에는 새처럼 날고 있는 나를 한번 그려보았습니다.
묘하게도 그림을 그린 후에 정말 몸과 마음이 가벼워졌습니다. 하루종일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상상을 하며 기분이 좋아졌고, 이따금 앓던 편두통이 사라진 경험도 했습니다.
놀랍고 신기한 일입니다.
마음을 표현하는 일과 사람(주로 나)의 자세를 묘사하는 게 많이 어려워 답답할 때가 많았습니다.
내가 봐도 좀 유치해서 그림(기술)을 잘 그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다행히 초등학생보다 못한 그림이지만 별로 부끄럽진 않습니다.
'누구한테 자랑할 것도 아닌데 뭐...'하면서 애써 나를 달래줍니다.
웅크리고 있는 모습, 팔을 오무리고 있는 모습 등이 어떤지 거울을 들여다보며 유심히 관찰해보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마음이 어지럽고 불안하면 명상을 하는 일상의 변화도 있었습니다.
이번 시간에 우리는 그동안 그림일기를 그리면서 느끼고 변화된 자신의 이야기를 나눈후에 잠시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갈등의 원인과 해결 방법에 대해서 고민해봅니다.
인간은 누구나 관계(가족관계)속에서 심리적으로 물리적으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입니다. 여기서 정은혜 선생님은 재차 '심리적 경계'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그 경계가 무너졌을 때 관계는 매우 심각해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경계를 만드는 요소로 Yes/No 할 때를 구분하는 문이나 테두리가 있어야 하며, 그것은 제주도 돌담처럼 높지도 낮지도 않으며 바람은 통해서 자유롭게 소통이 가능한 구조가 바람직하다고 말합니다. 특히 원가족의 관계속에서 이 심리적 경계는 아주 중요하다고 합니다.
나의 가족관계는 어떤 형태의 심리적 경계와 이중구속을 갖고 있었는 지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그것은 지금의 내가 누군지룰 이해하는 열쇠가 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감정을 그려보기로 합니다. 사전에 우리는 우리가 사용하는 감정 언어를 써봅니다. 내가 적어놓은 '우울하다, 억울하다, 서럽다, 짜증나다'등의 몇 개의 단어는 일차적 감정이라기 보다는 이차적 감정에 해당한다는 사실에 좀 당혹스럽습니다.
우리의 일차적 감정은 기본 감정으로서 행복, 슬픔, 두려움, 놀람, 화, 혐오 여섯 가지입니다. 이 감정들은 모든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표정이라는 겁니다. 즉, 몸의 생리적인 변화를 즉각적으로 마음이 알아채는 감정들이므로 인간이면 누구나 느끼는 본능적이고 자연스러운 감정이라는 것입니다.
이차적 감정은 해석의 여지 및 문화적 개인적 차이에 따라 다르게 경험될 수도 있다는 겁니다.
그것은 일차적 감정들이 섞이거나 개인의 판단, 주장 등이 감정의 반응을 일으켜 새롭게 파생된 감정언어라는 것입니다.
나는 심하게 혼란스럽습니다.
몸의 언어에 가까운 일차적 감정을 온전히 마음(느낌, 기분)의 언어로만 받아들이며 살았습니다. 몸과 마음을 물과 기름의 관계처럼 분리해서 생각하며 살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다보니 일차적 감정에 몸이 반응하는 것이 어려울 수밖에 없었음을 깨닫습니다. 그 감정은 되도록 숨기고 억누르고 드러내지 않는 것이 보다 이성적인 인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애초에 일차적 감정을 가지고 태어났는데, 그래서 내가 살아있는 한 그 감정도 꿈틀꿈틀 살아있는데 그 감정을 통제하고 억압하려고 했으니 감정의 오작동이 생기는 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슬픔이나 화가 날 때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않고 피하거나 다른 감정으로 변화시키려고 조작하고 내멋대로 해석하려고 애쓰다보니 마음속에 쌒인 감정의 찌꺼기는 딱딱한 응어리가 된 듯합니다.
슬픔은 공부하지 않아도 되는 거였습니다. 내안에서 그 슬픔을 자연스럽게 바라보고 흘러가게 놔두면 되는 것을....
그동안 일차적 감정을 애써 거부하면서 몸도 마음도 아팠던 거였구나....
이제 우리는 감정을 그려봅니다. 종이를 여섯 면이 생기게 접어서 각각의 감정을 표현하는 색을 골라 선, 면, 점을 이용해 추상적인 이미지를 직관대로 그립니다. 나는 감정을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처럼 감정 그림을 그리는 일이 한없이 어렵게 느껴집니다. 자꾸만 기계적으로, 감정에 반응하는 사람의 표정에만 머물게 됩니다.
각각의 감정에 대하여 우리의 몸에 즉각적으로 나타나는 표정과 눈빛과 행동 등을 표현해 봅니다. 혐오를 표현하면서 정은혜 선생님은 단지 연기일 뿐인데도 너무나 힘들어합니다. 우리 사회에 악을 키우는 혐오감정은 살인도 하게 합니다.
이제는 우리가 그린 그림을 함께 펼쳐놓고 봅니다. 엇비슷하면서도 제각각 다른 그림들을 보면서 우리가 타인의 감정에 얼마나 공감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내 감정과 화해(해소)하지 않고 누군가의 감정에 공감하고 연민하는 일은 불가능하다는 생각들....
슬픔과 화를 그린 내 그림은 그 자체에 대한 이미지가 아니라, 그것에 반응하는 나의 상태를 그렸습니다. 내안에 슬픔과 화를 바라보지 못해서 오랫동안 미해결과제로 남아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이번에는 내가 자주 경험하거나 이해하고 싶은 이차적 감정을 그려봅니다.
이제 이 그림속에서 내가 표현하고 있는 감정이 무엇인지를 말합니다.
그 다음에는 이차적 감정을 그린 그림에서 일차적 감정을 찾아보기로 합니다.
나는 슬픔, 두려움, 화가 많이 드러나 있습니다.
일차적인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해 해소되지 않은 감정의 찌꺼기가 굳어있는 듯합니다.
이차적인 감정은 처리가 안됩니다.
그럼에도 반복적인 그림일기를 통해서 나의 솔직한 감정의 흐름을 파악하고 나에게 내 감정을 허락받으면 그 감정 또한 저절로 사라집니다. 몸의 감각들을 되살려 내 몸의 상태가 어떤지 인지함으로서 감정의 찌꺼기를 해소할 수도 있습니다.
그림은 마음의 파도를 표현하는 거라면, 몸의 훈련은 감정의 흐름을 직시하게 합니다.
우리는 살아있기 위해서 끊임없이 마음은 몸에 말을 걸고, 몸은 마음에게 대꾸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주에 매일 춤을 한번 미친듯이 추어보자고 나에게 약속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