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화가중 가장 많은 국보와 보물을 남긴 사람은 누구일까?
조선의 다빈치로 불리는 화선畵仙의겸스님이야기
의겸스님은 조선 후기 불교 미술의 황금기를 이끈 거장이다.
국가지정 문화유산,국보와 보물을 가장 많이 남긴 화가는 겸재정선이다.국보 두점과 보물 일곱점이다.
단원 김홍도는 국보 한점 보물 일곱점이다.
불모 의겸(義謙) 스님이 남긴 불화작품은 국보 세점 보물 7점이다.
조선의 화가중 가장 많은 문화유산을 남긴분이 바로 불화예술의 천재로 기억되는 의겸스님이다
의겸스님은 뛰어난 불교 이론과 지식을 바탕으로 전라도와 경상도 지역을 무대로 수많은 제자들을 이끌며 명품불화를 남겼다.
의겸 스님이 남긴 대표적인 괘불과 불화를 정리해 본다.
괘불은 야외 법회 때 걸어두는 초대형 불화이다.의겸 스님은 당대 최고의 기술과 스케일을 요하는 괘불 조성의 대가였다. 그의 괘불은 당당한 신체 표현과 화려하고 온화한 채색이 특징이다.
진주 청곡사 영산회 괘불탱은 국보로 지정받았다
1722년 작품으로 의겸 스님의 괘불 중 최고 걸작이자 그의 독창적인 화풍이 완성되었음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높이가 10m가 넘는 거대한 화폭에 석가모니불과 문수·보현보살을 꽉 차게 배치했으며, 붉은색과 녹색의 대비, 정교한 꽃무늬 장식이 압도적인 장엄함을 자아낸다.
고성 운흥사 괘불탱 (보물)
1730년 작. 학계에서 의겸이 남긴 괘불 중 가장 짜임새 있는 구성과 높은 격조를 가진 최고의 명작으로 꼽는 작품이다. 색조가 매우 온화하고, 최근 정밀 조사에서 불상 곳곳에 숨겨진 150여 자의 범자가 발견되어 종교적 가치도 새롭게 조명받았다.
무주 안국사 영산회 괘불탱 (보물)
1730년 전후 작. 적상산 사고를 지키던 수호 사찰인 안국사에 봉안된 괘불이다. 간결하면서도 화려한 천의장식이 돋보이며 능숙한 필선이 강렬한 인상을 준다.
의겸 스님은 괘불뿐만 아니라 법당 내부를 장식하는 후불탱화, 나한도 등에서도 조선 불화의 새로운 전형을 만들었다.
합천 해인사 영산회상도 (국보)
1729년 작. 영축산에서 설법하는 석가모니불의 모습을 그린 후불탱화로, 금니와 진하고 강한 진채 화법을 사용하여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조선 후기 영산회상도 중 최고봉으로 인정받아 국보로 지정되었다.
여수 흥국사 수월관음도 (보물)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관음보살도 (보물)
의겸 스님은 고려 시대의 수월관음도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조선만의 독창적인 관음보살 도상을 확립했다. 특히 흥국사 관음보살도는 특유의 서정적이고 자비로운 미소, 아래쪽에 작게 그려진 선재동자의 정교한 묘사가 일품이다.
순천 송광사 응진당 16나한도 (보물)
1725년 작. 송광사에 대대적으로 조성한 불화들다. 특히 16나한도는 각 나한들의 개성과 내면의 심리를 섬세한 표정과 몸짓으로 다르게 표현하였다.종교화임에도 인간적인 생동감과 높은 예술성을 구현해 냈다.
의겸 스님은 단순한 기술자를 넘어 불교 경전에 통달했던 지식인이었다.
그의 붓끝에서 태어난 부처님과 보살들은 건장하고 당당한 체구를 가졌으며 둥글고 원만한 상호를 지녀 보는 이에게 미학과 안정감을 준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조선의 불모 의겸 스님을 나란히 놓고 보면, 시공간은 다르지만
닮은 점이 많다.
다빈치가 인체 해부학과 수학적 원근법을 동원해 미술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면, 의겸 스님은 방대한 불교 경전과 교리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이를 시각적 구도로 창조해 낸 천재적인 도상학자였다.
복잡한 종교적 세계관을 물 흐르듯 완벽한 화면으로 구성해 낸 능력은 다빈치가 지녔던 천재성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다빈치가 르네상스 시절 자신의 공방에서 수많은 제자들을 길러내며 피렌체와 밀라노의 예술을 지배했듯이, 의겸 스님 역시 영·호남을 아우르는 대규모 화승 집단의 수장이었다. 10미터가 넘는 초대형 괘불과 법당 전체를 채우는 불화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수십 명의 제자들에게 역할을 분담하여 일사불란하게 지휘한 모습은 르네상스 거장의 '공방 총감독' 모습 그대로이다.
다빈치가 회화, 조각, 건축, 과학을 넘나들었듯, 의겸 스님도 대형 불화뿐만 아니라 사찰 건물의 벽화, 조각의 밑그림, 심지어 범종에 새겨질 정교한 문양의 대본까지 직접 그려냈다. 불교 미술 안에서 그가 손대지 않은 영역이 없을 정도로 다재다능했던 종합 예술가였다.
유교 국가였던 조선에서 승려라는 신분적 한계 때문에 역사 플래시를 덜 받았을 뿐, 그가 남긴 예술적 스케일과 제자들에게 미친 영향력을 보면 '18세기 조선 예술계를 뒤흔든 거장 조선의 다빈치'라고 불러도 전혀 손색이 없다.
서양의 르네상스에 다빈치가 있었다면, 조선 영조 연간에는 위대한 예술가 불모 의겸이 있었다.
사진 1번 진주 청곡사 괘불이다.
높이 10미터가 넘는 대형 회화작품이다.
사진 2번 해인사 큰법당에 걸린 영산회상도이다
사진 3번 송광사 영산전에 걸린 영산회상도이다.
팔상탱화와 함께 국보로 지정받았다.
사진 4번 고려불화 못지않은 수월관음도이다
여수 흥국사에 있다.
석현장 스님 글.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