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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논산의 연리지(連理枝), 슬픈 씨받이 기도 2/6

작성자달스탄|작성시간26.06.15|조회수19 목록 댓글 0

2. 전쟁이 빚어낸 눈물겨운 풍경, ‘논산의 연리지(連理枝)’

 

6·25 전쟁은 참혹하게 짓밟힌 강토만큼이나 우리네 평범한 가족들의 일상을 무참히 짓이기고 지나갔다.

풍전등화의 조국에서 아들들을 전선으로 밀어 넣어야 했던 그 시절, 논산 제2훈련소 앞은 그야말로 ‘생과 사’가 교차하는 거대한 눈물의 광장이었다.

총을 잘 쏘기는커녕 잡는 법조차 제대로 배우지 못한 채 단 일주일, 짧디 짧은 기초 교육만 받고 전선으로 향해야 했던 청춘들이었다.

부모들의 가슴은 그야말로 새카맣게 타들어 갔다.

당시 시골 노부모들에게 ‘대를 잇는 것’은 단순한 가문 유지를 넘어선, 인생을 지탱하는 유일한 신념이자 생존의 이유였다.

전장에 나가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공포, 그 끝에 아들의 대가 끊길지도 모른다는 절망감은 부모들을 극단적인 선택으로 몰아넣었다.

 

입대 통지서를 받기 무섭게 며느리를 들여 아들을 장가보내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신혼의 단꿈은커녕, 손도 한번 제대로 잡아보지 못한 채 생이별을 앞둔 앳된 신랑과 신부.

그 비극을 지켜보는 부모의 심정은 오죽했을까.

마침내 면회 날, 부모들은 보따리 가득 정성을 담아 머리에 이고 지게로 지고서 천리나 떨어진 곳과 같은 멀고 먼 논산으로 향했다.

짐 보따리 속엔 닭 한 마리를 비롯하여, 혹은 몸보신을 위한 귀한 식재료가 들려 있었다.

훈련소 근처 허름한 숙소나 가림막이 쳐진 곳에서 어머니는 지게로 지거나 머리에 이고 온 퐁로에 불을 붙여 투박하지만 간절한 마음을 담은 보양식을 끓여댔다.

냄새가 진동하는 닭백숙이나 보양탕 한 그릇을 아들 앞에 놓아두고, 부모들은 마치 작전이라도 짜듯 서둘러 자리를 떴다.

홑이불 하나를 밧줄에 걸어 만든 간이 가림막, 그 뒤로 아들과 며느리를 밀어 넣으며 부모들은 문밖에서 서성이거나 밤을 지새웠다.

“부디, 제발… 씨만이라도 남기고 가거라.”

여기저기서 비빗거리는 인생 연리지의 애끓는 기도이었건만, 아랑곳없는 무심한 시간은 야속하게 갉아 먹히면서 흘러가고 있었다.

(* 연리지 連理枝, 한 나무와 다른 나무의 가지가 서로 붙어서 나뭇결이 하나로 이어진 것).

 

자료: Gemini 협조

그것은 ‘씨받이’라는 서글픈 이름의 절규였다. 전쟁이라는 거대한 광기 앞에서, 대를 잇기 위해 자식의 합방을 부모가 직접 주선하고 문을 지키던 풍경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기이하고 처연한 해프닝처럼 보일지 모르나, 그건 그 시대가 강요한 가장 절박하고 처절한 ‘생명 연장의 기록’이었다.

논산의 면회 장소마다 펄럭이던 그 낡은 홑이불 가림막은, 전쟁터로 떠나는 아들에게 바치는 부모들의 마지막 기도이자, 핏줄을 이어가고자 했던 우리 민족의 질긴 생명력이었다.

 

전쟁은 사람을 죽였지만, 그 슬픈 합방은 삶을 잇고자 했던 인간의 본능적인 몸부림이었다.

그렇게 그 시절, 전선으로 향하는 기차에는 누군가의 아버지가 될 준비를 마친, 혹은 이미 씨를 남긴 앳된 청년들이 눈물을 닦으며 올라타고 있었다.

간밤의 단꿈을 회상하면서 가림막 홑이불의 맹서와 다짐도 사치련가 인솔병의 호루라기가 귓전은 때리면서 기차는 떠나갈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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