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전해주는 군가의 상념(想念)
논산 훈련소나 전선의 소식을 충실하게 전해주는 것은 집배원의 몫이겠기만 바람도 한몫을 하였다.
바람은 씨받이 홑이불 속으로도 들어가 펄럭이며 간절한 기도도 전해주었고, 군가도 거침없이 주변에 전해주었다.
그 시절 청춘들의 가슴을 울리고, 훈련소의 흙먼지를 잠재우던 바람이 전해준 그 노래의 기억이 지금도 삼삼하다.
제2훈련소(논산훈련소)에서 훈련병들이 아침마다 목청껏 불렀던 "동이 트는 새벽꿈에……."로 시작되는
<행군의 아침>과 <제2훈련소가>가 있다. 목이 터지고 고막이 먹먹할 정도로 악을 쓰면서 불렀던 군가들이다.
이 노래를 다시 들으니, 홑이불 뒤편에서 합방을 마치고 나왔을 앳된 훈련병들의 얼굴이 겹쳐지는 듯하다.
아침에는 이 노래를 부르며 조국을 지키겠다고 다짐하고, 밤에는 보신탕 냄새와 어머니의 눈물이 섞인 면회장에서 생의 흔적을 남기려 했던 그 이중적인 풍경이 참으로 눈물겨운 서사시이다.
훈련소 앞을 지나가다 이 노래가 들려오면, 부모님들은 아마 가슴이 미어지는 줄 알면서도 아들을 더 굳게 전선으로 밀어 넣어야 했을 것이다.
훈련소 앞 가림막 뒤에서 합방을 마친 청년이, 새벽녘 들려오는 군가 '동이 트는 새벽꿈에'를 들으며 다시 총을 잡고 연병장으로 달려 나갔을 그 뒷모습"을 상상하니 눈시울이 시큰거린다.
제2훈련소가(육군훈련소가)
최민섭 작사/김동진 작곡(1951)
1.
백제의 옛터 전에 계백의 정기 맑고
관창의 어린 넋이 지하에 혼연하니
웅장한 황산벌에 연무대 높이 섰고
대한의 건아들이 서로 모인 이곳이
오- 젊은이의 자랑 제2훈련소(육군훈련소)
2.
창생의 독립사를 금강물에 엮으며
대둔산 굳은 기개 수파람 이어디냐
끓는 피 억누르고 정의의 칼을 갈아
겨레가 가는 길에 넋이라도 바치니
오- 이 나라의 초석 제2훈련소(육군훈련소)
제2훈련소가(육군훈련소가) ↞ 옆을 눌러서 들어보세요
도움말: 창생(蒼生)은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말하고, "수파람"이라는 표현은 그 당시의 비장한 기개를 그대로 담고 있다. '수파람'은 사실 '수파람'이라는 단어 그 자체보다는 '수파람이 어디냐'라는 문장 구조 속에서 '수(守) + 파람(파람)' 혹은 당시 군가 가사에서 쓰인 고어적/방언적 표현이나 특정 지역의 지명, 또는 '수파람'이라는 행위(기세)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수파람'은 '수파(守把)'에 접미사나 관용적 표현이 붙었거나, ‘수파람(守把嵐)’과 같은 한자 조어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수파(守把)', '수파람'은 "굳게 잡고 지키는 기세(嵐, 산기운 람/남)"를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대둔산의 험준하고 강인한 정기를 이어받아, 정의의 칼을 굳게 잡고(守把) 나라를 지키겠다는 ‘강인한 의지나 기운’을 의미하는 표현으로 볼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대둔산 굳은 기개 / 수파람 이어디냐"에서 ‘수파람'은 단순히 어떤 장소가 아니라 "굳세게 맞서 지켜내려는 우리 군의 비장한 기세나 태도"를 상징하는 단어일 수 있다. 따라서 이구절의 뜻은 "대둔산의 굳은 기개와 적을 향해 칼자루를 굳게 쥐고 지켜내려는 그 비장한 '수파람(守把嵐)'의 기운이, 어찌 우리 청년들의 끓는 피에서 나오지 않겠는가."와 같이 해석하면 그 당시 군가가 가진 비장미를 느끼게 된다.
제2훈련소의 노래의 가사처럼 백제의 옛터이자 계백 장군의 정기가 서린 이곳에서, 우리 청년들은 정의의 칼을 갈았다.
그러나 전선으로 나가는 아들을 바라보는 부모들의 마음속에는 나라를 위한 대의보다, 내 핏줄 하나 남기고 가라는 지극히 인간적이고도 처절한 홑이불 기도가 앞섰다.
그 기도는 계백의 정기만큼이나 질기고 끈질기게 이 땅의 생명을 이어온, 우리 민족의 또 다른 ‘독립사’가 아니었을까. "계백의 정기"와 "관창의 어린 넋"은 논산이라는 공간이 가진 역사적 무게감을 훈련병들의 심장에 심어주었을 것이다.
'전쟁이라는 거대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군가를 부르며 칼을 갈던 청년'과 '그 옆에서 홑이불 가림막을 치고 생명의 불씨를 남기려던 부모'의 대비가 극명해지는 서사시(敍事詩)가 우리 겨레만의 민족사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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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노원 작성시간 13:34 new
군 생활 중 가장 추억에 남는 곳이 바로 논산훈련소입니다. 저 역시 특수간부후보생 입교 전에 논산훈련소에서 한 달간 기본훈련을 받았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올려주신 군가를 잘 몰랐는데, 안내대로 클릭하여 <육군훈련소가>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노래 자체는 낯설었지만, 동영상 속에 나오는 각개전투, 총검술, 행군하는 모습들을 보니 정말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느껴져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황산벌과 논산이라는 단어만으로도 백제의 계백장군이 떠오르며 다시금 민족혼을 일깨우게 되네요. 귀한 글과 음악 덕분에 잠시 옛 추억에 젖어봅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