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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스탄 연구소

해외건설과 건설산업, 건설경제학 연구

작성자달스탄|작성시간26.06.20|조회수31 목록 댓글 1

해외건설과 건설업 연구 [심의섭]

 

내가 해외건설을 시작부터 절정기까지 학문의 대상으로 연구할 수 있었던 것은 정말로 행운이었다.

해외건설을 바탕으로 건설산업까지 확대하여 건설부를 정부 경제부처회의에 정식으로 참가시키도록 자문하였고,

건설산업연구소 창립을 적극 자문했으며 건설백서, 해외건설백서를 발간한 것과

각종 건설관련분야와 해외건설부문에 대한 자문과 역할을 나름대로 충실하게 임했던 것을 보람으로 생각한다.

 

내가 홰외건설에 관심을 갖고 내 박사논문의 주제로 삼았고, 건설업에 대한 교재와 저서를 최초로 발간하였다.

전문가가된 배경은 직장을 옮긴 것과 관련이 있다.

내가 KDI에 재직중이었을 때(1971~1976)의 상황이다.

마침 중동에서 오일혁명이 일어나기 시작했는데 한국정부에서 년전에 설립한 전문적인 중동문제연구소를

국제경제연구원(KIEI)으로 개편하면서 내가 기존연구소에서 신설연구소로의 예우인사 차원에서 옮겨가게 되었다.

연구부 소속은 중동/아프리카부이었고, 연구주제는 당연히 중동경제와 해외걸선부문을 담당하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연구부분이 이 분야로 좁혀지었고, 그중에서도 해외건설에 대해 남다른 관심을 갖고 연구하였다.

 

나의 해외건설관련 학술활동은

최초로 해외건설관련 저서인 Korean Construction in the Middle East, (Seoul: Bub Mun Sa, 1984)를 발간한 것을 비롯하여

국내외 학술대회에서도 많은 논문을 발표하였다.

중동의 해외건설현장도 순방하였는 바, 특히 리비아 건설현장 방문은 감동적이었다.

또한 해외건설협회의 기관지인 월간 해외건설의 단골 필진이었으며

한국해외건설의 도약기까지 관련분야에서 열심히 활동하였다.

건설산업과 건설경제학 분야에서도 건설경제학(서울: 진성사 1990),

건설업(서울: 웅진출판, 1994) 등을 발간하여 대학교재로 활용하였으며,

관련부처 및 관련기관의 자문위원과 청문회 활동도 활발히 하였다.

특히 대한건설협회창립 50주년기념 논문심사위원회 위원(1997)과

대한건설단체총연합회 대한민국건설대상 심사위원(1997)장을 맡은 나의 연구활동을 연계하는 큰 보람이었다.

 

아래에서는 “70년대 한국건설업의 중동진출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소개하고자 한다.[후속]

이에 앞서 박정희 대통령과 정주영 회장간의 코페르니쿠스적인 발상의 전환과 같은 대화를 소개한다.

 

 

사막의 횃불(大觀小察)과 긍정(肯定)의 힘

 

1975년 여름 어느 날,

朴 正熙 대통령이 현대건설의 정 주영 회장을 청와대로 급히 불렀다.

박대통령 >>> "달러를 벌어들일 좋은 기회가 왔는데 일을 못하겠다는 작자들이 있습니다.

                     지금 당장 중동에 다녀 오십시오.

                     만약 정 사장도 안 된다고 하면 나도 포기하지요.”

정 회장이 물었다. >>> “무슨 얘기입니까?”

박대통령 >>> "1973년도 석유파동으로 지금 중동국가들은 달러를 주체하지 못 하는데

                     그 돈으로 여러 가지 사회 인프라를 건설하고 싶은데,

                     너무 더운 나라라 선뜻 일하러 가는 나라가 없는 모양입니다.

                     우리나라에 일할 의사를 타진해 왔습니다.

                     관리들을 보냈더니, 2주 만에 돌아와서 하는 얘기가 너무 더워서 낮에는 일을 할수 없고,

                     건설공사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물이 없어 공사를 할 수 없는 나라 라는겁니다.”

정 회장  >>> "그래요, 오늘 당장 떠나겠습니다.”

 

정 주영 회장은 5일 만에 다시 청와대에 들어가 박 정희 대통령을 만났다.

정 회장  >>> 지성이면 감천 이라더니 하늘이 우리나라를 돕는 것 같습니다.”

박 대통령이 대꾸했다.>>> “무슨 얘기요?”

정 회장  >>> “중동은 이 세상에서 건설공사 하기에 제일 좋은 지역입니다.”

박대통령 >>> “뭐요!”

             >>> “1년 12달 비가 오지 않으니 1년 내내 공사를 할 수 있고요.”  

박대통령 >>> “또 뭐요?”

             >>> “건설에 필요한 모래, 자갈이 현장에 있으니 자재 조달이 쉽고요”

박대통령 >>> “물은?”

             >>> “그거야 어디서 실어오면 되고요.”

박대통령 >>> “50도나 되는 더위는?”

             >>> "천막을 치고 낮에는 자고 밤에 일하면 되고요.“

 

박 대통령은 부저를 눌러 비서실장을 불렀다.

박대통령 >>> "임자, 현대건설이 중동에 나가는 데 정부가 지원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도와줘!”

 

정 회장 말대로 한국 사람들은 낮에는 자고, 밤에는 횃불을 들고 일을 했다.

세계가 놀랐다.

달러가 부족했던 그 시절,

30만 명의 일꾼들이 중동으로 몰려나갔고 보잉 747 특별기편으로 달러를 싣고 들어왔다.

 

출처: 이원모, 박정희가 정주영을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

* 긍정적인 사람은 할 일이 많고 적극적이고 진취적이지만, 부정적인 할 수 있는 일이나 하려고하며 소극적이고 현실에 안주하려는 경향이 있다. 숲을 보고 나무도 보아야 한다는 대관소찰(大觀小察)하라는 말이 있다. 전체 숲을 보고 나무 하나하나를 살펴야하지 나무 몇 구루를 보고 전체 숲을 평가 한다던가, 또는 크게 개념을 보고 하나하나 세부적인 것을 파악해야지 작은 것을 먼저 파악하고 전체를 보려고 하면 편견과 시행착오를 일으킬 과오가 생긴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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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박노원 | 작성시간 26.06.20 심의섭 교수님의 글을 읽으며 당시 대한민국이 부족한 달러를 벌어들이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역사의 현장이 생생하게 다가옵니다. 현장에서 뛴 역군들도 위대하지만, 중동 건설 현장의 진정한 '길라잡이'가 되어 학문적 자문과 정책적 역할을 아끼지 않으신 교수님 같은 분이 계셨기에 가능했던 기적이라 생각합니다. 대한민국 건설대상 심사위원장까지 역임하신 빛나는 학문적 업적과 기여에 깊은 존경과 감사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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