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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스탄 연구소

한국아프리카학회 기반조성과 학술활동

작성자달스탄|작성시간26.06.21|조회수13 목록 댓글 0

한국아프리카학회 기반조성과 학술활동

 

한국아프리카학회 기반조성

 

전두환 대한민국 대통령각하 내외분은 다니엘 T. 아랍 모이 케냐공화국 대통령각하의 초청으로 1982817일부터 819일까지 케냐공화국을 공식 방문하였다.

당시만 하여도 아프리카에 대한 연구는 KOTRA, 국제경제연구원 등 극히 한정된 기관에서만 맞춤형 연구가 대부분이었고, 한국외대에 아프리카 연구소와 아프리카학과가 독점적 지위를 누리고 있어서 연구기반이 매우 취약한 상황이었다.

대통령의 아프리카 방문을 뒷받침하기 위해 아프리카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학회의 창립이 필요하였다.

이러한 배경에서 1982719, 한국아프리카학회 창립회의가 한국외대 제2회의실에서 열렸다.

초대회장에 박상식 박사(외무부), 부회장에 박원탁 교수(한국외대 아프리카문제연구소장)를 선출했다.

아프리카학회는 각 대학과 공공기관의 아프리카관계 연구학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아프리카 정치, 문화, 사회, 경제에 대한 상호 이해증진을 목표로 발족되었다.

 

나는 1983년에 미국에서 귀국하자마자 한국아프리카학회의 총무이사를 맡고 있던 홍순남교수의 후임으로 1983년부터 1988년까지 총무이사로서 열심히 학회활동을 총괄하였다.

정기학술대회는 물론 각종 연구활동을 왕성하게 추진하였고,

19846월부터 총무이사 재임기간 동안 분기마다 학회 소식지를 꾸준히 발간하였다.

1986725일 드디어 산학협동재단 등의 지원으로 한국아프리카학회지 창간호를 발행하였다.

그후 상임이사(1989-1992), 총무이사(1993-1996)를 다시 맡았고, 편집위원(1996-1998), 고문(2004-2009) 역할을 하였다.

박원탁 회장과 15년을 함께 학회를 운영하였다.

그 동안 한국외대 아프리카학의 교수와 연구진들이 학회에 본격적으로 참여하면서 나는 회장을 하지 못하고 고문이 되어 뒷전으로 물러났다.

러다가 초기 한국외대 출신 인적자원들이 일순을 마치면서 나를 학회장으로 소환하였다(2009~2011).

이미 나는 정년에 걸려 있으므로(2010) 예우 인사일 뿐이었고, 명예회장(2111~2013)을 거처 다시 고문으로 위촉 받았다.

 

 

나의 아프리카 학술활동

 

내가 아프리카 연구에 관심을 가진 것은 1997년 국제경제연구원에 재직하면서 시작하였고,

한국외대 무역대학원에서 20년 가까이 강의를 하였다.

외교통상부의 자문위원도 20년 가까이 하였으며, 

 2007~2010년간에는 아프리카전문가네트워크(ASN Africa Specialist Network)의 회장으로 전문가로서의 최대한 봉사하였다.

 

내가 남아공에 처음 갔던 것은 유럽 및 아프리카 사업 평가단(청와대)으로 한달간(1977.5.30.-6.30) 순방한 것을 계기로 아프리카 연구에 빠져들어갔다.

당시 하던말이 생각난다. “아프리카 연구는 울고 들어가서 울고 나온다.”

그러나 아프리카에 빠지다 보면 누구나 그런것은 아니었다.

나의 아프리카 관련 활동 중 꼭 남기고 싶은것 몇 가지를 들어보라면,

세계의 정보기관, 첩보기관이 총집합하여 개최한 모로코 말라케시의 국제안보기관회의 참석, 남아공에서의 한국학 강의개설 같은 것이 잊지 못할 추억이라 하겠다.

 

나는 남아공을 세 차례 방문하였는데 그중에서 가장 자부심을 갖을 만한 것은 비트바터스란드 대학교에 한국학을 개설하여 아프리카 대학에 한국학을 설치하고 강의하여 아프리카에 최초로 한국학의 뿌리를 내리게 한 것이다(Visiting Professor(lecture), South Africa, University of The Witwatersrand University, (Inter-Korea Study, Korea-USA alliance, Korea economic development, Africa-Korea relations; Undergraduate and graduate course), 2013.9.7.~2013.10.3.; 연합뉴스, <인터뷰> 남아공 대학서 첫 한국학 강의, 심의섭 교수, 2013.09.30.).

 

그리고 내가 학자로서 꼭 하고 싶었던 역사의 기록이 몇가지 있었다.

예를 들면, 1. 한국의 정부파견의사, 2. 한국 광부, 간호사의 서독파견, 3. 한국의 태권도 교관의 해외파견, 4. 해외건설, 원양선원, 트럭운전사, 병아리 감별사 등 한국의 해외취업역사를 백서식으로 출간하고 싶었다.

이중에서 한국의 정파의(정부파견의사)기록이라는 한가지를 겨우 하였을 뿐이지만 당당히 학자로서의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역사적 소임을 일부라도 한 것 같다.

부연하자면, 내가 보츠와나를 방문하여 처음 만났던 김정박사와의 인연으로 한국의 슈바이쳐들라는 책을 출간한 것이 역사가 나에게 부여한 소임으로 생각하여 악전고투를 하면서까지 기록을 남긴 것을 커다란 보람으로 생각한다(심의섭 외, 가난한 지구촌 사람들을 사랑한 한국의 슈바이쳐들, 한국국제협력단, 2011, 256).

 

이 밖에도 1990년에  한국에서 최초로  아프리카경제론(서울: 명지출판사, 1990.9)을 집필하여 2판까지 발간하여 해당부문의 대학교재로 사용되었다.

요즈음 중국에서도 졸저 아프카경제론의 개정판인 아프리카 경제(서상현과 공저, 세창출판사, 2012. 9; 416쪽)’에 대한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심의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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