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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평우 박사

킬리만자로의 혼(魂) 4/7

작성자이평우|작성시간26.06.08|조회수39 목록 댓글 2

제4일 : 화요일 ― 1997년 10월 14일

텐트 주위를 찾아온 산새들의 지저귐 소리에 잠에서 깼다. 잠자리는 여전히 불편했고, 밤새 텐트 안으로 스며드는 냉기에 깊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눈을 뜨자마자 텐트 천장이 환하게 밝아 있는 것이 보였다. 이른 새벽의 풍경이 궁금해 지퍼를 열어보니, 땅에는 하얗게 서리가 내려 있었고 하늘은 말끔히 개어 있었다.
킬리만자로의 아침은 대개 이렇다. 새벽엔 맑고 투명하다가도, 시간이 흐르면 구름이 몰려와 오후에는 비를 뿌린다.

텐트 밖으로 나서자 어젯밤 달빛 아래 환상처럼 서 있던 키보(Kibo)가 이번에는 아침 햇살 속에서 또렷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밤의 신비로운 모습과는 달리, 새벽의 키보는 막 단장한 새색시처럼 맑고 단정했다.
나는 이른 아침의 키보와 메루(Meru)를 몇 장 더 카메라에 담아두었다.
산에서 맞는 아침은 언제나 상쾌하다.
해발 3,800미터 고원의 드넓은 개활지에 자리 잡은 이 캠프 사이트는, 아마 오래도록 내 기억 속에 가장 아름다운 숙영지 중 하나로 남게 될 것이다.

아침 8시 15분.
우리는 다시 바랑코(Barranco)를 향해 길을 나섰다.
포터들은 이미 짐을 꾸려 먼저 출발했고, 오토와 나는 늘 그렇듯 “폴리 폴리”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하늘은 맑게 개어 있었고 태양은 눈부시게 빛났다. 우리는 계속 키보를 바라보며 동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길은 갈수록 기괴한 바위들과 고산식물들이 어우러진 아기자기한 오솔길로 이어졌다. 시원한 산들바람과 산새들의 지저귐까지 더해져 마음은 더없이 상쾌했다.
그러나 몸은 달랐다.
조금만 걸어도 숨이 가빠왔고, 발걸음은 점점 무거워졌다. 산소가 희박해지고 있는 것이다.
길은 태고의 빙하가 훑고 지나간 듯한 밋밋한 골짜기를 따라 이어졌다. 아까 더워서 벗어두었던 긴팔 셔츠를 다시 꺼내 입었다. 바람이 차갑게 불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오전 10시쯤 되자 산 아래쪽에서 다시 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메루 산은 두터운 운무 속에 꼭대기만 희미하게 떠 있었고, 키보 역시 다시 짙은 구름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아마 내일 새벽이 되기 전까지는 그 위용을 다시 보기 어려울 것이다.
길은 황갈색 이끼 다발을 길게 늘어뜨린 거대한 바위틈 사이로 끊길 듯 이어졌다.
누군가 길가에 쌓아놓은 돌무더기 위에 나도 작은 돌 하나를 올려놓았다. 저마다의 소망과 기도를 담아 지나갔으리라.
구름은 점점 짙어지고 있었다.
우리는 지금 그 구름 속을 향해 더 가까이 걸어가고 있었다.
이 지역의 날씨는 묘했다. 밤사이 하늘이 맑게 개었다가 오전 10시쯤부터 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안개비처럼 내리다가 시간이 지나면 굵은 빗줄기로 변한다.
다행히 폭우가 아니라는 것이 산행에는 큰 위안이었다.

화산석과 육중한 바위들로 뒤덮인 길을 따라 계속 올랐다. 이 일대는 너무 척박해서 고산식물조차 드물었다.
정오 무렵 잠시 멈춰 점심을 먹었다.
식욕은 없었고 두통도 다시 시작되려 했다. 샌드위치 대신 새콤한 귤을 먹으니 그나마 입안이 개운해졌다.
아래 골짜기에서 구름이 몰려오더니 어느새 차가운 안개와 함께 내가 앉아 있는 자리까지 덮쳐왔다. 곧 비가 내릴 듯했다.
나는 서둘러 우비를 꺼내기 쉽게 챙겨두고 재킷과 털모자를 꺼내 입었다.
이곳 날씨는 한순간에 변했다. 구름이 걷혀 햇살이 비치면 금세 따뜻해지고, 다시 안개가 밀려오면 순식간에 한기가 엄습했다. 그 변화에 맞춰 옷을 입고 벗기를 반복해야 했다.
길은 여전히 화산석이 흩어진 가파른 오르막이었다.
숨은 몹시 가빴다.
다이아목스의 부작용 때문인지 손발 저림도 점점 심해졌다.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약 없이 버텨볼 걸 그랬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미 시작한 복용을 중단하기도 애매했다.

커다란 암석들이 병풍처럼 둘러선 절벽 지대를 지나자 걷기가 더욱 힘들어졌다. 몇 걸음 떼고는 멈춰 숨을 고르기를 반복했다.
그때마다 뒤에서 오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폴리 폴리.”
그럴 즈음이면 나는 혼잣말처럼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 가사를 읊조리곤 했다.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를 본 적이 있는가…”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나도 모르게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었다.
“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갈 순 없잖아…
내가 산 흔적일랑 남겨둬야지…”

구름에 가린 킬리만자로를 향해 노래를 부르다 보면 가슴 한켠이 뜨거워졌다.
그래, 인생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잠시 왔다 사라지는 삶이라면, 무엇인가 흔적 하나쯤은 남기고 가야 하지 않을까.
나는 다시 큰 소리로 노래했다.
“묻지 마라 왜 그렇게 높은 곳까지 오르려 애쓰는지…”
그 대목에 이르면 늘 목이 메었다.
이 노래의 진짜 울림은 바로 거기에 있었다. 이상을 향해 끝없이 자신을 밀어 올리는 고독한 영혼.
그 순간 나는 생각했다.
‘그래, 인간은 누구나 자기만의 킬리만자로를 향해 오르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가이드 오토의 말에 따르면 킬리만자로에는 실제로 표범도 하이에나도 없다고 했다.
하지만 또 어떠랴.
노랫말이 꼭 사실일 필요는 없는 법이다.
노래 속에서는 찔레꽃도 붉게 피고, 월남도 섬나라가 된다.
중요한 것은 사실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영혼이다.

오후 1시를 조금 넘긴 무렵, 해발 4,000미터 지점에서 쉬고 있을 때였다.
골짜기 아래에서 밀려온 짙은 구름이 마침내 굵은 빗방울을 몰고 왔다. 비인가 싶더니 곧 녹두알만 한 우박까지 쏟아졌다.
황급히 우비를 꺼내 입고 가파른 모래 언덕 내리막길로 내려섰다.
우박 섞인 비는 계속 내렸다.
모자챙 끝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이 안경을 적셨고, 우비를 타고 흐른 물은 등산화 속으로 스며들어 양말까지 흠뻑 적셨다. 발끝에서부터 으슬으슬 한기가 올라왔다.
오늘 아침 오토가 바랑코 지역은 비가 많다고 했는데, 과연 그의 말이 맞았다.
몇 차례 깊은 골짜기를 오르내린 끝에, 드디어 저 아래 푸른 협곡이 내려다보이는 능선에 섰다.
오늘 내린 비로 불어난 계류가 여러 갈래로 굽이치며 요란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이제 우리는 저 아래 계곡까지 내려가야 했다.
미끄러운 급경사를 조심조심 내려가다 보니, 이 지역에는 유난히 푸른 식물들이 많았다.
특히 거친 원통형 줄기 끝에 잎이 모여 자라는 세네시오(Senecio)와 파인애플을 닮은 로벨리아(Lobelia)가 자주 눈에 띄었다.
지금껏 바위와 화산석뿐인 황량한 지대를 지나온 터라, 그 푸른 생명력은 더욱 싱그럽게 다가왔다.

멀리 건너편 바위 아래에는 오늘 밤 머물 텐트가 이미 쳐져 있었고, 그 옆으로는 저녁 준비를 하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비에 젖은 우비를 벗고 따뜻한 곳에서 쉬고 싶은 마음에 발걸음이 빨라졌다.
다행히 텐트가 자리한 곳은 거대한 바위 아래였다. 바위가 천장 역할을 해주어 비가 들이치지 않았고, 위쪽에는 자연 동굴까지 있어 포터들과 가이드들이 지내기에도 안성맞춤이었다.
이곳이 바로 해발 3,950미터의 바랑코였다.
낭만적인 장소임은 분명했지만, 젖은 옷과 추위 속에서는 그 낭만조차 선뜻 느껴지지 않았다.
어제의 쉬라 지역이 3,840미터였고 오늘 바랑코가 3,950미터이니, 하루 종일 걸어 겨우 100미터 남짓 올라온 셈이었다.
하지만 높이가 무슨 의미랴.
오늘 하루도 충분히 많이 보고, 느끼고, 배웠으니 그것만으로도 족했다.
텐트 안에서 빗소리를 들으며 따뜻한 루이보스(Rooibos) 차 한잔으로 몸을 녹였다.
그동안은 늘 오토가 가져다주는 차를 마셨지만, 오늘 저녁만큼은 내가 직접 가져온 남아공산 루이보스 찻잎으로 차를 우려 마셨다.
뜨거운 차를 천천히 마시고 있으니 비 오는 킬리만자로의 운치가 비로소 마음속에 스며드는 듯했다.

먼저 도착해 비를 맞으며 텐트를 치고 저녁 준비를 해준 포터들과, 하루 종일 비 속에서도 묵묵히 내 사진 촬영을 도와준 오토가 새삼 고마웠다.
나는 감사의 뜻으로 오토에게 10달러를 건네며 모두 함께 나누라고 했다.
우리 돈으로는 얼마 되지 않는 돈이었지만, 그들은 너무나 고마워했고 오히려 내가 민망할 정도였다.
자기 일을 천직처럼 여기며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그들의 모습은 오래도록 내 마음속에 남게 될 것이다.

잠시 후 오토가 뜨거운 탄자니아 커피를 보온병에 담아 가져왔다.
향이 무척 좋았다.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지만, 큰 바위가 든든한 지붕이 되어주어 텐트 안은 포근하고 뽀송했다.
문득 조금 전 벼랑길을 내려오며 “킬리만자로 산신님, 비 좀 멈춰주십시오” 하고 농담처럼 외쳤던 일이 떠올랐다.
그 직후 정말로 잠시 하늘이 밝아지며 눈 덮인 키보가 모습을 드러냈었다.
물론 잠깐뿐이었다.
이내 다시 빗줄기가 굵어졌지만, 이상하게도 그 짧은 순간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오늘도 아침 8시 15분에 출발해 오후 3시 반까지 거의 쉬지 않고 걸었다. 꼬박 일곱 시간의 산행이었다.
이제 킬리만자로 여정도 어느덧 절반을 넘어섰다.
내일은 이곳을 떠나 해발 4,600미터의 바라푸(Barafu) 헛까지 간다. 그곳에서 잠시 쉰 뒤 한밤중 우후루(Uhuru) 봉을 향해 마지막 정상 공격에 나설 예정이다.
지금까지 킬리만자로 산신이 나를 보살펴준 듯, 큰 탈 없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남은 여정 역시 무사히 이어지기를 조용히 기도해본다.
저녁 6시가 되자 신기하게도 비가 그쳤다.
구름 사이로 파란 하늘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냈다.
아마 내일 아침까지는 더 이상 비가 오지 않을 것이다.
비 갠 산속에는 계곡 물소리만 우렁차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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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달스탄 | 작성시간 26.06.08 하루 종일 7시간 걸어서 100미터 올라 욌다. 힘내세요.
  • 작성자박노원 | 작성시간 26.06.09 이평우 박사님, 평생을 한탄바이러스 연구와 학술 활동에 헌신하시고 서신 끝에 오르신 킬리만자로라니, 글 밑바닥에 흐르는 고독과 성찰이 더욱 묵직하게 다가옵니다. 7시간을 걸어 겨우 100미터를 오르는 숨 가쁜 고난 속에서도 조용필의 노래를 부르며 인생의 흔적을 되돌아보시는 모습에 큰 울림을 받았습니다. 박사님이 묵묵히 걸어오신 위대한 연구의 길처럼, 정상으로 향하는 남은 여정도 무사히 이어지기를 응원하며 기도로 동행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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