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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평우 박사

킬리만자로의 혼(魂) 7/7

작성자이평우|작성시간26.06.16|조회수30 목록 댓글 0

제7일 : 금요일 - 1997년 10월 17일

<산의 품을 떠나며>
전날 저녁에는 모처럼 입맛에 맞는 삶은 닭요리로 식사를 했다. 초저녁부터 잠자리에 들었고, 한밤중에는 텐트 밖 어디선가 들려오는 산짐승의 기이한 울음소리에 잠이 깨어 한동안 뒤척이기도 했다. 그러나 다시 깊은 잠에 빠져들었고, 아침까지 푹 자고 일어나니 몸과 마음이 모두 상쾌했다.

르믈레가 떠다 준 세숫물로 얼굴을 씻고 아침 식사를 마친 뒤, 여유 있게 하산 준비를 했다.
맑게 갠 아침, 므웨카 숙영지에서 바라본 키보(Kibo)는 마치 마지막 작별 인사라도 건네듯 관목 숲 너머로 다시 그 웅장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조금 후 열대우림 속으로 들어가면 더 이상 볼 수 없을 터였다.

아쉬운 마음으로 작별을 고하며 길을 나섰다. 몇 걸음 옮길 때마다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되었다. 그 때문에 발걸음은 자연스레 더뎌졌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길은 곧 울창한 열대우림 속으로 깊숙이 들어갔고, 그 순간부터 킬리만자로의 모습은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졌다.
'이 산을 다시 찾을 날이 있을까.'
그 생각이 문득 스쳐 지나갔다. 정상 공격을 위해 한밤중에 올려다보았던 킬리만자로의 신비로운 모습과, 오늘 아침 작별을 고하듯 서 있던 키보의 장엄한 모습이 한 편의 영상처럼 겹쳐 떠올랐다.

길은 다시 진흙탕으로 변해 있었다. 특히 내리막길의 진흙은 오를 때보다 훨씬 미끄러웠다. 발이 빠지거나 미끄러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한 걸음 한 걸음 내려왔다.
열대우림 지역에는 아름다운 꽃들이 유난히 많았다. 대부분은 올라올 때 이미 사진에 담아 두었지만, 간혹 처음 보는 꽃들도 있었고 다시 찍고 싶은 꽃들도 눈에 띄어 몇 장 더 촬영했다.
자칫 지루할 수 있는 하산길이었지만, 가이드 오토와 그의 아들인 포터 르믈레, 그리고 또 다른 포터 앤토니와 함께 노래를 부르며 걷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들은 킬리만자로 노래를 불렀고, 나는 아리랑을 들려주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길을 걸으며 그들에게 물었다.
“킬리만자로가 좋은가?”
전문 가이드인 오토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좋지요. 돈을 벌게 해주니까요.”
과묵한 앤토니는 짧게 말했다.
“Good.”
반면 자동차 정비사가 꿈인 젊은 르믈레는 고개를 저었다.
“비도 많이 오고 바람도 세서 싫어요.”
그들의 대답을 듣고 나는 말했다.
“나는 좋네. 그 넉넉한 품도 좋고, 변화무쌍하면서도 언제나 의연한 모습이 좋아.”
그들은 웃었고, 나 역시 웃었다.

마침내 므웨카 게이트(Mweka Gate)에 도착했다.
입산할 때 마챠메 게이트에서 방명록에 국적과 이름을 적었던 것처럼, 하산할 때도 다시 기록을 남기게 되어 있었다. 특히 가이드의 이름을 함께 적도록 되어 있었는데, 이는 한 가이드의 책임 아래 입산했던 사람들이 모두 무사히 하산했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절차인 듯했다.

오토가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더니 잠시 후 흰 종이 한 장을 들고 나왔다.
“이름을 쓰십시오.”
가까이 가서 보니, 아프리카 최고봉 킬리만자로의 우후루봉(Uhuru Peak) 등정에 성공했음을 증명하는 공식 증명서(Certificate)였다.
이곳을 벗어나면 이제 완전히 킬리만자로의 품을 떠나게 된다. 그래서인지 떠나는 발걸음이 내심 서운했는데, 증명서 한 장을 받아 드니 마음 한구석이 한결 홀가분해졌다.
나는 증명서를 번쩍 들어 올리고, 그동안 생사고락을 함께했던 오토와 포터 앤토니, 르믈레, 페트로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후 호텔 차량이 기다리고 있을 므웨카 마을을 향해 계속 내려갔다.
해발 약 1,500m에 위치한 이 일대 산록은 화산의 현무암이 오랜 세월 풍화되어 곱게 부서지고, 여기에 나무가 썩어 형성된 부식토가 섞여 매우 비옥한 토양을 이루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길 양편으로는 커피나무와 바나나나무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고, 옥수수밭도 곳곳에 펼쳐져 있었다.

므웨카 마을에 도착하니 호텔의 랜드로버가 이미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더욱 고마웠던 것은 호텔 측에서 레스토랑 음식을 한가득 준비해 나와 있다는 사실이었다. 산에서 며칠 동안 고생한 투숙객을 위한 배려였다.
늦은 점심을 맛있게 먹고 다시 차량에 올랐다. 차는 덜커덩거리는 비포장길을 한참 달려 내려갔다.
오후 3시 15분경, 나는 무사히 모쉬(Moshi)의 호텔로 돌아왔다.
킬리만자로의 품속으로 들어간 지 꼭 일주일 만이었다.
자연 그대로의 삶(Wild Life) 속에서 살다가 다시 문명의 세계로 돌아온 순간이었다.

《에필로그》
<킬리만자로의 혼(魂)>
우후루는 킬리만자로의 얼굴이 아니었다.
그곳은 키보의 가장 높은 봉우리였지만, 막상 그곳을 향해 오르는 동안에는 거대한 Southern Icefields에 가려져 끝내 그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그리고 어렵게 도달한 정상 역시 상상했던 것과 달리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언덕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곳은 분명 킬리만자로의 최고봉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곳에서 한 가지를 배웠다.
사람의 인품도 최고의 경지에 이르면 결코 자신을 과시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번 킬리만자로 등반은 단순한 산행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 육체적 한계를 시험하는 도전이었으며, 동시에 정신적 한계를 돌아보게 하는 순례였다.
킬리만자로는 말없이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
삶의 어려움 앞에서 어떻게 견뎌야 하는지, 그리고 거대한 자연 앞에서 인간의 자만이 얼마나 작은 것인지를.
나는 그 산의 위용 앞에서, 지난날 사소한 명예와 작은 성취에 집착하며 살아왔던 내 모습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부끄러움을 느꼈다.

정상에서는 헤밍웨이의 소설에 등장하는, 굶주리고 얼어 죽은 표범의 사체를 발견할 수 없었다. 사실 그것은 'Leopard Point'라는 봉우리 이름으로만 존재하고 있었다. 실제로 그곳에서 표범의 사체가 발견되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상징하는 의미다.
인간이 끝없이 이상을 추구하며 고독한 길을 걸어가는 존재라는 사실.
내게 킬리만자로의 표범은 바로 그러한 인간 정신의 상징이었다. 그리고 그 상징은 이제 '킬리만자로의 혼'으로 남아 내 삶의 정신적 지표가 되었다.

요하네스버그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우연히 옆자리에 앉은 아일랜드계 짐바브웨 사업가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는 30년 넘게 아프리카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내가 물었다.
“아프리카는 어떤 곳입니까?”
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Lovely!”
그리고 잠시 후 이런 말을 덧붙였다.
“아프리카에는 사람의 영혼을 끌어당기는 무엇인가가 있습니다.”
당시에는 다소 난해하게 들렸던 말이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나 역시 설명할 수 없는 어떤 부름과 이끌림 때문에 킬리만자로까지 찾아갔던 것이 아닌가.
그래서 그의 말에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이번 등반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가난하지만 성실했던 가이드와 헌신적인 포터들 덕분이었다. 나는 지금도 그들에게 깊은 사랑과 감사를 보낸다.

그리고 나는 믿는다.
킬리만자로는 내게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기 위해, 그리고 무엇인가를 선물하기 위해 자신의 넉넉한 품으로 나를 불렀다고.
그 부름의 메아리는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내 마음속에 남아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오래도록, 내 삶에 활력을 불어넣고 바른 길을 잃지 않도록 조용히 지켜줄 것이다.
그것이 내가 만난 킬리만자로의 혼(魂)이다.

<글을 마치며>
29년 전의 킬리만자로 산행을 더듬어 보며 7일간의 기록을 정리하는 동안, 당시의 차가운 바람과 희박한 공기, 새벽의 별빛과 정상에서의 벅찬 감동이 마치 어제 일처럼 되살아났습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이 글은 단순히 한 사람의 산행 기록이라기보다, 세월 속에 묻혀 있던 한 조각의 인생을 다시 꺼내어 들여다보는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사실 등산이나 여행 같은 기록은 본인의 추억일 뿐, 타인에게는 다소 지루하고 사소한 이야기로 여겨질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긴 연재를 끝까지 읽어주시고, 따뜻한 격려와 공감의 말씀을 보내주신 친구들과 지인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특히 제가 미처 기억하지 못했던 감동과 의미를 독자 여러분의 댓글과 답글을 통해 새롭게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글은 혼자 쓰지만, 그 글의 가치는 함께 읽고 공감해 주는 분들이 있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킬리만자로의 만년설은 세월 속에 조금씩 줄어들고 있을지 모르지만, 그 산이 제게 남겨준 가르침과 울림은 지금도 변함없이 마음속에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이번 연재를 통해 그 기억을 여러분과 함께 나눌 수 있었음을 큰 기쁨으로 생각합니다.
끝까지 동행해 주신 모든 분들께 다시 한번 깊이 감사드립니다.

여천(戾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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