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사유한 뒤에 선정에서 일어나 부처님께서 계신 곳으로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그 발에 예배하고 한쪽에 물러나 앉아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혼자 어느 고요한 곳에서 골똘히 정밀하게 사유하다가
'비구가 어떻게 알고 어떻게 보아야 법을 볼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였습니다."
그 때 세존께서 그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해 보아라. 너를 위해 설명하리라.
두 가지 법이 있다. 어떤 것이 그 두 가지인가?
눈[眼]과 색[色], 이것이 그 두 가지이다.
…… (이 사이의 자세한 내용은 위에서 설한 것과 같다)
……(내지)…… 그 경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왜냐 하면 눈과 색을 인연하여 안식(眼識)이 생기고,
이 세 가지가 화합한 것이 접촉[觸]이며,
접촉과 함께 하여 느낌[受]·생각[想]·의도[思]가 생기기 때문이다.
이 무색음(無色陰)과 눈과 색 등, 이러한 법을 사람[人]이라고 하며,
이러한 법에 대해 사람이라는 생각을 지어
중생(衆生)·나라(那羅)·마누사(摩闍)·마나바(摩那婆)·사기(士其)1)·
복가라(福伽羅)·기바(耆婆)·선두(禪頭)2)라고 하느니라.
또 이와 같이 말한다.
'나는 눈으로 빛깔을 보고, 나는 귀로 소리를 들으며,
나는 코로 냄새를 맡고, 나는 혀로 맛을 보며,
나는 몸으로 감촉을 느끼고, 나는 뜻으로 법을 분별한다.'
그는 시설(施設)하고 나서 또 이와 같이 말한다.
'이 존자는 이름은 이러하고 이렇게 태어났으며,
성(姓)은 이러하고 이렇게 먹으며,
이렇게 괴로움과 즐거움을 겪고 이렇게 오래 살며,
이렇게 오래 머무르고 이렇게 목숨을 마쳤다.'
비구들아, 이것을 곧 생각이라고 하고,
이것을 곧 마음의 기록이라고 하며,
이것을 곧 말이라고 한다.
이 모든 법은 무상(無常)한 것이고,
함이 있으며, 생각과 원(願)을 인연하여 생긴 것이라고 한다.
만일 무상한 것이고 함이 있으며
생각과 원을 인연하여 생긴 것이라면
그것은 곧 괴로움이다.
또 그 괴로움은 생겨나고 또 괴로움은 머무르며,
또 괴로움은 소멸하고 또 괴로움은 자꾸 생겨서
일체가 다 괴로움뿐이다.
만일 다시 그 괴로움을 남김 없이 끊고 토해 버리며,
탐욕을 여의고 쉬며 사라지게 한다면,
다른 괴로움이 다시는 서로 잇따르지 않고 생겨나지 않나니,
이것이 곧 적멸(寂滅)이요 이것이 곧 승묘(勝妙)이니라.
이를 일러 남아있던 모든 것을 버리고
일체의 애욕이 다하며 탐욕이 없고 완전히 소멸한 열반(涅槃)이라고 하느니라.
귀·코·혀도 마찬가지이며,
몸[身]과 감촉[觸]을 인연하여 신식(身識)이 생기고
이 세 가지가 화합한 것이 접촉[觸]이며
접촉과 함께 어울려 느낌[受]·생각[想]·의도[思]가 생긴다.
이 네 가지는 곧 무색음(無色陰)이요, 몸은 곧 색음(色陰)이니,
이것을 사람[人]이라고 한다. ……
(이 사이의 자세한 내용은 위에서 설한 것과 같다)
……(내지)…… 완전히 소멸한 열반이니라.
뜻[意]과 법(法)을 인연하여 의식(意識)이 생기고,
이 세 가지가 화합한 것이 접촉이며,
접촉과 함께 어울려 느낌·생각·의도가 생긴다.
이 네 가지 무색음과 4대(大)는 사부(士夫)가 의지하는 바로써
이러한 법을 사람[人]이라고 한다.
…… (이 사이의 자세한 내용은 위에서 설한 것과 같다)
……(내지)…… 완전히 소멸한 열반이니라.
만일 이 모든 법에 대해서 마음이 따라 들어갔어도
해탈에 머물러 물러나지 않는다면
그것이 일으키는 얽매임과 집착에 있어서
나라고 하는 것이 없게 되느니라.
비구들아,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면
곧 법을 보게 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 주:
1) 본 경의 뒤 문장을 고려할 때 사기는 사부(士夫)라야 옳다.
2) 나라(那羅)는 팔리어로 ara이고 사람이라는 뜻이다. 마누사(摩闍)는 팔리어로 manussaloka이고 인간 혹은 인간세계라는 뜻이다. 마나바(摩那婆)는 팔리어로 ma avaka이고 소년 또는 어린아이라는 뜻이다. 사부(士夫)는 팔리어 puggala의 번역어이고 사람이라는 뜻이다. 복가라(福伽羅)는 팔리어로 puggala이고 보특가라(補特伽羅)라고도 한다. 기바(耆婆)는 팔리어로 j vaka-komarabhacca이고 수명(壽命)으로도 한역하며 유정(有情)의 대명사로 쓰인다. 선두(禪頭)는 팔리어로 jantu이고 사람 혹은 유정을 가리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