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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백운 경한(白雲景閑 1299-1375) - 無心無念禪을 강조한 麗末의 禪僧 - (1) 생애와 저술
1352년 정월 석옥을 다시 찾은 경한은 깨달음의 큰 전기를 맞이한다. 즉, 아침 저녁으로 석옥을 만나 의심을 품던 어느날, 혼자 무심무념의 참뜻을 깨닫자 석옥이 찬탄을 하면서 인가하였던 것이다. 당시 경한은 “곧 내 마음에 맺혔던 의심은 얼음처럼 풀리고 무심의 위없는 참뜻을 깊이 믿게 되었다(卽 我心疑 願然永釋 深信無心無上眞宗)"고 스스로 표현하였다. 스승인 석옥과 이별을 한 후 잠시 휴휴선암이라는 곳에서 머물렀던 경한은 1352년 3월 귀국길에 올랐다. 귀국한 그 해에 보법사에서 태고를 만나기도 했던 그는 성각사에서 대중들과 함께 정진을 하던 중 드디어 대오의 경지를 얻게 되었다. 그는 당시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회고하였다. 계사년(1353) 정월 17일 낮에 단좌를 하고 있었는데 저절로 생각나는 것이 있었으니, 永嘉大師 <證道歌> 중의 “망상을 버리려 하지도 말고 진실을 구하려 하지도 마라. 無明의 實性이 곧 불성이요, 幻化의 空身이 곧 법신이다”라는 것이었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러 그 말을 깊이 음미하였을 때 갑자기 바로 無心이 되었다. 한 생각도 일어나지 않고 전과 후가 아주 끊어져 조금도 의지할 곳이 없어 망연한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자 갑자기 삼천세계가 온통 하나, 자기 자신임을 보았다. 大悟를 이룬 다음 해인 1354년(공민왕 3) 6월, 석옥의 제자인 法眼禪人이 호주 가무산 천호암에서 석옥화상의 辭世頌을 가지고 와서 경한에게 전하였다. 현재 학계의 일부에서는 이 사세송의 전달 사실을 놓고 석옥의 嫡嗣는 태고가 아니라 경한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을 정도로 매우 민감한 문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사세송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온 집안이 텅 비어 뼛속까지 가난하다. 마침 한 칸의 草屋이 남아 있어 떠나는 길에 다달아 丙丁童子에게 주노라. (白雲買了賣淸風 散盡家私徹骨窮 留得一間芽草屋 臨行付與丙丁童)
1369년 김포의 포망산에 있는 고산암이라는 곳에서 지공화상의 讚을 쓰기도 했던 경한은 1374년(공민왕 3) 여주 취암사에서 다음과 같은 임종게를 남기고 입적하였다. 이때 그의 나이는 77세였다.
인생 70은 예로부터 드문 일이다. 77년 살다가 77년에 가나니 곳곳이 다 돌아갈 길이요 머리두면 바로 고향이거늘 무엇하러 배와 노를 이끌어 특히 고향에 돌아가고자 하리. 내 몸은 본래 없는 것이요 마음 또한 머무는 곳 없나니 재를 만들어 四方에 뿌리고 施主의 땅을 범하지 마라. (人生七十歲 古來亦希有 七十七年來 七十七年去 處處皆歸路 頭頭是故鄕 何 須理舟楫 特地欲歸鄕 我身本不有 心亦無所住 作灰散四方 勿占檀那地)
현존하는 경한의 저술로는 <백운화상어록>과 <佛祖直指心體要節>이 있다. 어록은 그의 시자였던 釋璨 · 達港 등이 기록한 것으로, 상 · 하 양권으로 되어 있으며 李穡과 李玖의 서문이 앞에 붙어 있다. 1378년 판각한 것이 전해져 오다가 경성제대에서 1934년 이것을 영인함으로써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김동화씨는 이 어록에 대해 “한국뿐 아니라 중국 선사들의 법어집으로서도 美文 · 통쾌한 점으로는 이 이상 가는 것이 별로 많지 않을 것이다”고 극찬하였다. 또한 要節은 그 내용보다 1377년 간행된 세계 最古의 鑄字本이라는 것으로 더 알려져 있다. 1972년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下卷만이 소장되어 있던 것이 밝혀짐으로써 세계의 주목을 끌었던 이 저술은 역대조사들의 偈 · 頌 · 讚 · 銘 · 書 · 詩 · 法語 등에서 선의 要諦를 깨닫는데 필요한 정수들이 抄錄한 내용을 담고 있다. 무비 스님 [출처 : 염화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