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禪/불교

[교리문답] 20. 유식학파의 삼성설에 대해 설명해 주세요

작성자석천|작성시간12.12.23|조회수46 목록 댓글 0

[소운스님의 교리문답] <20> 유식학파의 삼성설에 대해 설명해 주세요


Q: 삼성설(三性說)에 대해 문의합니다. 삼성설은 유식학파가 세 가지 자성으로 공을 설명하는 방법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이 삼성설이 각각 무엇이며 서로 어떤 관계로 공의 세계를 드러내고 있는지 설명해 주세요.


의타기성→변계소집성→원성실성
미혹의 세계서 깨달음의 세계로


A: 유식학파는 세 가지 자성으로 공의 세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세 가지 자성의 원류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이것들이 반야공을 설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원류를 〈반야경〉에서 찾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반야경〉에는 세 가지 자성에 관한 언급은 없고 〈해심밀경〉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습니다.
 

이 세 가지 자성은 변계소집성(遍計所執性) 의타기성(依他起性), 원성실성(圓成實性)을 말합니다. 이 세 가지 자성은 우리의 식을 떠나 외부세계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세 단계의 마음 상태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우리의 식은 주관과 객관으로 분열되어 있으며 자신의 식이 자신의 식에 투영된 사물을 실재하는 외계라고 잘못 인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식의 상태를 의타기성이라고 합니다.
 

이 다른 것에 의해 생긴 인식내용은 실은 허망하기 때문에 변계소집성이라고 부릅니다. 즉 우리가 인식한 의타기성은 변계소집성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변계소집성의 본성이 라는 사실을 인식할 때 변계소집성은 사라지고 식이 의타기이면서 진여를 실현하는 상태를 원성실성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세 가지 자성의 중심은 의타기입니다. 이 연기하고 있는 존재를 표현하는 의타기를 범부가 인식하면 변계소집성이 되고, 붓다가 인식하면 원성실성이 되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 자성을 하나하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변계소집성은 분별된 존재성으로 언어에 의해 파악됩니다.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것은 자아와 세계입니다. 이들은 실은 끊임없이 변화하여 고정적인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집착으로 인해 자신이 인식하는 그 상태로 존재한다고 허망하게 분별하고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예를 들면, 눈병에 걸린 사람에게 나타나는 환영으로서의 꽃인 공화(空華)가 실재로 존재한다고 착각하는 것과 같은 상태입니다.
 

둘째, 의타기성은 다른 것에 의지하여 생한다는 연기의 세계로 사물의 본래의 모습입니다. 유식학파에서는 사물은 식에 의해 나타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에 의타기성은 ‘분별 그 자체’인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식을 의타기라고 부르는 것일까요. 유식논사들은 외계를 경험하는 경험세계의 기체로서의 식을 유일한 연기법인 의타기성으로 표현하였던 것입니다.
 

또한 연기하는 식은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인연이 모여 성립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의타기성은 인 줄 알고 놀랐던 새끼줄이 ‘삼으로 만든 밧줄’에 불과하다는 현실을 그대로 인식하는 것을 말합니다.
 

셋째, 원성실성은 진실성이며 진여의 세계입니다. 이는 의타기성의 식에서 망상분별인 변계소집성이 한 상태를 말합니다. 원성실성은 붓다의 인식의 세계로서 ‘버들은 푸르고 꽃은 붉다’고 하는 사물 그 자체를 그대로 인식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원성실성은 다른 두 자성과 다른 것으로 별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 가지 자성은 미혹의 세계를 깨달음의 세계로 전환하는 실천을 뒷받침하는 가르침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의타기인 공성임을 아는 것은 무분별지인 반야에 의해서 입니다. 이 반야에 의해 의타기성이 공성임을 알지 못하는 상태를 변계소집성이라고 하고 깨달은 상태를 원성실성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하룻밤에 읽는 불교〉 저자


[출처 : 불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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