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禪/불교

[박경준의 교리강좌] 17. 불상은 우상인가

작성자석천|작성시간14.10.29|조회수55 목록 댓글 0

[박경준의 교리강좌] 17. 불상은 우상인가

“불상은 중생이 이루고자 하는 이상적 모델”

 

지난 2001년 3월 1일, 53m의 세계 최고 입불상인 아프가니스탄의 바미안 마애석불이 대포와 박격포 그리고 다이너마이트로 파괴되는 장면을 보면서 우리는 참으로 참담한 심정이었다. 이 파괴의 배후에는 ‘불상들은 이교도들에 의해 숭배되어 왔다. 그러나 진정한 신은 오직 알라뿐’이라고 주장한 아프가니스탄의 이슬람근본주의 정권 ‘탈레반’의 지배자 오마르의 지시가 있었다. 한마디로 이 야만적인 사건은 ‘불상은 곧 우상’이라는 탈레반 정권의 그릇된 인식과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우리 나라에서도 불상은 수난을 당하기 일쑤다. 팔과 다리 또는 몸이 훼손되는가 하면, 붉은 페인트 십자가 세례를 받기도 하고 심지어는 목이 잘려나가기도 한다. 이러한 어처구니 없는 일을 저지르는 사람들은 불교인들이 경배하는 성상을 이스라엘 민족이 섬긴 적이 있는 ‘금송아지’와 똑 같은 우상으로 여기고 있음에 틀림이 없다. 그리하여 ‘우상을 숭배하지 말라’는 그들의 종교적 가르침에 따라 이러한 만행을 서슴없이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불상은 우상인가? 그리고 불상에 대한 경배는 우상 숭배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불상은 우상이 아니다. 불상은 종교적 상징물일 뿐이다. 그러나 이 상징물인 불상을 진정한 부처님으로 생각한다면 이 불상은 우상이 되어 버린다. 유명한 단하 소불(丹霞燒佛)의 일화는 이러한 사실을 우리에게 감동적으로 깨닫게 해준다.


중국의 단하 천연(丹霞天然) 스님이 어느 겨울 날, 혜림사(慧林寺)에 묵었는데 너무 추웠다. 그러자 스님은 법당에 모셔져 있는 목불(木佛)을 보고, 밖으로 들고 나와 도끼로 쪼개어 불을 지폈다. 이것을 본 그 절의 원주 스님이 “무슨 이유로 부처님을 태우는 거요?”하고 꾸짖었다. 그러자 단하 스님은 천연덕스럽게 “석가모니 부처님의 몸은 화장하여 많은 사리가 나왔다기에, 나도 이 부처님을 화장하여 사리를 얻으려고 하는 것이오.”하고 답하였다. 원주 스님은 “나무로 만든 부처님에게서 무슨 사리가 나온단 말이오?”라고 하면서 몹시 화를 냈다. 단하 스님은 “사리가 나오지 않는다면 부처님이 아니라 나무토막일 뿐이니 뭐 그리 잘못된 일도 없지 않소?”라고 반문하였다고 한다.


또한 〈조주록(趙州錄)〉에는 “금부처(金佛)는 용광로를 건너지 못하고, 나무부처(木佛)는 불을 건너지 못하며, 진흙으로 만든 부처님(泥佛)은 물을 건너지 못한다”는 경책의 가르침이 있다. 또 청선사(淸禪寺)의 혜주(慧胄) 스님이 법당의 금불상을 쌀과 바꾸어 배고픈 사람들을 구제했다는 이야기도 유명하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불상을 우상이 아닌 종교적 상징물로 여겨온 불교의 전통을 잘 말해준다.


그러나 이러한 불상은 단순한 쇠붙이나 돌, 나무나 진흙 이상의 예술적 생명력 또는 종교적 생명력을 지니고 있음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신이 아니라 인간이었다. 인간이되, 다만 인간의 플러스적 잠재력을 온전히 계발하고 실현한 인간이었다. 부처님은 원만한 인격과 지혜를 소유하고, 끝없는 자비를 실천한 가장 인간다운 인간이었을 뿐이다. 2500여년 전의 역사적 부처님이 신이 아닐진대 이 부처님을 본뜬 불상이 신이 아님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이 불상 속에는 부처님의 그 위대한 정신깨달음이 종교적.예술적으로 표현되어 나타나 있다. 고독의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이러한 불상을 보고 ‘광휘 속의 부처님’(Buddha in der Glorie)라는 시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모든 중심 속의 중심, 핵심 중의 핵

굳게 닫힌 채 달콤함을 즐기는 편도

하늘의 모든 별들까지도 그대의 과육(果肉),

예배를 드리노라. 보세, 그대!

아무것도 그대에게 매달린 것이 없음을 느끼네

그대 과피(果皮)는 무한 속에 묻혀있고

거기서 과즙은 진하게 짜여지네

밖에서는 광채까지 번쩍이며 그를 비추인다.

저 위쪽은 온통 그대 태양들이

가득 가득 빛을 뿜으며 돌고 있으니

그대 속에서는 이미

태양들을 뛰어넘는 일쯤 시작된 모양이네.


독일의 실존철학자 칼 야스퍼스는 일본의 국보1호인 ‘금동반가사유상’을 보고 “이 불상은 지상에 있어서의 시간적인 속박을 초탈한 인간 존재의 가장 청정하고 원만하고 영원한 모습의 상징이라 할 수 있으며 우리들 인간이 지닌 마음의 영원한 평화와 이상을 남김없이 최고도로 표현하고 있다.”고 찬탄했다.


요컨대 불교인이란, 부처님을 으로 섬기는 사람들이 아니라,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 스스로 부처가 되고자 하는, 즉 진리에 눈뜨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불상은, 우상이 아니라, 이러한 불교인들을 완전한 깨달음으로 이끌기 위한 종교적 방편이요, 인류의 영원한 꿈과 이상이 살아 움직이는 예술적 상징물인 것이다.

 

박경준 (동국대 불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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