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사의 담론대론] 27. 교상판석(敎相判釋) ①
서역에서 마구 수입된 불경佛經의 체계적인 정리
천태지의, ‘오시팔교(五時八敎)’
교판 비판적 총정리
중국에서의 불교 전래는 바로 경전의 번역과 그 행보를 같이 한다고 할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중국에 불교는 서한(西漢) 말(末)에서 동한(東漢) 초(初)에 서역(西域)의 교통로가 열리며 본격적으로 수입되게 된다. 중국에서의 역경(譯經)은 어떠한 체계성이 없이 그대로 서역의 승려가 지니고 온 경전을 그대로 번역하고 있다.
그에 따라 인도에서와 같이 사상의 발전이라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이른바 대승과 소승의 경전, 부파불교와 대승의 논서 등이 차별이 없이 번역 소개되고 있다. 이러한 과정은 필연적으로 중국에서 ‘교상판석(敎相判釋)’이 나타나게 하였던 것이다.
왜냐하면 불교의 교의(敎義) 발전에 대한 전체적인 이해가 없는 상황에서는 대승과 소승 등의 경전과 논서에서 서로 모순되는 교설이 전개되는 듯 한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을 것이고, 그에 따라 부처님의 교설을 체계적으로 정리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불교학이 점차 성숙해 가는 남북조(南北朝) 시대에 ‘교상판석’은 치열하게 나타나기 시작된다. 이른바 “남삼북칠(南三北七), 의성백가(義成百家)”라고 칭하듯이 유명한 교상판석이 남방에 3가(家), 북방에 7가가 있으며, 세부적으로는 수많은 교판이 존재하였음을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상 중국불교의 대표적인 특징 가운데 하나인 종파(宗派)의 출현은 바로 이러한 교상판석의 논쟁과 대립으로부터 나타났다고 해도 틀림이 없는 것이다. 수많은 경론 가운데 무엇보다도 자신이 ‘으뜸[宗]’으로 파악한 것을 교판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에 배치함으로서 그 정통성을 담보하려고 하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남북조 초기에 교판을 불러일으킨 것은 바로 담무참(曇無讖; 385~433)이 역출한 <열반경(涅槃經)>이라고 할 수 있다. 그 14권에 소로부터 우유가 나오고, 우유로부터 요쿠르트, 연유, 치즈가 차례로 나오듯이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출세하시어 십이부경(十二部經)을 내었다고 하고, 다시 방등경(方等經), 반야바라밀(般若波羅密), 대열반(大涅槃) 등에 머무셨다는 내용으로부터 전체적인 교의에 대하여 그 체계를 나타내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 높고 낮음과 깊고 얕음을 드러낸 것으로 해석하여 교상판석의 전형(典型)으로 삼게 되었다. 이로부터 보다 본격적인 교판이 전개되어진다.
그 가운데 유명한 것만을 소개한다면, 우선 도생(道生)스님은 선정(善淨) 방편(方便) 진실(眞實) 무여(無余) 등의 4종으로 불법을 판석하여 돈오성불을 제창하였고, 혜관(慧觀)스님은 최초로 오시교판(五時敎判)을 제창하였으며, 법운(法雲)스님은 〈법화경(法華經)〉에 입각하여 사승교(四乘敎)를 세웠고, <열반경>을 역출한 담무참은 반(半)․만(滿)의 두 가지로서 교판하고 있다.
또한 지론종(地論宗)의 혜광(慧光)스님은 돈(頓)․점(漸)․원(圓)의 삼교(三敎)를 제창하고, 다시 그 종의 종지(宗旨)를 인연종(因緣宗) 가명종(假名宗) 광상종 상종(常宗)의 사종판(四宗判)을 세우고 있다.
이러한 수많은 교판을 전체적으로 종합하는 관점이 나타나는데, 그것은 바로 천태(天台) 지의(538~597)대사에 의하여 이루어진다. 그는 <법화현의(法華玄義)>10권에서 바로 ‘남삼북칠(南三北七)’을 언급하여 논파하고, ‘오시팔교(五時八敎)’를 제창한다.
이른바 ‘오시’는 석존의 설법시기를 화엄(華嚴) 녹원(鹿苑) 방등(方等) 반야(般若) 법화열반(法華涅槃)의 다섯으로 나누고, 교의에 대해서는 화의사교(化儀四敎; 頓․漸․秘密․不定)와 화법사교(化法四敎; 藏․通․別․圓)의 ‘팔교(八敎)’로 판석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오시팔교’는 당시에 유행하고 있었던 여러 교판을 비판적으로 종합정리하고 있는 면이 두드러진다.
김 진 무 (동국대 강사)
[출처 : 불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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