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음택의 발복의 원리에서 동기감응론과 혼령론이 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조상의 유체인 백(유골)이 생기를 받는 안온한 명당에 묻혀야 길한 기운이 후손에게 전달이 되고, 또 그중에는 마음과 정신이 통하는 조상숭배 사상에서 심기일체의 후손이나 양자에게 길기가 전해지리라 생각됩니다.
또 혼령은 지상의 본거지인 묘소를 명당에 쓰고
잘 보살펴 주는 양자는 물론 종단이나 문하 등에도 이를 마음이나 정신이 심기일체로 교통되는 원리로 발복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조선 후기 문인으로 북학의 선구자이고 실학자이며 과학자인 담헌 홍대용선생도 아래 의산문답에서 조상의 유해를 명당에 모신다고 하여 동기감응으로 후손이 발복될 리는 없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하여 이를 부정할수도 없다며 동기감응에 의한 발복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아래는 홍대용선생의 의산문답 내용입니다.
그가 지은 [의산문답]은 모든 사람이 진리라고 믿는 것을 풍자한 과학소설로 중국 동북쪽에 있는 "의무려산"을 배경으로 세속적인 허례허식과 공리공담만을 일삼는 "허자"의 물음에 실학적인 인물인 "실옹"이 답하는 대화체의 글로,
30년간 성리학을 익힌 "허자"가 자신의 학문을 자랑하다가 "의무려산"에서 "실옹"을 만나 자신이 그 동안 배운 학문이 헛된 것이었음을 풍자한 놀라운 작품이다.
[의산문답]에 나타난 洪犬容의 同氣感應論에 대한 견해는 다른 實學者들과 마찬가지로 매우 비판적이다. 그는 陰陽五行論에 대하여 음양이라는 氣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단지 햇볕의 강약을 표시한다고 하였는데,
“그러므로 오행의 數는 원래에 정해진 의론이 아닌데, 術家는 이를 祖宗으로 삼아 河圖와 洛書로써 억지로 맞추고 周易 象數를 파고 들어가 ···(中略)··· 끝내 그런 이치는 없는 것이다.”
라고 만물의 총괄적인 성분인 五行의 구성을 몇 가지로 단정할 수는 없다고 말하며 음양오행설을 부인하였는데, 이는 곧 신선 및 풍수설의 부정으로 이어졌다.
홍대용은 무덤의 길흉과 자손의 화복이 동일한 氣의 感應에 의한 것인지에 대해, 重刑을 당한 죄수의 고통이 그의 아들에게 옮겨졌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는데 하물며 그의 혼백에 대한 감응은 터무니없다..라고 하여 풍수설의 동기감응론에 대해서도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毉山問答』에 반대적인 내용도 서술하였는데,
“비록 그러하나 기술이란 허망하여 본래는 그럴 이치가 없는 것이지만, 그런 줄로 믿어 내려온 지 오래고 마음을 모으고 영을 합하면 無를 상상하여 有를 이루나니, 가끔 中人(지관)의 기교를 하늘이 따라준다."
"이에 ‘입이 여럿이면 쇠도 녹이고 비방이 쌓이면 뼈도 녹인다.’는 말이 이치가 있는 것이다.···(中略)···地術(풍수지리)에 있어서의 화와 복은 모두 그 이치가 마찬가지다.”
라고 하여, 정성을 다한 地官의 기교에 따른 화와 복에 대한 동기감응론을 부정하지 않아 긍정에 대한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