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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구사(화표)華表

작성자몽산(蒙山).송영환.010-2345-1234|작성시간14.05.12|조회수81 목록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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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성(羅城)

혈을 중심으로 사방 팔방에서 혈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산을 나성(羅城)이라고 한다. 혈에서 멀리 있는 산들은 그 모습이 마치 성곽을 두른 것처럼 둥글게 이어졌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나성은 하늘의 지존성(至尊星)을 수많은 별들이 둘러싸고 있는 형세와 같다하여 나성원국(羅城垣局) 또는 원국(垣局)이라고도 한다.
나성은 혈과 보국의 안정과 기운을 감싸고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나성원국은 혈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산들이 빈틈없이 겹겹이 있고, 국세는 넓고 광활하면서 평탄 원만한 것이 길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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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요성(曜星)

요성(曜星)이란 주룡의 기운이 왕성하여 혈을 결지하고도 그 기운이 남아 용신(龍身)이나 혈장(穴場) 혹은 명당 좌우에 창과 같이 뾰족하게 붙어있는 사격이다. 요성은 흙이나 바위로 되어 있으며 위치는 정해져 있지 않으므로 용이나 혈장, 명당, 수구, 청룡, 백호 등 어느 곳에서나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요성이 창이나 화살같이 뾰족 하게 첨리(尖利)하여 흉성(凶星)인 살성과 비슷하므로 구분이 쉽지 않다. 이를 구분하는 기준은 용과 혈에서 찾아야 한다.
용진혈적(龍眞穴的)한 곳에서는 날카롭다 하더라도 길격(吉格)인 요성이 되지만, 비혈지에서는 흉격(凶格)인 살성(殺星)이 된다. 이를 사람에 비유하면 장군이나 높은 관직에 있는 사람이 칼을 차고 다니면 보검이 되지만 강도나 깡패 같은 빈천한 사람이 칼을 가지고 다니면 흉기가 되어 흉악무도한 일에 상용하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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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북신(北辰)

북신(北辰)은 수구 한문 사이 물 가운데에 화표보다는 괴이하게 생긴 바위가 용, 거북, 잉어, 창고, 금궤 같은 형상을 하고 있는 기암괴석(奇巖怪石)을 말한다.
북신은 대부귀(大富貴)를 상징하는 것으로 용진혈적(龍盡穴的)한 혈의 수구에 부신이 있으면 왕후장상(王侯將相)이나 국부(國富)가 나와 만세영화지지(萬世榮華之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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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관성(官星)

관성(官星)은 안산이나 조산 뒷면에 붙어있는 사격으로 안산이나 조산의 기운을 혈 쪽으로 밀어주어 혈의 발복을 더 크게 하는 역할을 한다.
관성은 혈에서 보이지 않는 것이 대부분이나 간혹 보이는 것도 있다. 혈에서 안산 뒷면의 관성이 보이는 것을 현세관(現世官) 또는 현면관(現面官)이라 하여 매우 귀한 것이며, 속발하여 당대에 현관(顯官)이 기약된다.
관성은 크기나 모양에 상관없이 모두 길한 것이나 작은 것보다는 큰 것이, 보이지 않는 것보다는 보이는 것이 더욱 좋은 관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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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표(華表)


화표(華表)는 수구(水口) 한문( 門) 사이 물 가운데에 있는 바위로 유속을 느리게 하는 역할을 한다. 화표가 있어 수구가 관쇄 된다면 수구 안에는 진혈(眞穴)이 있다는 증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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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나성(羅星)

나성(羅星)은 수구의 수중(水中)에 돌이나 흙이 점차 퇴적하여 쌓여진 작은 섬으로 물의 직류나 급류를 막아 물의 흐름을 완만하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나성의 형태가 용이나 뱀, 거북, 잉어 등 영물의 형상을 하고 있으면 대귀(大貴)와 대부(大富)가 기약된다.
특히 나성이 머리를 위로하고 꼬리를 아래로 하여 마치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모양이면 등문(登門)의 상징이다.


 

수구사...또는 수구성

 

수구사는 반드시 득수처에 있는 게 아니고 나가는 물을 막아서는 파구처에 있는 걸 말하며..용호가 서로 교쇄되어 막아선 경우가 귀한 것이고, 다음으로 음양으로 된 토성의 日月한문...돌기둥으로 목체 또는 화체로 양 용호의 끝에 문설주가 된 화(빛날 화자)표한문..수구를 섬처럼 막아선 섬돌을 나성(두를라..막을 라자)이라 하고 돌을 상급..다음에 흙을 중급..모래를 하급으로 봄..외수구를 막아선 나성을 북신(北辰)..등이 있다..특히 보통은 문을 막았다고 하여 ..한문(막을 한..닫일 한)捍門이라고 쓰지만.. 특별히 나성이 있으면 이를 자물쇠가 채워져 잠겨진 것으로 보아 關鎖(빗장관.쇠사슬쇄)되었다고 하여 關門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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華表의 유래

 

중국에서 궁전이나 묘우(廟宇), 혹은 능묘 전방에 세운 한 쌍의 석주를 말함. 전설로는 상고(上古)의 성왕 요(堯)가 창건한「비방지목(誹訪之木)」에서 비롯된 것이라 함. 한대(漢代)에는 건물 네모퉁이에서 각각 밖으로 100보 거리에 토단을 쌓고, 그 위에 10자(약 3m) 남짓한 기둥을 세우고 이를 환표(桓表)라 불렀다 함.

 

환표는 목주였던 듯하며 상부에는 사방으로 널판지가 나오도록 되어 있었고 후대에는 다리위나 또는 중심부를 벗어난 기슭 양측에 세워진 예도 있음. 능묘 전방의 신도(神道) 양측에 세워져 제액(題額)에다 각명(刻銘)을 한 화표의 예가 남경 근교 남조(南朝)의 황제릉 앞에 석수(石獸)와 함께 남아 있다.

 

주신(柱身)에 홈파기(플루팅)로 장식하고 기둥머리에는 연꽃 위에 유익수(有翼獸)를 안치하는 등 서아시아의 영향이 주목됨. 근세에는 북경 천안문의 전방과 13릉에 세워진 예가 대표적. 어느것이나 모두 백대리석을 사용, 팔각주 주신(柱身)전체에 운룡(雲龍)을 부조하고, 위쪽에는 운기(雲氣)를 상징한 날개모양의 장식(⇒운기문)을 좌우로 돌출시키고, 기둥머리의 원좌상(圓座上)에는 돌짐승을 두어 기념비적인 성격을 지님.

 

천단(天壇)의 환구(圜丘)에서는 좌우의 방주(方柱)에 이중으로 들보를 가로지르게 한 화표의 변형도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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羅城(두를라..막을 라..그물 라)  (재성)

 

안팎의 이중으로 된 성곽의 바깥 성벽.

내용

자성(子城) 또는 내성(內城)·왕성(王城)·재성(在城:왕궁과 관아를 둘러싼 성)의 바깥에 있는 넓은 주거지까지 에워싼 이중의 성벽을 일컬으며, 나곽(羅郭)이라고도 한다.

 

특히 도성(都城)의 구조에서 왕궁과 관청을 두른 왕성이나 재성의 둘레에 있는 일반주거지를 포용하여 크게 쌓은 성을 나타내는 용어로 흔히 쓴다.

 

삼국시대 초기에는 평지의 왕성과 그 배후에 있는 산성이 조(組)를 이루고 있는 도성이 일반적이었다. 고구려의 처음 도읍지와 평양의 안학궁성(安鶴宮城)·대성산성(大城山城), 백제의 한성(漢城)과 한산성(漢山城)·북한성(北漢城)과 북한산성(北漢山城), 신라의 월성(月城)과 명활산성(明活山城) 등이 모두 평지의 왕성과 배후의 산성으로 분리되어 있었던 상황을 보여준다.

 

6세기경에 이르러서야 대략 나성을 갖춘 도성제가 성립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고구려의 평양성이 산지의 산성과 이어진 평지의 넓은 시가지를 포함한 나성으로 이루어진 이중구조로 바뀌었고, 백제의 웅진(熊津)·사비(泗沘)의 두 도성도 산 위의 성과 평야를 에워싼 나성이 결합되었던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신라의 경우는 나성이 축조되지 않고 경주평야주변의 동서남북 산 위에 산성을 쌓아 나성의 기능을 대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중국에서는 당나라 때부터 나성이라는 말이 사용되어 큰 성을 나성, 나성 안쪽의 작은 성을 자성, 나성 바깥의 3중 성벽을 아성(牙城)이라 하였다.

 

우리 나라의 경우는 삼국시대의 도성에서 나성의 용어가 이미 사용된 듯하며, 자성에 해당하는 것은 재성으로 불렀다. 도성이 아닌 요동지방의 고구려 지방도시인 남소성(南蘇城) 등지도 나성을 갖추었던 기록이 남아 있다.

 

고구려·백제식의 도성제도인 왕성·나성의 제도는 고려에도 이어졌다. 고려의 개경은 처음 왕성뿐이었으나, 거란족의 침입시기인 11세기 초기에 나성이 축조되었다. 즉, 1029년(현종 20)에 20년의 세월이 걸린 축조공사 끝에 궁궐과 일부 관청을 둘러싼 당초의 왕성 바깥으로 민가지역과 얼마간의 전원(田園)까지 포함한 나성이 완성되었다.

 

그 규모는 둘레가 2만9700보(步)로 나각(羅閣)이 1만3천칸이며, 대문 4개, 중문 8개, 작은문 13개로서 인부 30만4400여명이 동원되었다고도 하고, 또는 인부 23만8938명과 공장(工匠) 8,450명이 동원되어 둘레 1만660보, 성벽높이 27척(尺), 성벽두께 12척, 낭옥(廊屋) 491칸의 규모라고도 하였다.

 

이러한 나성제도는 조선시대에도 이어졌으나 한양도성은 나성적 성격의 성벽은 하나뿐이고 내부에 따로 내성을 쌓지 않았으므로, 시가지를 전부 에워싸고 있으나 나성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성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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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신(北辰)의 분석

 

북신(北辰)은 북진(北辰)과 동일한 한자이지만, 북진과 북신으로 발음합니다.
북진은 북극성으로 별을 상징하며, 북신은 수구의 물속에 위치하는 바위등을 일컬을 때 북신이라 합니다.

 

특히 외수구앞을 막아서는 귀봉사로 내수구 라성에 비해 당연 오랜세월 깎이고 다듬어져 바위가 아니면 견뎌내고 남지 못햇을 것이니...북신은 당연 바위같은 단단한 돌로 이루어 질수 밖에 없었겠지요>..


북신이 있으면 왕후이상의 대지가 된다 하여 극귀성(極貴星)인 북진과 동일한 글자를 사용하는 것 같습니다. (왕후장상 []지지는  제후(), 장수() 재상() 아울러 이르는 말로 북신이 있는 경우는 장상은 제외한 그 이상의 왕후지지로 제후이상이 나온다는 의미임.

 

수구의 흐르는 물 가운데에 우뚝 솟은 것으로 흐르는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형상을 띄고 있습니다. (멀리 외수구에 웅장한 북신이 보이는 경우 북진대제형이라 하고...북에서 임금이 들어오는 명당)


신 역시, 한문, 화표, 나성과 함께 수구 관쇄의 의미가 있으며 혈장에서 물이 바로 빠져 나가지 못하게 하는 역할이라 할 수 있습니다.

 

북신이 있으면 그 국안에 큰 혈이 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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