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두에선 각자 자신을 찾기 위해 살아간다는 말을 한다.
그리고 주인공이 두 세계에서 혼란을 겪으며 자신만의 길을 떠나는 것으로 한 파트가 끝난다.
부모가 심은 자아상과 사회에서 직접 겪고 만들어진 자아상 간에 충돌을 묘사할 때 사실적이면서 아직 10살의 순수함이 배여있는 것까지도 좋았다.
작가가 두 세계를 표현할 때 나는 스스로를 쭉 돌아볼 수 밖에 없었다.
가정부 리나가 주인공의 가족과 찬송가를 부를 때의 모습과 푸줏간에서 말다툼을 할 때의 모습이 다르듯이,
나도 예배당에서의 모습과 일터에서의 모습과 가정에서의 모습이 다 달랐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장소마다 페르소나를 바꿔 끼우는 행위를 너무나 익숙하게 해왔다.
그러나 예수님을 영접하고나서 나는
그 현란하고 숨 쉬듯 쉬웠던 감각이 한순간 지겨워졌다.
여러 개의 페르소나를 하나님의 형상인 단일의 ‘나’로 합치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나는 이 과정을 그리스도인이 자아를 찾는 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결과를 얻기 위한다면 과정이 필요하다.
완벽을 갖추기 위해선 실수를 마주해야 한다.
인간의 한 세계가 다져지기 위해선 고통이 따라온다.
신앙에서도 마찬가지다.
모태신앙인이라면 익숙했던 것들을 깨고 진짜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그간의 상식과 새삼스러운 질문에 직면해야 한다.
새신자라면 그간 세상에서 배워오고 사회문화 속에 세뇌된 것들과 진리를 비교해가며 무너뜨리고 다시 세우는 과정을 해내야 한다.
신앙에 성장을 마주할 때 심한 고통이 찾아온다.
유혹의 얼굴로, 무감각의 얼굴로, 수치의 얼굴로.
이것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시험인 듯 하다.
여기서 무너진다면 다시 그 너머로 나아갈 때까지의 훈련을 반복해야 할 것.
힘이 들어도 뚫고 하나님께 나아갈 때 ‘하나님의 자녀’라는 자아상이 더 뚜렷해짐을 느껴볼 것.
나는 지금 확실히 성장통이다.
다음(깊어짐)을 내게 선물해주시려고 대기 중이신 걸 안다.
받고 싶은데 힘이 부쳐서 받고 싶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이 책에선 말한다. “허나 자신이 지닌 의미에 대한 해명은 오직, 자기 자신에게 달려 있을 뿐이다.”
이걸 그대로 받아들이진 않지만, 내가 세상에게 친구에게 가족에게 하나님께 “저는 이 세상과 달라요!” 주장하는 것에 대한 근거는 오직 나에게 달려있다는 것은 받아들여진다.
하나님께 기도로 용기와 지혜를 구할 때 … 동료가 뒷담하며 동의를 요구하지만 묵묵히 신념을 드러낼 때 … 부모님을 존경하고 순종할 때 …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다린다고 고백할 때 …
마음과 말과 행동이 동일한 때가 나를 나로 만든다.
그것만이 내 주장에 대한 근거가 되어준다.
책을 읽으면서 다시 마음이 잡혀졌고, 입으로 시인하며 기도했으며, 천천히 조금씩 하나님께 순종하려 하고 있다.
오늘이 힘겨운 나에게 이렇게도 격려하시고 새 마음 주신 주님께 모든 영광을 올려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