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속에서 데미안은 싱클레어에게 마치 어둠 속에서 나타난 구원자 같은 존재로 그려진다.
책을 읽으며 문득, 나에게도 현실에서 바로 곁에 머물며 삶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방향을 짚어줄 데미안 같은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늘 우리와 함께하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이 계시지만, 때로는 눈앞에서 온기를 나누며 대화할 수 있는 인간적인 존재가 간절하게 느껴질 때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책을 덮고 나니 또 다른 질문이 꼬리를 물었다. '만약 정말 내 삶에 데미안 같은 존재가 나타난다면, 나는 마냥 반갑고 기쁘기만 할까?'
오히려 조금은 두려울 것 같았다. 소설 속 데미안이 '카인의 표식'을 알아보고 싱클레어의 내면을 꿰뚫어 보았듯, 사람의 깊은 속내를 너무 잘 들여다보는 존재 앞에서는 편안함보다 압도감을 먼저 느끼게 될 것 같다. 내가 꽁꽁 숨기고 싶은 약점까지 모두 들켜버릴 것 같은 사람 앞에서는 위축되기 마련이니까. 그러다 보면 나도 모르게 그 사람의 생각과 판단에 전적으로 의지하게 되고, 정작 내 안에 있는 강점과 가능성은 제대로 펼치지 못한 채 그의 그늘 아래 안주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신앙적인 측면에서 경계심이 생겼다. 눈앞에 강력하고 매력적인 멘토가 등장하면, 어느 순간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눈에 보이는 사람의 말과 판단을 더 신뢰하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매 순간 믿음으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보다, 당장 눈앞에 있는 대상을 붙드는 것이 인간에게는 훨씬 쉽고 유혹적이기 때문이다.
사실 데미안은 싱클레어가 먼저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음에도 그의 곁에 다가와 손을 내민다. 그 모습이 참 매력적으로 다가오지만, 한편으로는 그렇기에 사람을 더 깊이 매료시키고 종속시키는 힘이 되기도 한다. 결국 <데미안>을 읽으며 '나도 저런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바람을 넘어,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기대고 의지하고 싶어 하는 내 안의 연약함을 함께 마주하게 되었다.
좋은 동역자와 믿음의 멘토는 분명 삶에 필요하다. 하지만 그 어떤 훌륭한 사람도 하나님이 계셔야 할 자리를 대신할 수는 없다. 사람은 곁에서 길을 함께 걸어 줄 동반자일 뿐, 결코 구원자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내가 종극에 붙들어야 할 분은 내 삶의 진짜 인도자이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다시 한번 마음 깊이 새기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