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궤1
2007.12.26 16:52 | 성막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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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궤 1
출25:10-22
오늘은 법궤에 대해서 말씀을 드립니다. 법궤는 세계에서 가장 거룩한 곳인 지성소에 있는 가장 거룩한 성물입니다. 지성소는 너무도 거룩해서 제사장은 들어오지 못하고 대제사장도 대 절기 때만 피를 가지고 들어올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법궤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일컫는 귀하고 귀하며 거룩하고 거룩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늘 이렇게 말합니다. “세계의 중심은 이스라엘, 이스라엘의 중심은 예루살렘, 예루살렘의 중심은 성전, 성전의 중심은 지서소, 지성소의 중심은 법궤, 법궤의 중심은 십계명이라” 그렇다면 십계명의 중심은 무엇이겠습니까? 사랑이요 사랑이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법궤 이야기도 결국은 예수 그리스도 이야기입니다.
1. 법궤의 모양은 어떠합니까?
10절 “그들은 조각목으로 궤를 짓되 장이 이 규빗 반, 광이 일 규빗 반, 고가 일 규빗 반이 되게 하고”
출 25장 10-22 전체가 법궤의 모양에 대한 기록인데 네모난 법궤 상자와 그 위에 두 그룹 천사가 날개를 펴고 마주보고 있는 모양입니다. 구체적으로 법궤는 가로 125cm 세로 75cm의 크기입니다. 조각목으로 만들었고 모두 정금으로 쌌습니다. 윗 가로는 금테가 둘러져 있고 운반하도록 금고리 넷이 있습니다. 법궤를 나르는 금채도 조각목에 금을 입힌 것입니다. 법궤 위 뚜껑 부분이 속죄소입니다. 그 위에 황금으로 만든 구룹천사가 마주 보고 있고 그들이 편 날개는 속죄소를 덮고 있습니다. 이 조각목과 금으로 된 법궤는 인성과 신성을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2. 법궤에는 여러 이름이 있습니다.
법궤(fp16:2), 궤(출25:10), 증거궤(출26:33), 하나님의 궤(삼상3:3), 여호와의 궤(삼상6:1), 거룩한 궤(대하35:3), 권능의 궤(시132:8), 이스라엘 신의 궤(삼상5:7), 여호와의 언약궤(민10:33), 나무궤(신10:1) 이 명칭을 통해서 법궤가 어떤 것인지 짐작하게 합니다. 이 궤는 법이기도 하고, 증거이기도 하고, 하나님의 이름이기도 하고, 거룩이기도 하고, 권능이기도 하고, 언약이기도 하는 이 궤는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율법 해석서인 미드라쉬에는 이런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법궤를 나를 때는 전혀 무게를 느끼지 않았다. 속죄소 위의 두 천사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기뻐하실 때는 마주 보다가 노하실 때는 얼굴을 돌렸다. 광야 40년 동안 맨 앞에 이스라엘을 인도하는 법궤를 하나 더 만들었다. 그랬더니 이 법궤가 앞장서서 갈 때 초음파가 나와서 독사나 전갈 등을 다 죽여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대제사장이 대 속죄일에 지성소에 들어가 활동할 때는 갑자기 공간이 넓어졌다”는 등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는 참고만 할 일이지 그대로 믿을 이야기는 아닙니다.
3. 그럼 법궤 안에는 무엇이 들어 있는가?
히9:3-4 “또 둘째 휘장 뒤에 있는 장막을 지성소라 일컫나니 금향로와 사면을 금으로 싼 언약궤가 있고 그 안에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언약의 비석들이 있고”
히브리서만 참고한다면 법궤에는 세 가지가 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학자들은 이 세 사지가 들어 있는 기간은 불과 몇 십 년일 뿐이고 지속적으로 들어 있던 것은 언약의 비석인 십계명뿐이라고 합니다.
성경이 기록들을 보면 십계명의 위치가 나와 있습니다. 출25:16에 “내가 네게 줄 증거판을 궤 속에 줄지며”, 그리고 싹난 아론의 지팡이의 위치에 대해서는 민17:4에 “그 지팡이를 회막 안에서 내가 너희와 만나는 곳인 증거궤 앞에 두라” 했습니다. 그럼 만나 항아리는 어디에 두었을까요? 출16:33-34에 “또 아론에게 이르되 항아리를 가져다가 그 속에 만나 한 오멜을 담아 여호와 앞에 두어 너희 대대로 간수하라 아론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그것을 증거판 앞에 두어 간수하게 하였고” 여기 분명히 증거궤 앞에 두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율법책 역시 신31:26에 “이 율법책을 가져다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 곁에 두어 너희에게 증거가 되게 하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기자가 말씀한 법궤 안에 만나 항아리, 아론의 지팡이와, 십계명은 어느 기간 동안만 있었습니다. 언제 사라졌는지 알 수 없지만 왕상8:9에 보면 궤 안에는 두 돌판 외에 아무것도 없으니 이것은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후 여호와께서 저희와 언약을 세우실 때에 모세가 호렙에서 그 안에 넣은 것이더라” 즉 솔로몬이 성전을 짓고 법궤를 성전에 두기 위하여 가져와서 법궤를 열어 보았더니 거기에는 두 돌판만 남아 있었습니다. 여기서 살펴볼 수 있는 교훈은 인본주의는 사라지고 신본주의만이 남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넣지 않는 것은 반드시 사라지게 됩니다.
4. 법궤의 특징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1) 법궤는 가장 중요한 곳입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이 계신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레16:2에 “네 형 아론에게 이르라 성소의 장 안 법궤 위 속죄소 앞에 무시로 들어오지 말아서 사망을 면하라 내가 구름 가운데서 속죄소 위에 나타남이니라”했습니다.
(2) 법궤는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곳입니다.
민9:15-16에 “성막을 세운 날에 구름이 성막 곧 증거막을 덮었고 저녁이 되면 성막 위에 불 모양 같은 것이 나타나서 아침까지 이르렀으되 항상 그러하여 낮에는 구름이 그것을 덮었고 밤이면 불 모양이 있었는데” 여기 불기둥 구름기둥은 하나님 임재의 상징이었습니다.
(3) 그 곳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출25:22에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즉 예수 믿는 것이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믿기 전에는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4) 그곳에서 하나님께서 계시를 주셨습니다.
출25:22에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
제사장에는 세 가지가 있었습니다. 레위지파의 일반 제사장입니다. 다음은 아론 계통의 대제사장입니다. 다음은 모세와 같은 특별제사장입니다. 성막 시대에 모세는 지성소에 자유자제로 드나들어 하나님을 만나고 그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이제 우리 성도들은 모세와 같이 언제든지 하나님을 만날 수 있으니 얼마나 큰 특권입니까?
(5) 항상 법궤를 중심하여 행하였습니다.
민10:21에 “고핫인은 성물을 메고 진행하였고 그들이 이르기 전에 성막을 세웠으며” 이렇게 미리서 성막 세워 항상 법궤를 모시는데 총력을 기울였습니다. 법궤가 성막의 가장 중요한 중심이기 때문입니다. 여리고 성을 무너뜨릴 때도 법궤를 중심한 군대가 앞장서 돌았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야 합니다.
(6) 법궤가 가는 곳마다 승리가 있었습니다.
민10:35-36에 “궤가 떠날 때에는 모세가 가로되 여호와여 일어나사 주의 대적들을 흩으시고 주를 미워하는 자로 주의 앞에서 도망하게 하소서 하였고 궤가 쉴 때에는 가로되 여호와여 이스라엘 천만인에게로 돌아오소서 하였더라” 했습니다. 이처럼 성령 따라 살면 가는 곳마다 승리가 있습니다.
(7) 법궤는 거룩한 것이었습니다.
대상13:9에 “기돈의 타작마당에 이르러서는 소들이 뛰므로 웃사가 손을 펴서 궤를 붙들었더니 웃사가 손을 펴서 궤를 붙듦을 인하여 여호와께서 진노하사 치시매 웃사가 거기 하나님 앞에서 죽으니라”
다윗이 법궤 찾기 운동에는 성공했지만 법궤운반에는 실패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법궤는 거룩해서 제사장이 어께에 메고 날라야 하는데 블레셋 이방인들이 하는 대로 수레에 실어 날랐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소가 뛴 것입니다. 신앙생활이나 하나님의 일을 하나님의 방법대로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안 된다는 교훈입니다. 그리고 법궤는 거룩해서 대제사장도 피가 없이는 법궤 앞에 나가지 못합니다.
(8) 법궤 앞은 속죄와 은혜와 사랑의 자리였습니다.
시61:4에 “내가 주의 날개 밑에 피하리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그 자리를 은혜의 보좌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 앞에 나아가면 누구든지 속죄함을 받고 긍휼을 받으며 은혜를 받고 축복을 받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법궤는 곧 예수 그리스도의 상징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에게 성부 성령 하나님이 임재해 계십니다. 예수님이 계신 곳에 구원이 있고 승리가 있고 축복과 안위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법궤로 말미암아 복을 받은 것처럼 예수 잘 믿어 하나님께 복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법궤2
2007.12.26 16:53 | 성막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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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궤 2
출25:10-22
이 시간에도 지난 시간에 이어 법궤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누가 법궤를 아무리 잘 설명한다 할지라도 결론에 있어서는 법궤의 의미는 한 마디로 예수님이시란 점입니다.
왜 그런지 여러 면에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모든 것의 중심면에서 그렇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세계의 중심은 이스라엘, 이스라엘의 중심은 예루살렘, 예루살렘의 중심은 성전, 성전의 중심은 지성소, 지성소의 중심은 법궤, 법궤라” 고 했습니다. 그리고 법궤가 언제나 이스라엘 진의 중앙에 있었던 것처럼 예수님께서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18:20)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계신 곳이 세계의 중심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이 세계의 중심이요 우리 신앙의 중심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 잘 믿는 성도가 세계 중심에 서 있는 것입니다.
2. 중보자라는 면에서 그렇습니다.
구약시대 사람들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어디로 왔느냐? 법궤 앞으로 왔습니다. 수7:6을 보면 이스라엘이 아이성 싸움에 지고 법궤 앞에 엎드려 물었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한 분밖에 없는 중보자이십니다.
3. 비밀이란 점에서 그렇습니다.
법궤는 숨겨져 있던 하나님의 비밀이었으나 계시로 모세에게 나타났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그렇습니다. 요일1:2에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거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자니라” 했습니다.
4. 성령으로 되어진 점에 있어서도 그렇습니다.
출37:1을 보면 브살렐이 조각목으로 궤를 만들었습니다. 유대인의 미드라쉬를 참고하면 그 때 브살렐이 13살이었다고 합니다. 브살렐은 성령에 사로잡혀 신비한 손길로 법궤를 만들었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도 신비롭게도 여자의 몸에서 성령으로 탄생했습니다(마1:20). 그러므로 예수님은 원죄가 없으신 분이십니다.
5. 역사적인 면에서 보면 또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집의 변천사를 보면 돌단에서 성막으로, 성막에서 장막으로, 장막에서 성전으로, 성전에서 교회로 발전했습니다. 그 때마다 번제단이나 물두멍이나 떡상이나 등대나 이런 성물들을 다시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법궤만은 항상 그 법궤만을 사용하였습니다. 지금도 유대인들이 새 성전을 짓기 위하여 성물들을 다시 만들어 두었지만 법궤만은 만들지 않았습니다.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주실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시지 않으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법궤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6. 증거적인 면에서도 그렇습니다.
출26:34에 법궤를 증거궤라고 했고, 출25:22을 보면 그곳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예수를 통해서 말씀하셨고 성령의 여러 표적으로 하나님을 증거하셨습니다.
7. 성령으로 된 면도 그렇습니다.
출30:22-26을 보면 거룩한 관유를 만들어 증거궤에 발랐습니다. 이미 법궤가 만들어졌지만 사용하기 전에 다시 거룩하게 한 것과 같이 마3:16을 보면 예수님께서도 메시야로 일하시기 전에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실 때 성령이 임했습니다.
8. 가시적인 면에 있어서도 법궤는 사람의 눈에 띠지 않았습니다.
민4:44-45을 보면 법궤를 운반할 때에도 대제사장들이 챙기고 보자기에 싸고 싸서 레위 제사장들도 볼 수도 없었고 무게만 느꼈습니다. 그러니까 특수한 사람들만 보았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도 말구유에 탄생하실 때 주님을 사모했던 특수한 사람들만 볼 수 있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하나님께서 눈 열어 주신 사람들만 볼 수 있었습니다. 지금 이 시간 이 자리에 예수님께서 함께 하시지만 믿어지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믿어지는 사람들은 영의 눈으로 보이기 때문이요 그렇지 않는 사람들은 아직 영적 조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9. 능력도 마찬가지입니다.
법궤는 이스라엘의 능력이었습니다. 시132:8에 “주의 권능의 궤”라고 했고 법궤가 가는 곳마다 기적이 나타났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이 가시는 곳마다 하나님의 영광의 기적이 나타났습니다. 법궤가 가는 곳에 강도 갈라졌듯이 예수님께서 죄악으로 막힌 담을 가르셨습니다.
10. 법궤에 담겨진 내용면에도 예수님의 상징입니다.
법궤 안에는 만나와 십계명과 아론의 싹난 지팡이가 들어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하늘의 만나이시고, 십계명처럼 십자가의 도 우리의 길이 되시고, 싹 난 아론의 지팡이처럼 부활이 되십니다.
11. 영광이 충만하신 면에서도 예수님의 상징입니다.
법궤에는 언제나 영광의 구름이 머물러 있었습니다. 왕상8:10에 여호와의 전에 구름이 충만하여 제사장이 그 구름으로 인하여 능히 서서 섬기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변화산상에서 계실 때 홀연히 빛난 구름이 덮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승천하실 때 구름을 타시고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12. 예루살렘 입성에도 그렇습니다.
다윗이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올 때 다윗도 춤을 추고 많은 사람들이 나팔을 불고 즐거워했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도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호산나 찬송하며 환영하였습니다.
13. 법궤를 우습게 안 사람들이 저주를 받았습니다.
삼하6:20을 보면 다윗이 법궤를 보고 너무 기뻐 춤을 추는데 사울의 딸 미갈이 다윗을 비웃다가 죽는 날까지 자식이 없었습니다. 장차 왕비될 사람이 왕자를 낳지 못한다는 얼마나 비극입니까? 이처럼 하나님을 적극적으로 섬기지 않고 체면 차림으로만 섬기면 영적권세가 나타나지 않게 됩니다.
15. 다윗의 피난 역사를 봅시다.
다윗이 압살롬에게 배척을 받고 기드론 시내로 법궤를 가지고 피한 적이 있었는데(삼하15:23-25) 요18:1을 보면 예수님도 핍박을 받아 기드론 시내를 건너 피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16. 법궤가 이스라엘을 인도하는 모습을 봅시다.
법궤가 이스라엘 진영의 3일 길을 먼저 가서 쉴 곳을 찾았듯(민10:33) 예수님도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3일 만에 다시 부활하셨서 우리들을 참 안식과 승리를 주셨습니다.
17. 법궤가 가는 곳마다 승리가 있었습니다.
민10:35에 “궤가 떠날 때에 모세가 가로되 여호와여 일어나사 주의 대적을 흩으시고 주를 미워하는 자로 주의 앞에서 도망하게 하소서” 했는데 주님이 가시는 곳마다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귀신이 떠나갔고 병이 떠나가고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그 뿐입니까? 삼상 5장을 보면 법궤 앞에서 다곤 우상도 부서진 것처럼 예수의 영이 임하면 육에 속한 것이 무너지게 됩니다.
18. 축복과 저주가 된 점에서 그렇습니다.
법궤는 이스라엘에게는 축복이지만 삼상 4장 이하를 보면 블레셋에게는 저주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예수는 믿는 자에게는 영생 불신자에게는 사망입니다(딤전2:5). 혹은 법궤가 축복의 산인 그리심산과 저주의 산인 에발산 사이에 놓여진 적이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마지막 날 예수님께서는 양과 염소를 가르실 것입니다.
19. 알파와 오메가가 되신다는 점에 같습니다.
출25:10-22을 보면 하나님께서 맨 먼저 계시하신 성물이 법궤였고 왕상8:9에 보면 성전 건축 후 마지막으로 들여 놓은 것이 법궤였듯이 예수님은 알파와 오메가 처음과 나중이 되십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천지 창조에서 시작하여 구속과 섭리와 그리고 재림과 신천신지와 영원한 세상가지 예수님께서 이루어가십니다. 이와 같이 법궤는 무엇으로 보나 그리스도의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법궤는 실상이신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이 땅에 있어야 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이것은 예레미야 선지자가 예언한 말씀입니다. 렘3:16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가 이 땅에서 번성하여 많아질 때에는 사람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다시는 말하지 아니할 것이요, 생각지 아니할 것이요, 기억지 아니할 것이요, 찾지 아니할 것이요, 만들지 아니할 것이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확실히 일기 위하여 성경을 연구할 뿐이지 법궤는 숭배의 대상도 보존의 대상도 찾아야 할 대상도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나중에 천상에서 계11:19에 나타난 법궤를 다시 보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법궤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법궤를 귀히 여겼던 것처럼 예수님을 잘 믿으십시다. 그래서 이스라엘과 오벧에돔이 받았던 그 귀한 복을 충만히 누리시는 성도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제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