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최초의 철갑군은 누구일까?
최초로 철갑옷으로 무장한 군인을 가지고 있던 나라는 가야입니다.
그러나 최초로 철갑 발전시켜 기병전술에 접목하여 정복에 사용 성공한 나라는 고구려입니다.
다음은 그러한 철갑의 변천사를 모아본 글입니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 무기,장비의 발달은 지금까지 함께해오고 있습니다. 철갑(방호구)의 발달은 무기, 전술의 발달과 비례 합니다.
동서양 전쟁사에 있어서 장비,무기,전술을 연구하다보면 동시대의 서양과 동양은 상당히 큰 차이점을 느낄 수 있습니다.
동양은 발전이 빠른데 서양은 느렸습니다. 즉 서양이 후진국들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게 차이가 확연했던 결정적 이유는 바로 제련기술 때문이라고 판단됩니다. 그래서 검이나 창등의 무기에 있어서 형태는 갖지만 날을 세우면 얼마가지 않아 날이 상해버려서 동양의 무기와는 그 강도면에서 너무 차이가 많이 났었습니다.
여러분! 고구려시대때 구려군의 철제무기들은 지금의 강철수준이었다는 놀라운 사실을 아시죠?
때문에 서양의 무기들은 차라리 날이 없는 형태의 뭉퉁하고 무게를 늘리는 방향으로 만들 어지게 됩니다. 발달했습니다. 중형무기는 기병의 기동활동에 지장을 주기때문에 쇠퇴함
보시면 아시겠지만, 위 철갑은 고려시대의 찰갑형태도. 이씨조선시대의 두정갑도 아닌 판금형태의 갑옷입니다. 서양은 체인메일 등에서 판금형태로 나아왔다면 우리나라는 오히려 판금형태에서 스케일메일(찰갑 등) 형태로 바뀌어왔다는사실을 아실수 있을텐데..서양의 갑옷에 비해 무려 약1000년이나 앞선 철기문화,군사문화 형태라고 볼수있는 사례로써 가야-신라의 갑옷으로써 초기의 철갑입니다. 물론, 가야에서 세계 최초로 가장먼저 철갑무장을 했었습니다. 서양의 중무장(철갑)기병은 고구려군의 유럽원정(흉노-훈.아태로)으로 철기병이 전래되어 중세 기사단 문화가 형성된것입니다. 거의 신화적인 방어력을 갖고있던 당시로써는 가공할만한 전투장비인데 구려인들은 이러한 찰갑을 말에도 사용하여 고구려의 철기군단은 종횡무진이었다.
미늘갑옷의 일종임. 두터운 방호복 위에 구려식으로 철편을 이어붙인 형태입니다. 두석이란 가구 등에 장식하던 황동편으로 그것을 중국식으로 방호복 위에 덧붙였는데 간격이 넓어 방어개념이며, 방어도도 취약했을것으로 보입니다.
이조시대는 사농공상의 천시정책으로 고려의 제련 고급기술자들이나 광산기술자들이 모두 일본으로 건너갔거나 직업을 바꾸었기때문에 철이 부족하여 갑옷도 실제 방호구가 되는 철편 은 듬성듬성 이루어져있슴을 볼수있습니다.그런 취약성때문에 속옷을 두껍게 입고 위에 걸쳐 입는 형태의 갑옷이 되고 맙니다. 군인은 민첩한 활동을 근본으로 하는데 저렇게 되면 전투력 은 거의 없다고 봐야죠. 일례로 병자호란때, 고려후손인 청나라 팔기군 4명이 이조보병 500여 명과 싸워 전멸하였다고하니 헐.... 중세 몽고기병 1만으로 유럽연합40만을 유린햇다는 기록과 같은 경우죠^^ 철기문화가 발달되어있지 않았다는 증거죠. 당대의 문화나 기술은 반드시 전쟁에서 나타나는 법인에 물론, 상대인 이조군대도 철기군이 없었으니 특별히 필요가 없었다고 판단했을수도 있었던듯 합니다.
이하는 화하족들의 중국갑옷입니다. 고려문화하고는 다르죠. 중갑이 아니라 소갑으로써 무기,전쟁쪽에 있어서 덜 발달되어있었슴을 느낄 수 있습니다.
화하족이 나라였던 송국때의 그림 입니다.철편이 없습니다.
제련기술이 낙후되다보니 강철을 만드는 방법을 몰랐고, 가볍기위해 아에 철을 제거하고 가죽과 모직으로만 만든 군복입니다.
최영대장군의 명나라 정벌군이 이성계에 의해 회군되지 않고 예정대로 원정갔더라면 명나라는 고려군에 의해 충분히 정복될수있었다는 증명자료 입니다.
윗 그림으로 볼때 우리민족의 두정갑, 두석린갑옷과 약간 비슷해보이면서도 조금 다른 형태 인데, 우리나라의 전통갑옷은 활동을 중시하여 투피스의 형태였고 철편을 총총히 박아 무게에 있어서도 두꺼운 가죽갑옷보다 절반정도 가볍고, 방어강도는 10배이상 강했지만, 이조시대들 어 무인을 천시하던 정책으로 원피스인 두루마기 형태로 군복을 만들어 형편없어졌는데, 이는 무가 흥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한 이씨조선시대의 사농공상 천시 정책때문이었습니다.
중요한점은 최초의 철갑옷은 한민족의 국가였다는 사실이고 특히 고구려의 철기군은 비늘모양의 갑옷 으로 사람은 물론, 말과 마차(당시전차)를 무장하여 상상을 초월하는 전투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 을 다시한번 전해드립니다.
유교도 예 라하여 번거롭게하여 사람을 지치게 함으로써 상대적으로 왕권을 유지하는 수법으 로 사용된것임. 언어도 어렵게 만들어 사용하게하여 에너지를 자체적으로 소진하게하였는데 이조시대의 통치 방법이었슴. 도움: 운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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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장안의 단군릉 |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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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문희주 작성시간 06.08.02 재미있군요. 최초 갑옷하면 자오지환웅(치우)의 동두철액 이야기가 나올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고 구체적 유물을 가지고 이야기하네요. 동북아의 흉노(훈=헝가리), 터키(선비족의 일파, 돌궐족?)족이 서남아시아에서 강성한 제국 건설한 것, 몽고의 기마병, 싸워서 너무 쉽게 이겼죠? 우리와 관계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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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문희주 작성시간 06.08.02 최근 DNA검사 결과 한국인의 유전자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은 일본? 뜻밖에 고구려 후손일 만주쪽 사람들이 가까울 줄 알았는데, 치앙마이 소수족(라후족)의 유전자와 비교하면 어떨지? 우리의 중심이 동북아의 기마민족 맞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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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문희주 작성시간 06.08.02 최근 과학의 발달과 유전자 검사가 좀더 광범위하게 우리 민족의 친족관계에 있는 민족들을 검사해 봤으면 좋겠고, 그리고 최근세사에서 우리의 유전자가 일본으로 너무 많이 흘러갔을까요? 좀더 연구가 있었으면 해요. 동북아의 민족들이 동북아를 떠나 타 민족들을 만나면 파죽의 승리를 했다고 봐야할 텐데 글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