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온글] 장구의 고향은 인도
특 집/실크로드를 통해 한반도에 들어온 문화
불교와 함께 들어온 인도 음악
전인평(중앙대학교 음악대학 교수)
인도에서 돌아와 문헌을 뒤지다보니 장구가 인도에서 기원하였다는 기록이 나왔다. 12세기 중국 음악가 진양(陳陽)이 쓴 ≪악서(樂書)≫라는 음악이론서에는 장구와 흡사한 중동고(中銅鼓)를 그려놓고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중동고는 남만(南蠻) 천축(天竺)에서 나왔다.(中銅鼓 出於南蠻天竺)', 남만은 중국 사람들이 자기들이 중심 나라라고 생각하여 남쪽에 사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었다. 북쪽에 사는 사람은 북적(北狄), 동쪽의 사람은 동이(東夷), 서쪽의 사람은 서융(西戎)이라고 불렀다. 그래서 천축이란 바로 인도를 말한다.
나는 이후 인도에 심취하여 매년 여름 방학과 겨울 방학을 인도에서 보냈다. 그렇게 해서 쓴 논문이 '비단길 음악의 변천 - 장구를 중심으로'라는 논문이다.(≪비단길 음악과 한국 음악≫)
'나티야 사스트라'의 장단과 한국의 장단
'덩-덕 쿵덕-, 덩-덕 쿵덕-'
어느 때 들어도 흥겨운 자진모리 장단이다. 캘커타에서 밤샘음악회를 들은 후, 나는 인도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렇게 짜증스럽던 더위도 참을 만하고, 인도인의 검은 피부가 멋있게 보이는 게 아닌가? 알게 되면 사랑하게 된다더니, 참으로 맞는 말이다. 그리고 더 신기한 일을 경험하였다. 멀리서 북소리가 들린다. 공원에서 누군가 북을 치고 있다.
그런데 이 북장단이 자진모리 장단이 아닌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당장 공원으로 달려갔다. 공원에서는 흔히 유랑 음악인들이 간단한 구경거리를 공연한다. 아버지는 북을 치고, 아들은 반스리(관악기)를 불고, 딸은 춤을 춘다. 어느 가족은 원숭이에게 재주를 부리게도 한다. 그리고 약을 팔거나 구걸을 한다.
그후 이 자진모리 장단을 인도에서 자주 듣게 되었다. 그동안 몇 달을 다니면서도 들리지 않던 장단이 갑자기 들리게 된 것이다.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니 귀까지 열린 것이다. 이후, 이 장단에 대한 문헌을 찾으려고 서점이나 도서관을 뒤졌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러던 중 1998년 10월, 인도의 고대 연극 문헌 ≪나티야 사스트라(Natya Sastra)≫를 뒤지게 되었다.
이 책은 기원 전후 2세기에 쓰여진 연극에 관한 책이다. 이 책에는 고대 인도의 연극에서 음악을 어떻게 사용하나 하는 것을 자세히 적고 있다. (필자의 ≪나티야 사스트라≫의 인도 고대 음악, ≪비단길 음악과 한국 음악≫ 참조)그런데 놀랍게도 이 책에 자진모리 장단이 소개되어 있었다.
원 세상에, 무려 15년의 시간이 흐른 뒤 내 눈에 들어온 것이다. 그동안 여러 번, 책이 닳도록 이 책을 보았건만, 어째서 15년만에 보인단 말인가?
이 문헌은 인도 장단과 우리 나라 영산회상 장단의 연결고리를 제공해 주었다. 기원 전후 2세기의 고대 인도 음악 문헌에 우리 나라의 영산회상의 장단과 똑같은 장단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나라의 장단이 상영산 장단 - 중영산 장단 - 도들이 장단으로 분화하는 모습도 모두 같다. 또한 굿거리 장단·자진모리 장단·타령 장단이 인도와 같다.
이러한 사실은 1813년 편찬의 ≪동대금보≫의 영산회산(영산회상과 같은 곡)과 나티야 사스트라(Natya Sastra)의 장단에서도 확인된다. 이 문제에 대하여 궁금한 사람은 자세한 것이 필자의 ≪아시아음악연구≫라는 책에 나와 있으니 참고하기 바란다.
이로서 한국 음악의 굿거리, 휘모리 같은 장단은 인도에서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피아노가 우리 나라에 소개되면서 악기만 들어온 것이 아니다. 베토벤의 피아노곡 '월광곡'도 들어오고, 쇼팽의 '빗방울 전주곡'도 소개되었다. 기타도 마찬가지이다. 기타라는 악기는 기타로 연주하는 마이클 잭슨의 미국 유행을 함께 끌고 들어온다. 장구도 마찬가지이다. 장구가 인도에서 들어오면서 그냥 장구만 들어온 것이 아니다. 장구로 연주하는 장단이 들어온 것이다.
문화는 물처럼 흐른다
이로부터 나는 인도 음악의 전도사가 되었다. 대학에서 인도 음악을 가르치는 것은 물론, 인도 음악가를 초청하여 연주회도 열고 인도 음악 강좌도 열었다. 이러한 활동을 하면서 '인도음악연구회'를 결성하였고, 이 연구회는 이제 확대되어 'Council for Asian Musicology, 아시아음악학회'라는 국제적인 학회로 발전하였다.
필자가 '장구가 인도에서 왔고, 장구로 치는 굿거리·자진모리·휘모리 같은 장단도 인도에서 왔다.'라고 소개하면 사람들은 저으기 놀랜다. 이처럼 '해금은 몽고에서, 장구는 인도에서, 태평소는 페르시아에서 들어왔다면' 순수한 우리 음악은 무엇인가? 우리 나라는 고유의 어떤 음악도 없단 말인가?
우리는 그동안 너무 '독창적인 한국 문화', '유구한 한국 문화의 전통', 이런 용어에 익숙해 왔다. 그리고 과거 조상의 훌륭한 업적을 찾아내어 민족적 자긍심을 높이려 애썼다. 그러나 문화 현상은 물과 같다. 흐르는 것이 문화이다. 흐르지 않고 고여 있으면 썩고 만다. 조선조의 쇄국정책이 우리 나라 근대사를 얼마나 엉망으로 만들었는지 우리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외래 문화를 받아들여 이것을 발전시키고 외국에까지 수출한 것으로 장구 음악이 있다. 우리 조상은 인도에서 장구를 받아들여 참으로 다양한 타악 문화를 만들었다. 인도 장구는 다마루(damaru)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민속 악기이지 정격의 인도 예술 음악을 연주하는 악기가 아니다. 인도에서는 예술 음악 연주용으로는 무리당감(mrdangam)과 따블라(tabla)를 사용한다.
그러나 인도의 민속 악기는 한국에 와서 꽃을 피웠다. 한국 사람은 장구 없이는 음악 생활을 못한다. 천안삼거리나 화초사거리 같은 민요에서부터 궁중의 잔치 음악까지 장구가 없어서는 음악이 안 된다.
크기도 다양하게 발전시켰다. 신라의 에밀레종에 장구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이 장구는 매우 작다. 그리고 목에 걸고 있는 모습이 대개 길이가 40∼50cm 정도 되어 보인다. 지금은 농악용으로 어깨에 거는 것부터 아주 크게 만들어 바닥에 놓고 치는 것까지 다양한 크기로 사용한다.
한국 사람은 여기다가 한술 더 뜬다. 시골의 농부들이 치던 농악을 이용하여 '사물놀이'라는 음악을 만들었다. 이 사물놀이는 1979년에 생긴 음악이니, 이제 20살 겨우 넘은 음악이다. 이 사물놀이는 한국 사람만 휘어잡은 것이 아니고, 온세계 사람들을 휘어잡았다. 지금은 세계사물놀이대회라는 것이 있어 사물놀이는 세계 음악의 하나로 자리잡았다.
우리 나라 악기 수출 중 사물놀이 악기 수출량이 가장 많다고 한다. 한국 음악 역사상 이렇게 짧은 기간에 세계 여러 나라에 음악을 보급한 사례를 찾기 힘들다. 이것은 사물놀이의 우수성 때문이다. 외국 사람들이 무슨 학자적 관심으로 사물놀이를 배우는 것이 아니다. 즐기기 위하여 배우는 것이다.
이처럼 문화 현상은 물처럼 흘러야 한다. 끊임없이 외래 문화를 수입하고 이것을 발전시켜 다른 나라로 전파시켜야 된다. 이것이 바로 문화대국이다.
우리 나라에는 유럽 음악을 공부한 음악가가 수없이 많다. 그러나 그들은 열심히 외래 음악을 받아들이기에 바쁠 뿐, 이것을 새로운 한국음악으로 발전시켜 수출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 겨우 20살을 갓 넘은 사물놀이는 이러한 역할을 하고 있다.
나는 인도 음악을 연구하면서 아름다운 인도음악도 즐기게 되었지만, 이보다 문화 현상에 대한 통찰력을 기르게 된 것과 내가 어떤 목표를 가지고 음악 생활을 하여야 하는지를 알게 되어 참으로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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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인평 님은 서울 대학교 음악대학, 서울 대학교 대학원과 인도 델리 간다르바 마하 비디얄라야에서 인도 음악을 수학하였으며, 한국정신문화연구원 박사(문학박사)를 수여 받았다. 현재 중앙대학교 중앙음악연구소 소장, 아시아음악학회 회장, 중앙대학교 음대 교수를 역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