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5대리구 권동근요한 신부님 강론 ㅡ
부활 축하드립니다.
오늘은 조금 다른 인사를 서로 나누어 볼까요?
부활 축하합니다.
축하 인사를 이렇게 잘 나누어 놓고
요런 질문을 드리기가 조금 그렇습니다만
한 가지 질문 드려 보겠습니다.
이 부활이 지금 내 안에 다가와 있습니까?
부활의 꿈이 내게 완전히 다가와 있습니까?
뭐 지금 소리만 살짝 들어봐도 아시겠지만
네 하고 대답하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이 질문에 주춤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이 미사에 참여하신 분이라면
모두가 부활의 기쁨이,그 은총이 내 안에 자리하기를 바라고 계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부활의 기쁨 ,그 큰 축복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한 비결이 뭐가 있을까요?
오늘 복음에서 바라볼 수 있는 것은
주님의 형상안에 애절한 사랑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복음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주간 첫날 이른 아침 아직도 어두울 때에 마리아 막달레나가 무덤에 가서 보니ᆢ
간단한 문장이지만
우리는 이 안에서 주님을 향한
이 여인의 애절한 사랑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당시 유다인들은 안식일 규정에 편집증적으로 집착했습니다. 그리고 이 안식일은 일곱 번째 날인 토요일이었죠?
고통스러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과 마지막까지 주님을 따르며
그 곁에서 눈물 흘리던 여인의 말이 됩니다.
하지만 돌아가신 그날은 준비일이었고
다음 날에는 안식일 이었지요. 주님의 무덤으로 달려가 결국 이 여인은 간절히 기다립니다.
애절하게 사랑하고
그분의 무덤으로 나아갈 수 있는 그 시간을.
안식일이 끝나는 바로 그 시간의 말입니다.
그리고 안식일에 마치는 주간 첫날.
새벽 일찍이 그분께 나아갈 수 있게 되자마자 바로 달려간 것입니다.
무덤에 계신 주님의 향해 말입니다.
부활내의 첫 증인이 되는 영광은 그 은총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었던 것이지요.
마리아 막달래나가 내려가 우리를 넘어서는 초인, 성인이기에 가능한 걸음이 아닙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한 사람이었기에 가능한 걸음이었습니다.
이 말은 마리아가 돌아간 그걸음과 영광,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우리 역시 나아갈 수 있고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우리 모두를 위한 길이라는 것입니다.
아! 믿음, 부활의 기쁨이 부족할 수 있습니다.
남들은 다 기뻐하는 것 같은데
왜 나는 아직도 이렇게 부족할까라는 자책이 스물스물 올라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래도 괜찮습니다.
부활을 위해 주님께서는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이런 나를 위해 주님께서는 부활 하시고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마리아나 다른 제자들이 그러했듯이 주님께 대한 사랑으로 조금씩 조금씩 나아간다면
어느 순간 주님께서 허락하여 주신
그 은총이,기쁨이
내 안에 자리 잡고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주님께 대한 사랑을 지니고 용기를 내어
그분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은총에 주님께서 허락하여 주시는 구원의 상급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은총을 이 미사 중에 함께 구해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인사 드리겠습니다.
부활축하드립니다.
주님! 당신을 사랑하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