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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피에살며

놀이터 그 이후

작성자알유코피|작성시간10.11.01|조회수190 목록 댓글 1

 

 

놀이터 그 이후

 

 

* 동부사랑의 교회의 헌신

지난 여름 동부사랑의 교회의 헌신으로 교회 마당에 놀이터가 세워졌다. 그러니까 2009년 4월, 호피 마을을 찾아 든 황사바람으로 인해 쓰러진 놀이터가 이제 어엿한 모습으로 새롭게 복원된 것이다. 호피마을에 부는 황사바람은 강도에 있어서 매섭기도 하거니와 가뜩이나 황색펄인 대지를 흔들어 희뿌연 먼지에 먼지가 더해지는, 그야말로 쳐다만 봐도 숨이 막힐 것 같은 기세로 거들먹거린다. 그 기세에 마당의 놀이터가 쓰러져버린 것이었고, 이로 인해 우리 마을에 아이들이 안전하게 놀 수 있는 공간이 사라져버린 것이었다.

 

 

 

놀이터 공사를 진두 지휘한 최승우 집사님

 

 

 

놀이터에 들어갈 모래, 호피 마을은 사방 지천에 모래지만,

아이들이 놀기에 적합한 깨끗한 모래를 써야 한다는 최승우 집사님의 고집이 있었다.

 

 

그러나 지난 7월의 여름, 여느 호피마을의 여름과는 달리 20년만의 큰 비가 억수같이 쏟아져 땅의 지형을 뒤바꿔 버린 날들을 헤치고, 선교팀들은 내려 흘린 빗물에 아랑곳 하지 않고 또 다른 땀방울을 흘리고 있었다. 그리고 놀이터가 세워진 것이다.

 

 

 

 

동부사랑의 교회 선교팀은 1년 전부터 사역을 준비한다. 일 년 뒤의 사역을 위해 일 년 전부터 팀장이 정해지고, 임무를 맡은 팀장은 해당 사역이 있기까지 적어도 세 네 차례 다른 팀원들과 방문하여서 선교지의 상황을 수시로 점검해왔다. 물론 매달 거의 빠짐없이 걸려오는 팀장 하준기집사님의 전화는, 자칫 무료해질 시간에 긴장을, 조바심으로 근심하고 있을 시간에 안심을 주는 메신저와도 같은 역할을 하곤 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선교지에 가장 필요한 일이 무엇인지를 재차 선교사에게 물어주었고, 그 2010년의 열매가 바로 놀이터였던 것이다.

 

 

 

 

팀장으로 오신 하준기 집사님과 김지수 목사님

 

 

** 시간과 공간

사실 놀이터가 쓰러진 이후로 교회를 찾는 아이들의 발길이 끊어졌었다. 이 마을의 유일한 놀이터가 무너졌으니 아이들이 아이답게 그리고 안전하게 놀 수 있다는 기대도 함께 무너진 것이다. 그러므로 놀이터를 다시 짓는다는 것은 첫째로, 방과후 오갈 데 없이 길에 나앉아 놀거나, 혹은 메사Mesa에 사는 아이들처럼 위험한 절벽을 타고 아슬아슬하게 시간을 보내야 하는 아이들이 안전하게 지낼 수 있는 조형물을 짓는다는 l차적 의미가 있었다. 차를 타고 마을을 지날 때마다 거리에서 돌봐주는 부모없이 이리저리 방황하며 다니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내 아이가 저 무리에 있다면?”이란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지면서, 이 아이들에게 마땅한 공간을 제공해주고 싶었던 마음이 들었던 까닭이다.

 

그러나 조형물을 짓는다는 것은 새로운 “공간”을 창출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한 공간에 그에 적합한 조형물이 세워지게 되면, 그곳은 도종환 시인이 노래하던 바, “머물고 싶은 풍경”이 되는 까닭이다. 그리고 머물고 싶은 풍경이 된다는 것은 찾고 싶은 풍경이 됨을 뜻한다. 곧 새로운 “시간”이 창출되는 것이다. 아이들의 마음에 머물고 싶은 풍경으로 돋아난 이 공간은, 그곳을 찾는 아이들로 인해 더더욱 아련한 시간과 풍경으로 거듭난다.

 

 

 

 

호피 마을 어린이 델버트의 모습, 슈퍼스타K2의 허각이 노래했던가? 델버트 "하늘을 달리다"

 

 

기실 “시간과 공간”의 문제는 인류가 씨름해오던 과제가 아니었던가? 예술가들이 노래해왔던 단아한 주제이기도 하고, 수없이 많은 철학자들과 문학가들이 써 내려간 문제적 줄기가 아니었던가? 시인 김춘수가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을 통해 그해의 제일 아름다운 불을 지피는 아궁이를 노래했던 것은 결코 생각 없는 때에 떠오른 착상에만 의존한 것은 아니니라.

 

 

** 그 자체로 희망이다

오늘도 많은 아이들이 놀이터를 찾았다. 그러나 아이들이 이곳을 찾아 노는 것을 이상적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다. 때로 아이들은 놀이터에서 싸움을 하기도 하며, 곳곳에 욕설로 도배하기도 한다. 해서 때때로 사람들은 이를 염려하며 잔잔한 불평을 하기도 하다. 하지만 어디 아이들이 모이는 곳에만 싸움이 있고 욕설이 있는가? 성인이라 하는 사람들이 이끌어가고 있는 교회란 곳은 과연 어떤 모습으로 일관되고 있는가? 성인 어거스틴Augustinus가 말한 것처럼, 교회란 본디 죄인 공동체가 아니던가? 하물며 가정에서 포근한 사랑과 시선을 한몸에 받고 자랄 기회를 번번이 놓치고 있는 아이들에게 소위 어른이라 하는 사람들이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이 아이들이 교회 마당에 자리하고 있는 놀이터를 버젓이 찾아 주는 것만으로도 고맙기 그지없다. 다행스러운 것은 깔깔대며 웃는 소리가 놀이터를 지배하는 시간이 싸움으로 아등바등하는 시간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훨씬 많다는 것이다. 이 아이들의 발걸음이 놀이터를 행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희망이며, 자체가 현재이자 미재다. 이것을 두고 곱지 않은 시선으로 논하는 것이 오히려 불경스럽게만 보일 뿐이다.

 

 

* 새로운 계획 : 방과후 학습 지도

아이들이 모이고 있는 이때에, 나는 얼마 전부터 또 다른 꿈을 꾸기 시작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호피 마을 어디에도 없는 “방과후 학습”After School을 시작하려는 것이다. 모이지 않는 아이들을 억지로 불러 세워 모으는 것이 과연 칭찬받을 일이라면, 자연스럽게 모여드는 아이들에게 집에서 해 줄 수 없는 학습을 지도해 주고, 놀게 해주고, 따뜻한 밥 한 그릇 내놓을 수 있으면 좋겠다. 그도 그럴 것은 우리 마을에는 초등학교 3-4학년이 되었어도 아직 글을 깨치지 못한 아이들이 부지기수로 많으니 말이다.

 

 

 

완성된 놀이터의 모습

 

 

이를 위해 우선 우리 교우들 가운데 자원 봉사를 할 사람을 찾을 것이며, 모자란 공간이지만 어느 시점이 되면 일단 시작해보고 볼 일이다. 교우들과 함께 나눈 대화 속에서 이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공유할 수 있었다. 힘들겠지만, 부족하지만 자신이라도 나서보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참으로 다행으로 여긴다. 하나님은 언제나 “으뜸”이 아니라 “버금”과 “버금딸림”으로 그분의 일을 행하시는 것을 기억한다. 우리 교우들 스스로 자신이 일류 교사는 아닐지언정 목사의 뜻을 이해하고 머리를 맞대고자 하는 것 자체가 얼마나 귀한 것인가? 우리 교우들이 자원 봉사로 나서려는 것은 이 일이 든든히 자리 잡고 설 수 있도록 마중물이 되고자 하는 갸륵한 뜻에 다름 아니었던 것이다.

 

앞으로 이 일에는 많은 재정이 필요할 것이다. 버젓한 방과후 학습으로 자리 잡으려면, 곧 자격증이 있는 유급직원이 필요할 것이고, 교육을 실행하기에 적합한 독립된 공간도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카이로스의 때가 무르익으면, 아이들과 놀이터뿐만 아니라 책상에서도 얼굴을 맞댈 것을 예감한다. 그 날은 그리 멀지 않을 것이다.<뽀비 에누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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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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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whitebird | 작성시간 10.12.07 깨끗한 모래를 고집하신 그분!! 너무 감사하고 사랑이 퐉퐉 느껴짐니다. 그곳에 갔을때 놀이터로 모이는 아이들을
    보았습니다. 아이들을 위한 Education center 가 신속히 만들어지길 간절히 소망하고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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