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이 연재가 언제까지 어디 까지 갈 지는 모르겠다. 단지 최선을 다해서 묻고 쓰고 대답할 뿐이다. 이 자리를 빌어서 하고 싶은 말은 건강도 삶도 로또는 없다는 것이다. 우리의 삶 가운데 도사리고 있는 로또적 욕망을 버릴 수 있다면 아마도 우리의 삶은 우리의 건강 혹은 믿음도 역시 즐겁고 신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다.
작은 버릇을 바꾸는 것이 자신의 몸을 바꾸고, 그렇게 바뀐 몸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작은 것이라고 무시하거나 간과(看過)한다면 언제나 큰 것을 잃을 각오를 미리 해야 할 것이다. 어찌되었든 이 길 도정(道程)에 우리가 밝게 만나기를 희망하면서 우리의 이야기를 시작하자.
21세기를 열면서 급격하게 제기된 화두는 “Well - Being” 이라는 신종 외래어였다. 화들짝 달려온 이 말에 온 나라와 모든 국민들이 자기 삶의 목표를 세우고, 운동과 먹거리에 마음을 담고, 고심하면서 달려온, 달려가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그러나 우리의 주위에는 인스턴트식품과 과도한 스트레스, 심각한 지경에 이른 공해는 Well - Being이라는 화두를 심대하게 위협하고 있다.
많은 현대의학자들은 앞으로 평균 연령이 120세 이상까지 가능하다고 말한다. 가능한 이야기이다. 아니 가능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이 모든 인류의 행복을 추구(追求)하고, 높은 질의 자기 삶을 살아내는 향기들을 만들어가야 한다. 이는 자신을 일으키고 살리는 일인 동시에 타인을 넉넉하게 배려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소중한 작업이다.
단언 하지만 Well-Being은 운동과 먹을거리로만 완성될 수 없음을 분명하게 밝혀 둔다. “발본(拔本)적으로 삶을 변화 시키지 않으면” 공염불로 전락되는 공수표의 화두가 될 것이다.
건강한 삶은 개인적인 삶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며, 가정과 기업 그리고 사회에 높은 질을 담보하며, 창조적이며 생산적 이익을 가져다준다. 사람과 사람이, 가족과 가족이, 기업과 기업이, 그리고 모든 사회 구성요소가 소통되어야 그 사회는 건강하다고 말할 수 있다.
소통은 딱딱함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소통은 따뜻하고, 부드러운 유기적인 상태와 상황에서 가능하다는 것이다. 바로 이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동의학(東醫學)의 근본 가르침이다. 이미 우리의 조상들은 이러한 삶의 질을 담보하면서 살아왔다. 그리고 그 가르침은 오늘 우리에게도 가능하고, 확대되어져야 한다. 이것이 즐겁고 신나게 사는 버릇의 이야기의 핵심이다.
건강(健康)이라는 말은 “튼튼하고, 온화하고 부드러운” 상태, 상황, 혹은 태도를 말한다. 옛 선인들은 이러한 모양을 통해서 하늘과 땅과 사람의 사이를 소통하게 하였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소위 현대 의학-여기서는 정확히 표현하면 서양의술을 말한다.- 이 줄 수없는 높은 삶의 질을 조상들은 이미 알고 실천하였던 것이다. 그저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라고 외치자는 것이 아니다. 가치와 실용 그리고 근본적인 질의 문제를 사유하고, 도출된 실천적인 결과물들이 반성적으로 제기되고, 분명하게 대접되어야 한다.
우리는 오늘 Well - Being을 이야기하기 전에 “Well - Doing"을 이야기 하자는 것이다. 건강한 존재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로또 복권식의 한 방이 아니다. 건강한 삶의 방식과 태도가 그 사람의 미래를 좌우하듯 우리의 노력은 차분하면서도 근본적인 치료와 섭생, 삶의 모양과 인식을 전환시키는 작업이다. 이 작업은 잃어버린 삶의 향취를 찾아나서는 신성한 작업이며, 이 작업을 통해서 우리의 삶과 우리의 영혼은 새로운 안식을 찾게 될 것이다.
이안식은 개인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가족의 건강을 구현하고, 기업의 미래를 책임지며, 교회와 사회의 희망을 가능하게 하는 작은 첫 걸음이 될 것이다.
삶의 태도(Doing)를 바꾸어서 삶의 질(Being)을 구체화 시킬 수 있는 기회를 간곡한 마음으로 띄워본다.
내가 늘 강의를 하거나 처음 글을 쓸 때 꼭 인용하는 글이 있다. 갈관지에서 전하는 편작에 관한 이야기다. 명의(名醫)라는 이름에 대한 이야기이니 같이 생각하기를 기대한다.
죽은 사람도 살려냈다는 중국의 옛 위나라에는 '편작'이라는 명의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의 두 형도 모두 훌륭한 의사였는데 다만 두 형은 막내인 편작만큼 세상에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라고 합니다.
어느 날 위나라의 임금 문왕이 편작에게 "그대 삼 형제 중에 누가 가장 큰 의사인가?" 라고 묻자 편작이 아뢰기를 "큰 형님이 가장 훌륭하고, 그 다음 둘째 형님, 그 다음이 저입니다.
제 큰 형님은 환자가 아픔을 느끼기도 전에 얼굴빛만으로도 이미 그 환자에게 다가올 병을 알아냅니다. 그래서 환자가 병이 나기도 전에 병의 원인을 제거하여 줍니다. 그러므로 환자는 아파 보지도 못한 상태에서 치료를 받게 되어 저의 큰 형님이 자신의 병을 치료해 주었다는 것도 알지 못합니다. 저의 큰 형님이 명의로 소문이 나지 않은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리고 저의 둘째 형님은 환자의 병세가 미미할 때 병을 알아보시고 치료에 들어갑니다. 환자들은 저의 둘째 형님이 자신의 큰 병을 낫게 해 주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반면에 저는 병이 커지고 환자가 고통 속에서 신음할 때, 비로소 그 병을 알아봅니다. 그래서 환자의 병세에 따라 진찰을 하고 적정한 약을 먹이고, 살을 도려내는 수술을 진행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런 저의 치료 과정을 보고서야 비로소 제가 자신들의 병을 고쳐 주었다고 믿는 것입니다. 제가 명의로 소문난 것은 이런 하찮은 이유 때문입니다."
다음에 또.... 교동에서 땡목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