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철학자 老子
은나라: 천명(天名)으로 다스려진세상-천명의 명을 받드는 자들 [비의성/임의성/ 주관성] 그런 이유로 거친 세상이 펼쳐졌다.
주나라 건국시 천명론을 극복하고 덕(德)개념이 등장했다. 천명론 극복에 앞장 선 철학자 공자/노자이다.
도(道)의 전개방향은 [객관성 / 투명성 / 보편성] 확보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공자의 가르침에서 가장 중요한것은 '학學' 과 '습習'
학 : 배운다. 모방의 대상을 놓고 따라해본다. 모방의 대상은 모범적.체계적이론.
배움의 대상인 사람은 일류. 배우는 사람은 이류이다.
일류가 되기 위해 그 과정을 거치는것이다. 모방의 과정속에서 창작의 자극,인간의 꿈틀거림의 자극을 받는다.
습 : 모방의 반복훈련 과정
공자는 반복된 習을 통해 개방적 태도에 놓여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공자는 인간의 공통의 본질. 보편의 기준으로 만들었다 그 개념이 인(仁).
노자의 생각은 그 보편의 기준이 폭력이 될 수 있다.
공자는 도의 근거를 인간의 내면성에서 찾았다. 주관성을 완벽하게 벗어나기 힘든구조.
노자는 도의 근거를 인간에서 완전 벗어나서 자연에서 구했다.
천도무친(天道無親)자연의 도는 더 친하고, 덜 친하게 여기는 것이 없다.
'자연에는 가치가 개입되지 않으므로 가장 객관적이다'라고 생각했다.
춘추전국시대 철학적 사명. 천명론 극복과 도의 질서확립.
'공자의 이론'이 천명론을 극복하는것을 인간의 내면에서 찾았기 때문에 주관성을 완전히 극복할 수 없다고 생각.
노자는 인간의 내면성을 근거로 道를 건립하면 주관성을 극복할 수 없다.
주관성을 극복할 수 없으면 가치론으로 나아갈 수 밖에 없고, 가치론은 기준을 만든다.
기준이 설정되면 구분이 시작. 구분한 다음에는 한쪽이 다른 한쪽을 배재하게 된다. 결국 억압하게 된다.
인간이 자연의 질서를 인간의 질서로 만드는것을 노자의 꿈이었다. 자연의 질서는 보편.투명.객관성이 확보.
공자는 부모자식간의 인간의 질서. 가정의 윤리를 사회의 윤리로 만들자.
질문)공자는 인간의 길을 갔고.공자는 자연의 길을 갔다. 맞는말인가 틀린말인가? 틀린말이다.
두명 다 '도'를 추구. 천명을 극복하고자 했고. 인간의 길을 갔다.
노자에 대한 이미지가 세상일에 관심없는 도포자락 입고 술 들고 다니며 도인같은 느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절대 그렇지 않다.
도덕경 안에는 천하를 장악하는 방법이 들어있다.
공자.노자 둘 다 문명적인 사람들. 교육을 적극적으로 주장. 세상 속으로 깊게 개입하는 사람들이었다.
[도덕경 제1장]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명가명 비상명" (명칭이) 이름이 개념화될 수 있으면 이름이 아니다.
춘추전국시대 : 계급 혼란. 정치혼란. 세계관 혼란시대 기존의 칭하던.알고 있던 생각이 파괴되는 시대가 오게된다.
군자.지배계급이 무너지고. 소인.피지배계급중에 재산으로 가지게 되고. 기존에 정의되던 명칭과 가치가 파괴되기 시작한다.
예) 사랑이 뭐냐고 물으신다면 눈물의 씨앗이라고 말하겠어요. (what? 정의를 내린다. 어떤 사람이 사랑을 하는데 웃고만 있다. 그렇다면 그게 맞는것인가? 사랑은 이것이다. 정의내린다는것은 개념화시키겠다. 무엇을 정의내린다는것은 구분짓는다는것이다.)
예) 사랑보다 더 슬픈것은 정情이라고~ (문장형식에서 사랑이 정의되어 있는가? 정의가 없이 느낌을 전달하고 있는가? 노자 스타일은 이런것이다) "어떤 이름이 개념화될 수 있으면 진정한 이름이 아니다."
"도가도 비상도"
언제 나올지도 모르기 때문에 중국철학을 할때는 주장을 신중하게 해야한다. 유물이 툭툭 튀어나온다.
1973년 한나라 고분 발굴 도덕경(백서본-비단에 적힌 글) 발굴 - 20년후 1993년 초나라 고분 발굴 도덕경(죽간본-대나무조각) 죽간본 발견당시 그 옆에 [존덕의] 곽점의 초묘에서 발굴된 유가 계열의 경전이 발견된다.
[존덕의]-유교경전 / 군자는 인도(人道)를 우선시한다.
[성자명출]-유교경전 / 오직 인도만이 가도(可道)가 된다
공자의 학설을 따르는 유가는 인도를 우선시. 인도는 가도의 형식으로 되어있다.
다양한 해석의 논쟁이 있었음을 근거.추측할 수 있다.
유가사상을 주장하던 사람들은 인도는 가도형식으로 이루어져야한다고 주장했던 기록들이다.
공자-인도.가도可道(언어화 할수 있는 도),
본질(仁)을 긍정한다.구분을 한다. 언어친화. 개념친화적. (본질주의 철학. 구분하고 정의내린다.)
노자- 천명을 극복하고자 하는것인데 이름.정의내리는것. 구분.정의내리면 구분하면 아니된다.
본질을 긍정하는 사람들에게 what이 중요하다. 노자에게는 how가 중요. 어떻게가 중요한 가치이다.
[도덕경제1장]
"이름 붙일 수 없는 그 무엇(無)이 하늘,땅의 시원(始)
이름 붙일 수 있는 것은 온갖 것의 어머니"
무無에서 출발했다. 無가 천지의 시작이다. (그 시대의 문법으로 이해해야 한다)
시작이라는 의미는 옷감으로 가위를 자르는 그 순간. 약간 잘랐다. 그렇다면 시작한것.
그런데 자르기 직전의 가위를 댄순간.시작 전. 시작은 준비와 출발의 교차지점에 존재한다.
시작이라는것은 이 세상 어디에도 구체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구체적인 모습은 없지만 이 세계를 가능하게 해주는 영역이 있다. 그것이 무無의 영역이다.
텅빈 공간들이 아무것도 아닌것 같지만. 그릇의 빈공간.교실의 빈공간. 시작. 출발. 입공간속, 사람 장기의 빈공간.
자기의 존재성은 없지만 그것때문에 활동이 가능해지는것을 無라고 했다. 유有는 만물을 통칭하여 가리킨다.
"마음을 비우고 보면 그 신비함과 오묘함을 볼수있다 /
둘 다 근원은 같은것. 정말 현묘하고 또 신비롭다"
언제나 무를 가지고는 세계의 오묘한 영역을 나타내려 하고. 언제나 유를 가지고는 구체적으로 보이는 영역을 나타내려 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알기 어려운게 여자 마음이다. 알려고 하지 마라.
그 여자들 중에서도 젊은 여자마음 이 한자가 묘(妙). 오묘하다 할때 '묘'자가 그 妙이다.
無는 자기는 없으면서 다른 것이 기능할 수 있게 해주는 영역.
시작. 출발. 설명할 수 없지만 정말 묘하다. 언제나 유有를 가지고는 구체적으로 보이는 영역을 나타내려 한다.
구체적으로 가지고 있는것은 실루엣이 있다.
노자는 유.무. 이 세계를 설명하는데 이 두가지는 "같이" 무에서 유가 나온것이 아니다.
이 둘은 같이 나와 있지만 이름을 달리하다. 같이 있다는 것, 그것이 현묘하고 또 현묘하다.
이 세계는 유.무 계열에 긴장.공존이 만들고 있다. 모든 현상의 대립되어 있다. 이것이 얼마나 신비스럽나.
노자는 본질. 본성을 긍정하지 않는다.
공자는 인간성을 바탕으로 하는 보편적이념을 따르자. 선이든 악이든 보편적 기준이 옳다.
노자의반론 : 공자 유학의 방식, 내면의 가치를 최대한 약화시켜야 한다.
세계를 봐야하는대로 보는 사람은 보여지는대로 보는사람을 절대로 이길 수 없다.
현상을 그대로 보라는 뜻. (서양철학 비트겐슈타인 '생각하지 말고, 보라')
자신의 가치판단으로 세상을 보는순간 나의판단이 아닌 학습된 내면의 판단이 나의생각이 지배받는다.
최진석 교수님..도덕경 읽기^^